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것 그대로의 감각
몸을 꽉 죄는 브래지어를 벗고 헐렁한 티셔츠에 레깅스를 입고 산으로 향합니다. 두꺼운 등산화보다는 낫겠지 생각했던 운동화가 왼쪽 복숭아뼈를 누릅니다. 운동화 굽이 높아 휘청거리는 바람에 날아가 버릴 것만 같습니다. 나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길을 걷습니다. 몸을 깊이 느껴야겠다는 의지 때문이 아닙니다. 신발이 불편해서 도저히 산책에 집중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뭇가지와 나뭇잎, 눈물방울처럼 작은 돌들과 뾰족한 바위들, 단단한 통나무 계단을 온 발로 느낍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젖은 땅입니다. 젖은 땅 앞에서 나는 조금 망설였으나 한발 내디디니 땅이 내게 착착 감깁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맨발 산행에서 나는 여백의 자유로움과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발바닥의 감촉에서 군더더기를 비운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피부와 근육을 통해 전달되는 날 것 그대로의 감각에서 가난이 주는 은혜를 발견합니다. 과거와 미래에서 내가 소화할 수 있는 것만 골라낼 수 있는 힘과 마주합니다.
그렇게 나의 전 생애와 나의 우주가 온전히 내 것 됩니다.
산행 끝에 나는 오늘 아주 훌륭한 섹스를 하겠구나 생각합니다. 예민하고 자유로운 몸으로 느끼는 깊은 감각에 너그러워진 나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난다캠퍼스 #공간살림 #살림명상 #명상 #산책 #자기 치유 #자기 회복
#아난다캠퍼스의 공간살림명상 중에 작성한 살림 메시지입니다.
#씨앗글: 아난다 박미옥의 '일상으로의 황홀한 몰입 살림 명상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