신재은 '도시농업 : 네 잎 클로버', 최윤미 '괴담집 : 괴력난신'
영화 <곡성> 마지막 부분에는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갈등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닭이 세 번 울릴 때까지 절대로 집으로 가지 말라고 주장하는 귀신과, 귀신의 말에 홀리면 큰일 난다고 주장하는 무당이 있다. 주인공의 선택에 따라 가족의 생명을 베팅해야 한다. 도대체 누굴 믿을 것인가. 주인공은 1초에 눈알을 수십 번 굴리며 결정 장애에 직면한다. 무당과 귀신은 각자 초자연적인 세계에서의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이거 실화냐’, ‘팩폭’ 같은 말이 인터넷에서 유행이다. 그만큼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들이 인터넷에서 우리의 감각을 한바탕 술렁이게 만든다. 또, 한 가지 사안에도 전문가들이 넘쳐나고 저마다의 주장을 펼친다. 나는 영화 < 곡성 >의 주인공처럼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섣불리 한 쪽 편에 설 수 없다. 무엇이 ‘팩트’고 무엇이 ‘가짜뉴스’일까. 무엇이 음모론이고 무엇이 합리적 추론일까. 때때로 진실은 소리 소문 없이 묻히는 반면, 괴담은 집단적 믿음으로 둔갑하고 종교적인 형태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홍대 한복판에 위치한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는 믿음과 괴담이라는 키워드로 각각의 개인전이 열렸다. 먼저 ‘쉐어 프로젝트 앙코르 프로그램’에 선정된 신재은 작가의 < 도시농업 : 네 잎 클로버 >를 살펴보고, 그다음에 ‘소액닷컴’ 선정작 최윤미 작가의 < 괴담집 : 괴력난신 >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어릴 적 친구들과 동네 벌판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돌아다닌 경험,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출처도 불분명하고 팩트 체크도 못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네 잎 클로버를 행운의 상징이라 여겼다. 당연한 소리지만, 찾기 무진장 어려웠다. 잎이 몇 개 붙었나를 반복적으로 뚫어져라 응시하다보면 차라리 눈이 세 개인 사람을 찾는 게 더 쉽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신재은 작가’의 전시장을 가보니 네 잎 클로버를 재배하는 비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발견이 아니라 ‘재배’라고? 진짜로?
‘신재은 작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의 실험으로 이제 누구나 네 잎 클로버를 재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실험의 경위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토양은 산성이다. 식물은 약산성에 적응력을 갖는 경우가 많다. 도시 환경은 석회질과 콘크리트의 영향으로 알카리성 화가 진행되고 있다. 클로버의 변이 조건으로 도시의 콘크리트는 안성맞춤이다. 또 일반 클로버는 7시간 정도의 광합성을 하지만 24시간 뜨거운 빛을 내뿜는 도시 환경은 네 잎 클로버를 탄생시키기에 충분한 변이 조건을 가지고 있다. 즉, 도시 환경은 네 잎 클로버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빈도를 높인다.
‘신재은 작가’는 콘크리트 배합 영양분을 개발하여 누구나 네 잎 클로버를 재배할 수 있게 상품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물이 전시장에 비치되어 있다. 놀라웠다. 내 눈앞에 떡하니 놓여있는 네 잎 클로버라니. 연구 과정을 담은 영상과 실험실 도구가 전시되고 있었고, 심지어 네 잎 클로버 상품을 판매하는 홈쇼핑 웹사이트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와우! 이런 발견이라니!’
음모론을 펼치는 콘텐츠를 들여다보면, 몇 가지 장치를 이용해 우리를 믿게 만든다. 첫째로 흔한 UFO, 외계인, 유령, 귀신 목격담처럼 ‘개인의 경험’이나 감각을 절대적인 근거로 내세우는 경우다. 인간은 본인의 감각을 바탕으로 세계를 재구성한다. 실제로 겪은 감각 경험이란 그 어떤 신뢰할만한 과학적 이론보다도 인간을 믿게 만든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수많은 병리학적 사례들은 인간의 감각이 절대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음을 증명한다. 예컨대 팔이 절단된 환자들이 종종 손끝의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그렇다. 내가 전시장에서 본 것이 진짜 ‘레알’ 네 잎 클로버일까? 그렇다! 하지만 100%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다.
누군가의 ‘권위’에 기대는 방식도 있다. 세상은 너무나 넓고 방대한 지식을 일일이 찾아볼 수도 없다. 때문에 사람들은 진실 그 자체보다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의 권위에 복속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도 몇 가지 장치가 있다. 하얀색 가운을 입은 사람이 등장한다. 그 사람은 보통 서양 남자이며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한 해외 대학교수다. 그 사람은 영어로 말하거나 프랑스어로 말한다. 그 사람이 실험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화려한 그래프를 통해 어떤 주장을 펼친다. 주장 끝에는 꼭 이런 말도 덧붙인다. 내 평생 이런 연구 결과는 처음이야! 놀라운걸! 그러면 그 주장이 무엇이든, 우리는 이미 믿을 준비가 되어 있다. 심지어 그 주장이 도시의 콘크리트에서 네 잎 클로버가 탄생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 할지라도! 응(?)
‘역사를 재배치’하는 트릭도 빈번하게 사용된다. 전혀 상관없는 개별적인 역사를 마치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배치하여 신뢰도를 상승시키는 방법이다. ‘신재은 작가’는 이런 장치들을 혼용하여 네 잎 클로버를 통해 인간의 믿음 체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네 잎 클로버를 판매하는 ‘신재은 작가’의 홈쇼핑 웹사이트에 들어가 원하는 상품을 주문해보도록 하자. 무려 수명이 90년 이상이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다만, 결제는 되나 배송은 기약 없다고 하니 참고하길 바란다.
구술문화와 초고속 인터넷 전산망이 결합된 우리나라는 음모론이나 괴담이 급속도로 전파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단순하고 자극적일수록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마련이다. 부실한 근거와 잘못된 믿음은 허무맹랑한 괴담을 확대하여 재생산한다. 누구나 초등학생 때 출판사도 불분명한 곳에서 나온 괴담집 몇 권 정도는 읽었을 것이다. 괴담집의 첫머리는 항상 이렇게 시작한다.
이 내용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괴담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더라도 극적으로 부풀려진 내용이 대부분이다. 괴담은 사람의 공포심을 근거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세계를 컨트롤하는 익명의 빅브라더나 귀신, 혹은 악령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꼭 등장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 집단적 맹신의 형태로 증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괴담보다 현실 자체가 더 공포스럽다면 어떨까? 믿을 수 없는 자극적인 현실을 믿게 하려고 역으로 괴담집을 만드는 작가가 있다. ‘최윤미 작가’의 < 괴담집 : 괴력난신 > 전시에서 그 책을 확인할 수 있었다.
Q : 괴담집을 기획하게 된 동기가 있을까요?
A : 예전부터 공포 특급 등 국내 괴담서, 일본의 공포 만화나 괴담서를 많이 접했어요. 꾸준히, 그리고 많이 읽다 보니 괴담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보였습니다. 괴담의 큰 특징은 대개 그 당시 일어난 큰 이슈, 사고 등을 기반으로 만들어집니다. 이처럼 괴담을 통해 당대 사람들의 관심사를 알 수 있는데요,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을 가지고 괴담집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Q : 괴담집 목록 중에 ‘여성’ 챕터가 유난히 눈에 띄었습니다.
A : 여성' 챕터에는 주변에서 직접 투고 받은 경험담을 많이 수록하고, 여성이 읽는다면 '내가 겪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는 글들을 엄선하여 편집했습니다. 단지 겁을 주거나 기분 나쁘게 하려는 것은 아니고, 여성이 겪는 현실의 이야기를 지면의 가상공간에 끌어옴으로써 당대를 반영하는 괴담의 특성을 강조하기에 알맞다고 생각했어요.
또한, 이런 종류의 괴담들이 대개 범인을 잡는 결말로 끝나지 않기에 어딘가 찜찜함을 남긴다는 점, 그런데 그것이 사실은 현실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꼭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는 여성들에게는 이런 불안감과 공포감이 나만 겪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리고 싶었습니다. 안전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도요. 앞에서도 짧게 언급했지만, 여성의 안전이나 혹은 범죄에 관련된 괴담은 초자연적 존재가 등장하는 괴담보다 더욱 현실성이 강합니다. 이런 실제성이 책에 수록된 다른 괴담에도 영향을 미치고, 괴담집이 현실과 조금 더 맞붙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믿음’은 가상과 현실 중간에 있다. 믿음이 사실로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사실을 재료 삼아 믿음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리 두 전시는 마치 우연처럼 같은 기획전이라도 되는 듯이 믿음의 두 본질을 다루고 있어 흥미로웠다. ‘신재은 작가’는 믿음에 의심을 표했고, ‘최윤미 작가’는 의심에 믿음을 요청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