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모두에 의한, 모두의 축제, 모두의 시민청
여름 하면 빠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선풍기와 빙수, 그리고 축제다. 신촌 물총축제, 보령 머드축제 등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축제들도 있지만, 서울 도심 밖으로 나가지 않고서도 축제를 즐길 수 있다. 바로 50여 명의 시민기획단과 시민기자단이 함께 공들여 만든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리는 축제, ‘모두의 시민청’이다. 행사는 7월 28일부터 8월 12일까지 진행되며, 전시와 공연뿐만 아니라 체험까지도 아우르는, 말 그대로 시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場)이다.
지난 7월 여름날의 토요일, 맴맴- 매미 소리를 자장가 삼아 곤히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 나른해진 몸으로 ‘서울시청 시민청(이하 시민청)’으로 향했다. 지하철 2호선 시청역에서 내려 긴긴 지하철 통로를 지나쳐 갈 때까지만 해도 몽롱했던 기분은 시민청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달아났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복작복작했다. 한쪽에서는 < 가족전 >이, 또 한 쪽에서는 다양한 체험 부스들이, 다른 한쪽에서는 공연 준비가 한창이었다. 세계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 지구별 놀이터 >, 일상 속의 탈출을 체험해보는 < DUTY FREE >, 내 의지대로 사는 인생을 위한 새로운 돌잡이 < 성인돌잡이 >, 지난날 자신을 짓눌렀던 흑역사를 털어버릴 수 있는 < 빛나는 흙역사 > 등 그 종류도 다양했다.
유독 눈길을 끌었던 것은 < 성인돌잡이 >와 < 빛나는 흙역사 > 그리고 < 가족전 >이었다. < 성인돌잡이 >는 자신의 첫 돌잔치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기억은 나지 않겠지만(곰곰이 생각해보니 기억하는 것이 이상하다), 부모님을 통해서 자신이 무엇을 집었는지에 대해 대충 들은 바는 있을 것이다. 필자는 연필을 집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나마 활자 앞에서 글을 끄적이고 있나 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 본인이 집어 든 그것을 아직까지 쥐고 살아가고 있지 않다. 혹자는 마이크를, 또 다른 혹자는 청진기를 들었겠지만, 지금 자신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기도 할 것이다. < 성인돌잡이 >는 이처럼 본인의 기대와 다른 삶을 살아온 당신들을 위해 새로운 가치가 담긴 돌잡이 용품들을 가져다 놓고 자신의 의지로 새로운 삶을 꿈꿔볼 수 있게 한다. 물론 지금까지 잘 살아낸 당신을 축하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 빛나는 흙역사 >는 이제는 웃어넘길 수 있는 본인의 실수들과 세상 못난 모습들을 인정하고 꺼내보는 체험이다. ‘왜 그랬을까..’하는 후회를 훌훌 털어버리자는 취지도 있지만, 그 경험을 통해 보다 성숙해진 자신의 모습까지 볼 수 있게 해준다. 흑역사를 용지에 적은 다음엔 전시된 나뭇가지에 매달아본다. 그렇게 하고 나면 굳이 들여다보고 싶지 않지만, 문득문득 떠올라 이불킥을 하게 만드는 순간들을 바라보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하나의 재밌는 추억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숨겨둔 흑역사가 많은가 보다, 나무에 주렁주렁 많이도 매달려 있는 걸 보니.
이 외에도 < 가족전 >이 있다. 서울시민들이 직접 찍은 본인의 가족사진들을 전시해놓은 공간이다. 갓 태어난 신생아부터 어린이, 청년, 노인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우리들의 자화상이 걸려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과거 일반적이었던 4인 가구를 비롯해 1인 가구, 다문화 가정, 반려동물과의 동거, 동성 커플 등 다양한 가족의 모습들까지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근래에는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다 보니 쉽게 사진을 찍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지워버릴 수 있다. 하지만 이전에 필름 카메라가 성행하던 시절에는 필자가 경험했던 세대는 아니지만, 적절한 타이밍을 노려 그 순간을 포착하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있었고 그 필름을 현상해 앨범에 끼워놓곤 했다. 현상할 때까지의 기다림과 설렘이 사진 밖에서도 느껴지기 때문에 다른 부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 가족전 >이 눈에 들어왔나 보다.
사실, 지금까지의 전시와 체험 부스는 애피타이저에 불과하다. 메인 요리는 다름 아닌 < 토요일은 청이좋아 : 더 빛나는 콘서트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5월에도 시민청을 방문해 ‘설레는 사랑카페’를 취재한 적이 있는데, 이번 ‘모두의 시민청’만큼 많은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 앉아있는 것을 본 적은 처음이다. 감히 짐작해보건대, 댄스 퍼포먼스 그룹 ‘생동감 크루’를 비롯해 1세대 ‘뮤지컬 배우 최정원‘씨와 뮤지컬 앙상블 ‘더 뮤즈’의 공연이 연이어 있었기 때문이리라. 시민청과 심장 한쪽을 가득 메우는 유쾌한 사운드와 현란한 조명에 힘입어 ‘모두의 시민청’을 기획한 시민기획단과 함께 ‘생동감 크루’의 에너지 넘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시민기획단 단원 중 한 명은 회사원임에도 스스로 시민을 위한 축제를 기획해보고자 지원했다고 한다. 자신의 손으로 축제를 기획하고자 하는 열정과 그 열정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참 예뻐 보였다.
뒤이어 무대에 오른 ‘생동감 크루’는 그룹명 그대로 생동감이 있다 못해 흘러넘쳤다. 그들은 힙hip한 노래에 맞춰 비보이와 팝핀 등 다양한 댄스를 선보였는데, 한쪽에 자리해 혼자 가만히 앉아있던 필자까지도 들썩이게 했다. 젊은 친구들의 폭발적인 에너지로 가득 채워진 시민청을 아스팔트 위의 아지랑이만큼이나 뜨겁게 달군 공연은 바로 ‘뮤지컬배우 최정원’ 씨와 ‘더 뮤즈’의 공연이었다. ‘뮤지컬 배우 최정원’ 씨는 20여 년간 뮤지컬에 발을 담그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20여 년간의 관록은 과연 대단했다. 그들은 ‘Fame’, ‘One Way Ticket’, ‘Dancing Queen’, ‘지금 이 순간’, ‘붉은 노을’ 등 내로라하는 뮤지컬의 노래들을 이어 열창했다. 그들의 시원시원한 공연을 보고 있자니 한 폭의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도심 속의 피서를 온다면 이런 느낌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쁘다고들 하지만 갈수록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휴가철만 되면 공항이 꽉 차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고 한다. 외국으로 훌쩍 떠나서 자신만의 여유를 되찾고 오는 것도 물론 좋지만, 이렇게 가까운 도심 속에서 쾌적한 ‘모두의 시민청’으로 피서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