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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Apr 12. 2016

남아있는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귀.국.전(歸國展)

그녀를 말해요

소녀와 여기 남은 이야기


2년이 되어간다. 작년보다 올해 조금 더 무감하고, 다른 일들로 새롭게 소란스럽다. 이런 시절에 연출가 이경성의 신작 ‘그녀를 말해요’가 4월 14일 목요일부터 17일 일요일까지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된다. 연출가는 공연을 통해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엄마’들을 만나고자 한다. 단순히 작품을 통해서 사건에 대해 다시 환기하는 것이 아닌 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라온 아이를 이야기하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각각의 ‘세계’가 얼마나 따듯하고 생기 넘치며 거대한 시간을 품고 있는지를 들려주려고 한다. 또 남겨진 이들이 ‘부재’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해서 기록하고자 한다.



연출 노트 첫 문장에서 ‘이것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304개의 세계를 기억하는 남은 자들의 방식을 강구하기 위함이다.’라고 밝힌다. 남은 자들의 기억 방식에 집중하는 것은 사라진 자들에 대해 생각하는 동시에 현재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규정하는 일이다. 연극은 사회적 행동이자 개인적인 의식행위인 ‘기억의 방식’의 양가적 속성을 담고자 한다.


배우들은 무대 위의 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세월호로 딸을 잃은 ‘엄마’라는 존재들을 지속적으로 만나 인터뷰한다. 그들의 대화는 거대한 사건에만 초점을 두지 않고, ‘아이’가 한 가정에서 나고 자라면서 있었던 일상의 수집에 관심을 기울인다. 연출자는 사건으로 인해 순식간에 사라진 하나의 ‘세계’가 얼마나 따듯하고 생기를 지녔으며 거대했는지 나타내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크리에이티브 VaQi팀은, 이 작품에서 그려질 ‘그녀’인 예은이에 대해 또 다른 ‘그녀’ 인 예은이 엄마에게 인터뷰를 하고, 세월호 유가족의 육성 기록을 모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고 작품 제작 방향을 그려나갔다. ‘엄마’는 ‘그녀(딸)를 말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시간들을 불러오고, 배우들은 다시 그녀(엄마)의 말을 함으로써 ‘그녀(딸)’의 시간들을 ‘지금’, ‘여기’로 불러온다. 예은이의 이야기가 연극화되어 또 다른 방식으로 기억될 것을 남은 가족들도 알고 있다.



지금 여기로 돌아와서


‘그녀를 말해요’는 <귀.국.전(歸國展)>이라는 이름으로 ‘불행’, ‘commercial, definitely - 마카다미아, 검열, 사과 그리고 맨스플레인’과 함께 구성된 주제기획전이다. 귀국전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작가들이 유학 생활 중에 구상한 작품들을 보일 때 쓰는 용어였다. 그러나 이번 ‘귀.국.전’은 타국에서 멋지게 공부를 하고 돌아온 작가들의 작품이 아닌 후미진 골방, 낡은 연습실, 작은 소극장 혹은 세상 언저리에서 배우고 돌아와 바라본 고국의 이야기이다. 주변부에서 바라본 고국의 모습은 슬프고, 처절하고, 폭력적이다. 같은 시대와 공간에서 고민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기회를 주는 ‘귀.국.전’의 작품들은 다른 시즌 프로그램에 비해서 공연 기간이 짧다. 그 이유는 매년 특정 주제를 정해 ‘창작초연’과 ‘3주의 공연기간’이라는 조건 때문에 제작기회를 받지 못했던 젊은 창작자와 작품을 수용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귀.국.전’ 작품들은 2015년 대학로 소극장에서 최초의 목소리를 시작했던 작품들이 남산예술센터의 무대로 옮겨오는 확대 버전으로 무대가 커진 만큼 주제의 변주와 확장을 통한 재창작의 작업이다. 


무대에서 멈추지 않기를, 연출가 이경성


연출가 이경성은 2014년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편’에서 드라마센터를 주인공으로 극장이 바라본 한국 근대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2015년 ‘비포애프터’를 통해 거대한 사건과 삶의 관계, 세월호 사건 이전과 이후에 대해 탐구했다. 올해는 ‘그녀를 말해요’에서 ‘비포애프터’의 연장선상의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경성 연출가는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편’으로 2014년 한국 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에 선정되었고, ‘비포애프터’는 2015년 한국 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3, 월간 한국연극 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 7, 대한민국연극대상 신인연출상을 수상했다. 



그가 속한 창작집단 VaQi는 Veritas, art, Question, imagination의 첫 자가 모인 조합으로, 수레바퀴처럼 자유롭게 세상 곳곳을 향해 굴러가고 구석구석 예술적 사유를 전하고 나누고자 하는 취지에서 모였다. 이들은 기존의 공연과 부딪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유를 찾아내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연극과 탈-연극의 경계에서 고민한 작품 ‘연극의 연습-인물 편’,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는 ‘서울 연습-모델, 하우스’가 창작집단 VaQi가 해온 작품들이다.


연출가 이경성의 이전 작품에는 ‘연습’이라는 말이 많이 들어간다.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편’ 이전에도 그가 연출한 ‘연극의 연습-인물 편’, ‘서울 연습-모델, 하우스’ 에도 ‘연습’이 들어간다. 그가 작품 연습 과정에서 좋았던 것을 연극에 많이 올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연극이 ‘삶의 연습’이 되어 무대 위에서만 머무는 무기력을 극복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들어간 말이다. 더 나아가 그에게 연극은 ‘좀 더 좋은 삶을 최대한 살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이 세계를 바라보는 매개체’라고 한다. ‘삶이 연극보다는 우선돼야하고, 좋은 연극을 만들기 위해서 연극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고민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무대와 연극 그리고 삶을 분리하지 않는 이경성 연출가가 보여줄 ‘그녀를 말해요’를 기대하는 이유이다.


글·사진 김민범서울문화재단 시민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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