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교예술실험센터 작은예술지원사업
뜨거워 아스팔트가 녹을 지경인 8월 초 주말, 홍대입구역으로 향했다. 여전히 이곳은 밀려오는 젊은이들로 후끈한 거리다.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지원 공간인 서교예술실험센터를 가야 한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마치 외국인처럼 낯선 시선으로 조심스럽게 찾아간다.
‘Sugar Fog’ 전시장에는 테이블 하나가 놓여있고 마치 밥상을 차려 놓은 것처럼 테이블보 안에 컨셉북과 수저 그리고 컵이 놓여있다. 그리고 설계도면 여러 장이 테이블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Sugar Fog’ 프로젝트(기획자 : 김예람)는 서교예술실험센터 공동운영단 5기에서 기획한 < 작은예술지원사업 : 소액多컴 >에서 선정된 작품이다. 8월 4, 5일 양일간 결과물을 소개하는 해설토크(Guest Visit)가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려 찾아가 보았다. ‘소액多컴’은 홍대 앞을 비롯한 문화예술생태계 전반을 풍부하게 형성하던 소소하지만 창의적인 예술 실험이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기를 응원하는 서울문화재단의 지원 사업이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지원방식, 점점 대규모화 되어가는 지원 제도의 문턱을 낮춘 지원사업이다.
누구든지 들어와 궁금한 점이 있으면 테이블에 둘러앉자 묻고 답하는 시간, 일찍 찾아가 ‘Sugar Fog’의 김예람 기획자, 일러스트레이터 남가영 작가와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오늘 작가와의 만남의 화두는 ‘푸디피케이션’이다. 생소한 이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JTBC 예능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어 대중들도 선명하게 인식하게 된 ‘젠트리피케이션1)’ 현상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도시 활동을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예술가들과 소상공인들이 자리를 잃고, 획일화된 도시 공간들로 인해 여가생활의 선택권이 줄어들고, 사람들이 더 이상 찾지 않는 지역은 슬럼화가 진행되는 상황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Sugar Fog’는 홍대 일대는 단순한 젠트리피케이션보다는 그것에서 파생된 ‘푸디피케이션’이라는 상황에 처해있다고 보았다. 푸디피케이션은 사람들이 소비하는 식문화가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발한 경우를 의미한다. 음식을 통해 특정 지역이 일종의 붐(Boom)을 맞이한 사례들은 이전에도 존재해왔다. 마산 아귀찜, 광양 불고기, 대구 막창 등 지역마다 유명한 음식들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이 이에 해당한다고 생각된다.
‘Sugar Fog’ 프로젝트명이 독특하다. 먼저 그렇게 정한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1952년 산업혁명 시기, 런던에서 만여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The Great Smog’에서 착안했다. 그 현상의 원인을 분명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푸디피케이션과 일맥상통한다고 보았다. 컨셉북의 내용을 살펴보면, 가열을 통해 설탕을 얻을 수 있는 작물이 도시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 작물이 시민들의 활동을 저해할 수 있는 수준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일부 업자들이 계속 매연을 만들어낸다.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생계 문제로 인해 고민하면서 유해 작물을 재배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방안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분열된다. 음식을 통해서 공동체가 와해되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도 음식에 있음을 이야기해 나간다. 컨셉북에 담긴 일러스트가 프로젝트의 포스터로 활용되었다. ‘소액多컴’ 선정으로 받은 지원금으로 출판할 수 있었다. ‘Sugar Fog’의 컨셉북은 향후 독립 출판 서점에 배포뿐만 아니라, 일러스트를 활용해 식문화와 연관된 다양한 유형의 굿즈를 만들어 갈 예정이다.
음식공동체의 회복이라는 화두를 필두로 건축학도 기획자 김예람 씨는 푸디피케이션에 대응할 만한 새로운 건축 타입을 제안했다. 전시되고 있는 설계도면이 그가 제안하는 새로운 음식문화 공동체다. 음식을 중심으로 하는 건축 사례들을 조사하여 현재 프로젝트에 적용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의 형태나 구성을 수집했다. 설계도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음식 가게, 1인 거주 공간, 주거 공간, 공동 주방 빛 공동 카페, 덫 밭, 중정, 스튜디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향후 식문화를 다루고 있는 공동체들을 기획한 전문가들을 만나서 인터뷰 후 글로 소개할 예정이다. ‘어쩌다가게’라는 공유형 상가를 연남동과 망원동에 기획 및 설계한 건축사사무소 SAAI, 치솟는 임대료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자영업자들이 모여 출자한 ‘협동 식당 달고나’, 올해 5년차로 접어든 도시형 농부시장으로, 농부와 요리사 그리고 수공예가들이 한 달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서울 내 유휴 영역에서 시장을 열고 있는 마르쉐@ 순이다.
개인화된 삶을 당연히 여기는 요즘, 공동체를 회복하겠다며 이 프로젝트에 임한 대학생을 통해 사라져가는 공동체 정신의 회복을 기대해볼 수 있던 고마운 시간이었다. 거창하지 않지만 작은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텐데, 하면서 어디서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없을까 고민했던 분들에게 매년 열리는 서교예술실험센터 ‘소액多컴’ 지원사업을 소개하고 싶다. 올해 선정작에 꼽힌 ‘Sugar Fog’도 대학생 기획 프로젝트였다는 것을 힘주어 전하고 싶다.
< Sugar Fog가 입고되어 있는 독립출판서점>
1. 스토리지북앤필름 (서울_해방촌)
2. 별책부록 (서울_해방촌)
3. 오프 투 얼론 (서울_서촌)
4. 다시서점 신방화점 (서울_강서구)
5. 샵 메이커즈 (부산_부산대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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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젠트리피케이션 : 낙후한 구도심이 번성해 사람이 몰리면 그 여파로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들이 밀려나는 현상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재생사업의 가장 큰 부작용으로, 원주민 피해 예방을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