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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Apr 05. 2016

예술로 돌아보는 우리 사회 이야기

<소녀상의 예술학>토론회, 자율공공실천회의

▲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소녀상’


“여기가 지옥이다. 야” 영화 <귀향>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이 영화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요. 20만 명의 소녀가 끌려가서 238명 만이 돌아왔고 지금 현재 46명 만이 살아남았습니다. <귀향>은 잊고 있던 전쟁의 섬뜩한 단면을 가감 없이 묘사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제 고마 우리 집에 가자”라고 말하던 소녀 정민(강하나 분)의 눈망울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관객들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는데요. 75,270명 후원자들의 이름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그림을 비추는 긴 엔딩 크레딧이 영화 속 이야기가 그들만의 일이 아님을 일깨웠어요. 다수의 의지로 만들어진 이 영화가 위안부 문제를 다시금 우리 앞으로 소환합니다. 이처럼 예술은 우리 사회의 응어리진 부분을 정제된 언어로 들춰냅니다.


지난 3월 19일(토) 오후, 서교예술실험센터(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소녀상의 예술학’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은 2011년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후 저항의 조형물로 자리 잡았는데요.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 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 소녀상 철거를 반대하는 노숙 농성과 전국 각지 및 해외에 소녀상을 세우려는 움직임 등, 다시금 강력한 상징으로 작용합니다. 


이번 행사는 <귀향>이 일으킨 반향과 같은 ‘소녀상 현상’에 대해 인문 예술적 시각으로 풀어보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민운기 자율공공실천회의(자공실) 공동준비위원장은 예술에 대한 바람직한 담론이 없는 풍토를 반성하는 의미로 이번 토론회를 기획했다고 밝혔습니다.


▲ 서울문화재단 창작공간 서교예술실험센터
▲ 토론 좌장을 맡은 부천문화재단 안태호 팀장(왼쪽)과 민운기 자공실 공동준비위원장(오른쪽)



2016 현장 + 담론 토론회 - 소녀상의 예술학


서울문화재단 <현장+담론>은 문화예술계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들이 다양한 정책담론으로 연결되는 것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그 중 ‘소녀상의 예술학’이란 주제로 진행된 첫 번째 토론의 장으로 안내합니다.


안태호(부천문화재단) 팀장이 사회를 맡고, 이태호(경희대 교수), 이택광(경희대 교수), 김준기(지리산 프로젝트 예술감독)의 주제 발표와 함께 이나바 마이(광운대 교수), 장수희(연구모임 아프꼼 연구원), 최범(디자인 평론가), 홍승희(소셜 아티스트) 등이 토론에 참여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넘어 한국사회의 민족주의와 탈식민주의, 성차별 등 우리 사회 저변의 양상을 복합적으로 내포합니다. 이번 토론에서는 ‘소녀상 현상’을 미술 비평과 문화연구, 미학, 여성학 등의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았습니다. 


▲ ‘평화의소녀상’ 설립 배경을 설명하는 한국염 정대협 공동대표


이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한국염 공동대표는 소녀상이 작가와 실행위원회의 협의로 이룬기념비로서 평화를 기다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대협은 서울의 5개 구청에 소녀상을 세우는 등 조각 건립을 통해 전국 곳곳으로 평화의 의지를 퍼뜨릴 계획인데요. 현재 이를 위한 100억 모금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이태호 경희대 교수의 주제 발표를 경청하는 시민 참가자모습



‘소녀상’의 예술학적 의미


이태호 교수(미술평론가)는 소녀상의 예술적 위치를 국내외 전쟁기념비들의 특징에 비추어 가늠했는데요. 그는소녀상이 전쟁의 비극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어, 승리를 환호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강조하는 대부분의 한국전쟁기념비들과 구별된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교수는 주한일본대사관 앞이라는 조각이 놓인 장소성에 주목하면서 작품의상징성을 표현하기에 매우 적절하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소극적이고 단조로운 형상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그는 난징대학살 기념관의 우웨산 작품을 예로들면서, 새로 제작될 소녀상들이 보다 실존적이고, 생생하게변화하기를 기대했습니다.


▲ (왼쪽부터 시계 방향순)다부동, 전쟁기념관 기념비/아틀란틱시티, 한국전 기념비/우웨산, 난징 대학살 기념비/김서경운성, 평화의소녀상/마야 린, 베트남전쟁 기념비/요헨 게르츠& 에스터 게르츠의 반파시즘 기념비


예술은 예민한 촉수로 기존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지평을 여는데요. 1980년대 이후 반기념비적 조각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 작품들은 전쟁을 해석하는 대신, 이에 대한 생각과 명상의 기회를제공합니다. 마야 린의 베트남전쟁기념비, 요헨 게르츠와 에스터게르츠의 반파시즘 기념비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두 작가는 검은 벽 앞에서 전쟁을 애도하고, 기념비 표면에 글을 쓰는 등 관객의 참여를 유도합니다. 조각의 장르역시 동시대 예술의 특성인 소통과 참여의 방향으로 나아가는데요. 이는 이번 토론을 기획한 김준기 감독(미술평론가)가 제시하는 사회 예술의 개념과 맞닿습니다. 


▲ 사회 예술로서의‘소녀상’ 현상을 발표하는 김준기 지리산예술프로젝트감독



‘소녀상’의 사회 예술적 가능성


사회 예술이란 어떤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걸까요? 김준기 감독은 공동체 예술, 공공예술, 비판 예술과 행동 예술의 네 가지 범주가 교집합으로 만나는 지점에 사회 예술이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소녀상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징으로 우리 사회에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시민단체의 재원으로 공공장소에 주문 제작된 점에서 공공예술작품의 훌륭한 사례로 평가했습니다. 또한 작품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에서 행동주의와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사회 예술의 면모를 발견했습니다.


▲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 '전쟁 속의 여성' 주제 전시관/ 영화<귀향> 엔딩 크레딧


소녀상 외에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예술적 소통의주제로 삼은 작품들이 많습니다. 앞서 언급한 ‘귀향’외 서울메트로 국제지하철영화제 출품작인 ‘소녀상’(감독 박용석), ‘전쟁속의 여성’을 조명한 2014년 대구사진비엔날레 전시 등에서예술과 사회의 열린 관계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대구사진비엔날레 당시 전시장에 설치된 소녀상은‘전쟁과 여성’이라는 주제를 더욱 명료하게 드러내는 상징이되었습니다. 


▲ 이태호 교수 발제를 듣고 있는 참석자들.



민족주의 표상으로의 ‘소녀상’


한편 이택광 교수(문화연구)는 정부가 소녀상 철거를 한일간 위안부 협상 해결책에 포함시킴으로써 소녀상이 민족주의의 대표적 표상으로 등장하게된 점을 우려했는데요. 그는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는 민족의 부재를 스스로 인정하는 걸 회피하기 위해만들어진 환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교수는 소녀상을 정치적인 문제로 보았습니다. 작품이 정치의 프로파간다로 이용되면서 소녀상의 논란이 발생했다는 것이죠. 그는‘소녀상 현상’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려면 단일화된 시각에서벗어나 젠더 문제, 자본주의와 식민사관 등 이를 둘러싼 복합적인 배경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 ‘소녀상의 예술학’ 토론회 모습.


‘소녀상 현상’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제언


소녀상에 대한 미학적,사회 예술적 그리고 근대 민족주의 관점의 모순 등으로 주제 발표가 다양한 각도로 이루어졌는데요. 봄날의주말 데이트도 반납한 채 토론장에 모인 분들의 눈빛이 매우 진지했습니다. 이날 토론은 조용하면서도 열렬한 관심 속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 (왼쪽부터시계 방향순)토론자 이나바 마이 광운대 교수, 최범 디자인 평론가, 장수희 아프콤 연구원, 홍승희 소셜 아티스트
▲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김운성 작가


최범 씨(디자인 평론가)는 소녀상의 재현 이미지가 우리 사회에 피해자와가해자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재생산할 수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야기 도중 작품을 둘러싼 시각 차이로긴장감이 살짝 돌기도 했어요. 특히 소녀상의 듀오 아티스트중 참석한 김운성 작가가 가장 할 말이 많은 듯했는데요. 소녀상이 이분법적이거나 지나치게 단순한 재현이라는 비판에 대해 김 작가는 정제된 표현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싶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소녀상 밑에 깔린 그림자 모자이크가 의미하는 전쟁의 상처 등, 작품 속에 담은 깊은 성찰과 애도를 함께 읽어주기를 원했습니다. 



‘실체적 진실에 대해서 재현과 재현 사이 수많은 성사 속에서
발견되지 않으면 섬광처럼 빛났다 사라진다’(진중권)


한 시민 참석자가 인용한 문구가 이번 토론회의 의미를잘 짚어주는 듯한데요. 그는 소녀상을 재현의정치학 관점으로 해석한 최범 씨의 견해가 인상 깊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번 토론을 통해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녀상에 관한 제반의 의견들을 어떻게 실천하고확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안들이 검토되었습니다. 소녀상 지킴이 퍼포먼스로 알려진 소셜 아티스트 홍승희 씨는 소녀상이 보통의 조각품과 달리 안아주고 만지면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새로운변화에 주목했는데요. 그녀는 사람과 예술이 공존하는 퍼포먼스와 캠페인 등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소녀상은 작가의 손을 떠나 세월호 사건 등 작품을 접하는 이들의 내면과 중첩되면서 넓은 공감대를 형성해왔는데요. 김운성 작가는 최근 작업한 소녀상 미니어처가 뜻있는 시민의 발걸음과 함께 해외 유명한 공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만들어 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번 토론에 대한 내용은 서울문화재단 월간지 <문화+서울>에소개될 예정입니다. 앞으로 예술문화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예술이 새로운 역할을 찾아가기를기대해 봅니다.


글·사진 변경랑서울문화재단 시민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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