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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Nov 24. 2015

우리가 존재하는 방법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와 <LIFE>

순간을 기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사진.


올해 많은 영화를 챙겨본 것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인상적으로 본 두 편의 영화가

모두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사진,이라는 요소를 제외하면 두 영화는 매우 다르다.


한 명은 여자, 다른 이는 남자.

한 명은 길거리의 사람들을, 다른 이는 레드카펫이나 영화 촬영장의 스타를 찍고

한 명은 상대방이 촬영을 눈치채지 못하게 사진을 찍어야 했던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다른 이는 ‘그’ 제임스 딘을 찍어 라이프지에 실었던 프로 포토그래퍼.


바로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와 ‘LIFE’,

이 두 편이다.



지난 4월 개봉한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사진작가가 아닌 보모로 삶을 살았던 비비안 마이어의 행적을 쫓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역사학자인 존 말루프는 책에 쓰일 미국의 사진을 찾던 중

시카고의 한 경매장에서 필름 15만 장이 든 상자를 구입하게 되는데,

그 상자의 주인이 바로 비비안 마이어였다.

30년간 꾸준히 사진을 찍었지만 다른 이에게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으며,

그 필름을 유료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던 비밀스러운 여인.

후에 연체된 창고 비용으로 인해 그 안에 있던 물품을 압류당해 경매에 부쳐진 것인데,

필름을 인화해 본 그는 단번에 이 사진들이 심상치 않은 것임을 알아챈다.


그에게 있는 단서라고는 비비안 마이어,라는 그녀의  이름뿐

수없이 구글링을 해보고 플리커(Flickr, 온라인 사진 공유 커뮤니티)에 그녀의 사진을 올리며 수소문해도

아무런 소득이 없던 어느 날, 드디어 구글에서 검색 값을 얻게 되었으니-

바로 부고였다.
 


그렇게 비비안 바이어는 심상치 않아 보이는 10만 여장의 사진을 남기고,

삶에서 단 한 순간도 사진가라고 칭해지지 못한 채

사진에 입문하게 된 계기나 예술가로서의 행보는 모두 미스터리로 남겨두고 사라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비안 마이어를 찾는 존 말루프의 여정은 계속된다.

그녀의 삶을 증언해줄 만한 이들―그녀가 보모로 있었던 집의 아이들이나  오래전 지인들―을 만나게 되고
결국 그녀의 삶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어 감독으로 데뷔하게 된 것은 물론, 
지금은 그 스스로도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영화 소개를 하는데 너무 많은 공간을 할애해버렸다.

정작 나는 이 영화보다는 BBC가 2013년 제작한 
다큐멘터리 ‘Who took nanny’s pictures?’를 재미있게 보았는데도 말이다.

내가 영화 쪽에 손을 들지 않은 이유는, 이 영화가 잘 나가다 말미에

‘이 여자가 괴상한 취미를 가진 요상한 여자였기 때문에’로

그녀의 모든 사진과 생활을 설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를 달지 않더라도 그녀의 사진은 충분히 예술적 가치가 있으며

그녀가 자신의 사진을 다른 이들에게 마음껏 보여주고 내세우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온전히 한 명의 사진작가로서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영화 개봉 후, 7월부터 9월까지는 성곡미술관에서 <내니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비비안 마이어의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약 120여 점의 사진을 선보인 이 전시회에는 그녀의 셀프 포트레이트(#셀피 라고 달아줘야 할 것 같은!)와 
컬러 프린트, 슈퍼 8미리 필름까지 선보였는데

감각적인 셀피와 정성 들인 구도의 사진을 보고 있자면

비비안 마이어는 주변인들의 인터뷰와는 다르게,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는 사람이었을 거라고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홈페이지에서 그녀의 사진을 보고 따라 찍어봤던 사진을 마지막으로,

다음 영화로 넘어가야겠다.


 

사실 나는 제임스 딘은 이름만 알았지 그의 영화 한 편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고

이 영화에서 제임스 딘을 맡은 데인 드한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가장 먼저 한 일은 유튜브에서 제임스 딘의 인터뷰를 찾아본 것이다.

데인 드한의 웅얼거리는 말투가 아주 매력적이라 실제 제임스 딘도 그랬는지 궁금했기 때문인데,

실제로도 제임스 딘은 약간 웅얼거리면서,

상대방에게 크게 관심 없는 눈빛을 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매력적이던지!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포스터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영화의 오리지널 포스터에는 데인 드한이 제임스 딘의 유명한 사진처럼 담배를 물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심의 때문에 담배를 삭제하고 만들었다고.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신인 작가 데니스 스톡은 생계를 위해 스타의 뒷모습을 찍어야 하는 작업에 지쳐가던 중, 
무명의 배우 제임스 딘을 만난다.

새 영화 개봉을 앞두고 배우와 스타 사이에서 방황하는 제임스 딘에게서

특별함을 발견한 데니스 스톡은 그의 단독 화보를 찍어 ‘라이프’지에 실으려 하고,

화려한 삶에 관심 없는 제임스 딘은 이를 계속 거절한다.

그러던 어느 날, (캬아- 이렇게 고전적인 전개!)

연인과 유명 스타의 약혼 소식을 기자회견장에서, 그것도 기자에게 전해 들은 제임스 딘은

영화 홍보를 마다하고 자신의 고향으로 도망치듯 떠나고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줄 데니스 스톡과 동행한다.


제임스 딘과 데니스 스톡,

로버트 패틴슨과 데인 드한,

그 모두가 매력적인 조합이지만

이 영화는 제임스 딘의 안타까운 죽음이나

젊은 스타들의 스크린을 압도하는 비주얼 같은 것으로 승부하기 보다는

조카와 책을 보고, 시골의 고등학교에서 어수룩하게 축사를 읊는

소소하고 일상적인 제임스 딘의 삶을 보여주는데 더 관심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오히려 제임스 딘이 낯선 나에게

이 영화와 그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왠지 계속 제임스 딘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고 있는 것 같다.)


영화가 좋았던 점도 거기에 있는데,

아들에게 무책임한 야망에 찬 젊은 사진작가는 더 없이 차갑게 느껴지지만

작가로서의 열정과 사진에 대한 애정으로 거뜬히 풀어냈고

무책임하고 제멋대로인 젊은 배우도

자신의 삶과 순수한 예술로서의 연기를 사랑하는 꿈 많은 청춘으로 그려냈다.



두 사람의 밀당 아닌 밀당을 지켜보는 것은 어느 순간 불필요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실제 사진이 교차되는 엔딩이 너무나 좋았기에

모든 일은 끝이 아름다우면 아름답게 기억되는 법이니까, 좋은 영화였다고 기억하기로.


시간을 내어 사진을 찍기도 하고

찍히는 것보다 찍는 것을 좋아하지만

사진을 왠지 취미로 꼽기에는 수줍은 나에게,

이 영화의 한 대사는 내가 왜 사진을 찍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었다.


Photography is a good way of saying I've been here, you've been here.

영화의 명대사로 꼽히는 데니스 스톡의 대사다.

나와 네가 이곳에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방법으로서의 사진.

나로서는 비록 내가 그 프레임 안에 들어있지 않더라도

내가 본 것, 내가 생각한 것, 내가 느낀 것을 담아낸다는 의미로 사진을 찍고 있구나- 싶었다.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는 이 계절,

나도 제임스 딘처럼 코트 깃을 세우고 걸어볼까나.



글 김민영 남산예술센터 기획제작PD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이 더 보고 싶다면, www.vivianmaier.com

*이 글은 남산예술센터 홈페이지 [남산뉘우스]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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