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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Apr 08. 2016

Jumping UP

한국 서커스를 향한 첫발을 내딛다

낯섦이 빚어낸 자유로움


▲ 공간 만들기에 푹 빠져있던 참가자들은 다른 참가자들의 발표를 지켜보는 데도 열심이다


지난 17일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에서 만난 장면은 다소 낯설었다. 그날은 ‘2016 서커스 전문가 양성과정 Jumping UP 기초과정①’이 3일 차로 접어든 날이었다. 하얀색 천 한 장으로 다양한 공간을 구성해보라는 연출가의 지도로 때로는 깔깔대고 때로는 진지한 눈빛을 한 이들이 각양각색의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시계의 분침이 반 바퀴를 돌았을 무렵,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는 놀라웠다. 3~4인으로 팀을 이룬 참가자들의 발표가 끝나자 이번 워크숍의 강사를 맡은 뱅상 고메즈(Vincent Gomez)와 기욤 베르트랑(Guillaume Bertrand)의 세심한 피드백이 이어졌다. 



컨템포러리 서커스로 Jumping UP!


▲ 취수장이라는 낯선 공간으로의 진입이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로 향한 발걸음에 두근거림을 더한다


광진구 광장동에 있는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는 거리의 문화를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거리를 위한 작품을 만들고 거리에서 활약할 예술가들을 키워내는 공간이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울시민을 위해 깨끗한 물을 공급해온 취수장은, 2015년 산업시설의 임무를 마치고 거리 예술의 원천지로 탈바꿈했다. 대상이 무엇이든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묵묵히 제공해온 세월의 흔적일까.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에는 아직도 구의취수장으로 쓰이던 시절의 지문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 제1 취수장 안에서는 이제 막 무언가에 익숙해질 즈음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된다


지난 3월 14일부터 18일까지 5일간 이곳 제1 취수장에서는 ‘2016 서커스 전문가 양성과정 Jumping UP 기초과정①’이 진행됐다. 서울문화재단과 프랑스 국립서커스예술센터의 협력을 통해 운영되는 본 워크숍은 ‘서커스 움직임이 어떻게 기예로 표현될 수 있을까, 서커스 기예가 어떻게 공연의 장면으로 구성될 수 있을까?’하는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최봉민 담당자는 “기존의 기예 중심 서커스에서 벗어나 기예와 예술을 접목한 컨템포러리 서커스 창작 인력을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라고 본 워크숍의 취지를 밝혔다. 


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되는 워크숍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오전(10시~12시 30분)에는 아크로바틱, 핸드 밸런싱을 비롯한 서커스 기예 워크숍이 진행되고, 오후(14시~18시)에는 장면구성과 같은 서커스 창작워크숍이 이뤄진다. 동영상 심사까지 거쳐 선발된 참가자들이어서인지 유연하게 강의 내용을 흡수해나간다. 일주일간 기초과정을 마친 참가자 중 일부는 3주간의 심화 과정을 거쳐 5월 마지막 주 프랑스에서 열리는 퓨리 페스티벌(Furies Festival)에서 그 결과를 선보일 예정이다. 퓨리 페스티벌은 올해로 27회째를 맞은 프랑스의 거리예술과 서커스 축제라고 한다. 그간의 워크숍이 장면을 구성하고 공연을 만드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다면, 공연은 그 결과물을 배출하는 장이 될 것이다.



도약을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


이번 워크숍의 총 연출을 맡은 뱅상 고메즈(Vincent Gomez)는 워크숍 전반과 참가자들의 결과물에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극단 Anomalie와 Hors Pistes의 대표이자 프랑스 국립서커스예술센터 강사이기도 한 그는 진지한 모습으로 참가자들을 지도하면서도 시종일관 유쾌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짧고도 길었던 5일간의 여정이 끝나던 날, 뱅상 고메즈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강사로서 그의 모습은 ‘가르치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 참가자들이 가진 것을 ‘끌어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Q1. 안녕하세요. 이번 워크숍에서의 소감이 어떠셨나요?

A1. 어마어마한 발견이었습니다. 한국 사람들과 작업을 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참가자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워크숍의 시작부터 끝까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본 참가자들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5일간 무언가를 만들고 변형시키고 그것들로 더 멀리 나아가는 작업을 했습니다. 대단한 성과를 내기에 일주일은 짧은 시간이지만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2. 서커스는 아직 한국에서 대중적인 문화 장르가 아니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한국형 서커스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2. 저는 마술사가 아니므로 어떻게 발전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이번 워크숍 참가자들은 이미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는 점입니다. 서커스를 배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즐거움, 하고 싶다는 욕망, 노력 세 가지입니다. 그들은 이 세 가지를 모두 갖고 있습니다. 


Q3. 5월에 프랑스 퓨리 페스티벌에서 선보일 공연은 어떻게 준비해나가실 계획인가요?

A3.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 워크숍 내용과 프랑스에서 진행될 공연에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워크숍 동안 한국 사람들과 어떻게 교류해야 할지를 배웠습니다. 앞으로의 시간은 서로가 가진 것을 공유하며 나아갈 계획입니다.


▲ 워크숍 마지막 날 그간의 소회를 나누는 참가자들의 모습이 한껏 진지하다


인터뷰를 마치고 주위를 둘러보니 마찬가지로 5일간의 배움을 마음껏 표현한 참가자들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작년 서커스 전문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두 편의 서커스 공연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는 안재현 씨는 “무대 위에서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을 표현하는 것이 좋았다. 이전에는 무대에 서면서도 뭐가 정확한지 몰랐다면 이곳에서 나는 투명하고 확실해졌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형식은 있지만 정답이 없어서 즐거웠다. 이번 워크숍의 모든 작업에는 어떠한 고정관념도 통용되지 않았다. 새로운 것들에 도전할 수 있었던 일주일이었다”라고 말하는 정성택 씨는 그 말을 온몸으로 표현하듯 독창적인 아크로바틱 무대를 보여주었다.



함께 더 멀리


▲ 워크숍 참가자들의 열정에 전염된 걸까.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를 나오는 발걸음이 한껏 가볍다


예술문화보다는 놀이문화에 가깝게 서커스를 바라보는 우리나라에서는 서커스 전문 교육 시설이 전혀 없다. 올해로 90주년을 맞은 동춘서커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한국의 서커스는 기예 위주의 공연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대중들도 단순 기예 쇼 정도로 서커스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한국형 서커스의 장래가 어둡다고 말하기는 섣부르다. 전통연희, 비보이, 마셜아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커스의 변주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워크숍 참가자들 역시 위에 언급한 분야를 비롯해 저글링, 신체극 등 여러 분야의 예술 직종에 종사하고 있었다. 한국 예술문화의 움직임에 서커스의 기예가 더해진다면 한국도 머지않아 독자적인 서커스 문화를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더불어, 이번 Jumping UP과 같은 워크숍이 생기고 있다는 건 서커스 예술과 대중의 틈이 좀 더 좁혀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에서는 6월과 11월 중에 본 워크숍보다 좀 더 길고 차별화된 서커스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과는 별개로 일반 시민들이 서커스와 친숙해질 수 있는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니 더욱 기대가 크다.


워크숍 협력 연출을 맡은 기욤 베르트랑(Guillaume Bertrand)은 워크숍 마지막 날 “한국 서커스 문화는 면면히 이어져 오다가 어느덧 없어져 버렸다. 하지만 지금 이 공간에 있는 이들이 한국 서커스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 어울리는 서커스의 모습을 스스로 찾아 나가길 바란다”라는 감회를 밝혔다. 이에 뱅상 고메즈(Vincent Gomez)는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 여러분들 멀리 가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어쩌면 필자는 5일간의 짧은 워크숍에서 한국 서커스의 출발점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막 도화선을 그은 Jumping UP의 힘찬 도약이 기대된다.


글·사진 방원경서울문화재단 시민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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