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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 MEET-창작 ‘푸른요정’

피노키오를 살린 ‘푸른 요정’이 우리의 삶에도 희망일 수 있을까?

by 서울문화재단
피노키오를 살린 ‘푸른 요정’이 우리의 삶에도 희망일 수 있을까?


동화적 소재이지만 결코 동화이지 않은 이야기를 담은 마임 공연 ‘푸른요정’이 7월 14일과 15일 양일간 문래예술공장 박스시어터에서 있었다. 이 공연은 6월 24일부터 12월 17일까지 진행 중인 서울문화재단 문래예술공장의 문래창작촌 지원사업MEET( Mullae Emerging&EnergeTic) 2017’ 창작 부분 선정작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광화문 광장 ‘블랙텐트’에서 극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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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공연 ‘푸른요정’은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블랙텐트’에서 공연되던 마임이스트 이정훈과 무경계, 탈장르를 지향하는 밴드 나비맛의 멤버 노갈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블랙텐트’는 이전 정부의 문화계 검열과 블랙리스트 작성을 비판하는 연극인들이 모여 광화문에 세운 임시 공공극장으로,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담은 작품들이 공연되었는데 이 중 ‘푸른 요정’은 세월호 아이들을 추모하며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블랙텐트에서 극장으로 옮겨 온 공연 ‘푸른 요정’은 작곡가 겸 사운드 아티스트인 정강현 씨와 만나 새로운 공연으로 구성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리믹’, ‘불이야’, ‘인생’, ‘소년과 새’, ‘겁이나’, ‘푸른 요정’, 이렇게 6개의 짧은 작품들이 옴니버스 식으로 묶여있는 작품이라고 해야 맞겠다.



여는 이야기 - ‘리믹’, ‘불이야’

마임이스트 이정훈 씨의 간략한 인사로 공연은 시작되었다. 그의 초대 멘트는 이랬다.

이제 세월호 안으로 들어왔다고,
배가 출발했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떠나 보겠습니다.


공연장의 불은 꺼지고 어둠 속에 출렁이는 물소리가 가득 차니 마음이 물의 무게만큼 무거워지는 듯했다. 정강현 씨의 전자음악과 무대 바닥의 전구들이 불을 깜박이며 ‘리믹’이라는 작품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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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바다에 잠길 때 배 안의 전구들은 저렇게 들어오다 나가다를 반복했을 것이다. 그 안의 사람들도 그렇게 아슬아슬 삶을 이었다 놓았다 하지 않았을까. 그저 불규칙적으로 껌벅이는 불빛을 보고 있을 뿐인데 먹먹했다.

전등이 완전히 소멸되고 비닐에 쌓인 얼굴로 출구를 찾는 듯, 무슨 일이 일어난 듯 더듬거리고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이 등장한다.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지만 할 수 없는, ‘가만히 있으라’는 봉인에 숨이 막히는 듯 답답하다. 겨우겨우 비닐을 벗겨내고 마침내 내뱉어내는 한마디 ‘불이야!’. 그것이 늦지 않았길 바랄 뿐이다.



사는 이야기 - ‘인생’, ‘소년과 새’

1.PNG 삶의 여정을 표현한 ‘인생’

전자음악이 멈추고 극은 노갈의 음악과 함께 ‘인생’으로 이어졌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인생 여정을, 그리고 길을 걷는 한 인간이 그 길 가운데 삶의 미션을 하나씩 풀어가며 지나는 시간을 몸짓으로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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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그네를 타며 즐거워하던 어린 시절, 책을 탐닉하는 배움의 시절, 군대를 가고, 사랑을 하는 청춘시절, 아버지가 되고, 아이를 보내는 중년시절, 지팡이를 의지해 걷고 삶의 미련과 겨우 이별하는 노년 시절을 보고 있자니 “아침엔 네발, 점심엔 두발. 저녁엔 세발로 걷는 것은?”이라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가 떠올랐다. 10분 남짓한 몸짓 안에 담긴 인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길은 잔잔한 울림이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인생의 한 토막 ‘소년과 새’는 새장에 갇힌 새와 자유, 상처받은 새, 다시 갇히는 새장 안으로 따라가며 소년이 되어 함께 설레었다가 자유로웠다가, 안타까웠다가, 답답했다가 하며 역시 삶의 한 여정으로의 여행과 같은 공연이 펼쳐졌다.



지금의 이야기 - ‘겁이 나’, ‘푸른 요정’

2.PNG 무대인 듯 아닌 듯 경계를 넘는 노갈의 ‘겁이 나’

노갈이 잠깐 중간 무대 멘트를 한 후 자연스럽게 무대는 다음 이야기로 이어진다. 연극인 듯 아닌 듯 공연장 구석에 앉아 소주 한 잔 하며 ‘겁이 나’ 노래를 부르는 노갈의 짧은 퍼포먼스가 이어지고 무대 영상으로는 무차별 개발로 사라지는 원형들과 변화된 모습을 교차시킨 화면이 보였다.


너 떠나고 겁이 나, 내 마음 깊은 곳에선
이렇게 겁이 나, 하루를 그냥 보내
다신 못 오겠지 내 말들도
다신 못 보겠지 너의 웃음도

노갈의 음악 가사의 ‘겁이 나는 마음’은 단지 사랑을 잃은 마음을 넘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에 대한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 페인트로 몸을 칠하는 이정훈 마임이스트의 퍼포먼스는 바다 속에서 점점 물로 변해가는 듯이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그가 표현하는 ‘푸른 요정’은 결코 동화 속에서 삶을 불어 넣어주던 그런 기적의 요정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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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서두에 “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푸른 요정이 되어 세월호를 건져 올리고 아이들에게 생명을 불어놓고 싶다”라고 말한 이정훈 씨의 말처럼 극 속의 푸른 요정은 세월호에 갇혀버린 아픔의 희생자들이기도, 혹은 그들을 건져 올리고 싶은 우리들의 미안함과 아픔을 담은 요정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남는 이야기

여섯 개의 에피소드는 각각의 이야기가 있지만 결국은 하나로 연결되는 듯했다. 일방적 공연이라기보다는 무대와 관객이 가까이서 호흡하고, 공간 전체를 다양하게 활용한 극의 구성도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공연을 보며 가장 지배적으로 드는 정서는 ‘상실’이었다. 사람을 잃고, 자유를 잃고, 자연을 잃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보였고 ‘무언가 자꾸 잃어가고 있구나’라는 것에 대한 허전함 같은 것도 느껴졌다. 하지만 그 상실 안에서 어느 정도의 희망을 찾을 수 있는가는 관객 각자의 몫일 테고, 또한 끝나지 않은 이야기처럼 계속 진화되어갈 ‘푸른 요정’ 이야기의 몫일 것이다. 피노키오의 해피엔딩을 위해 등장했던 푸른 요정처럼 그렇게 해피엔딩을 꿈꿔보면서 말이다.

‘문래예술공장 MEET 2017’ 행사는 12월까지 이어진다. 실험 정신 가득한 예술과의 만남을 원한다면 문래로 발길을 옮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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