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어낸 불행 앞의 나
밤의 산책입니다. 직장 근처의 퇴락한 동네를 걷습니다. 차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지만, 오래되어 희미해진 상가 간판과 다 찢어져 거미줄처럼 걸린 천막을 보니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나는 긴장한 채 자꾸 두리번거립니다. 누군가 저만치서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은 보지 않고, 손에 무엇이 들려있나 확인합니다. 가슴을 모읍니다. 숨을 아껴쉽니다.
하천길을 따라 걸으려고 계단을 타고 내려가려다가 이불뭉치를 봅니다. 나는 뒷걸음질 치며 이쪽과 저쪽을 잇는 다리를 건넙니다. 다리 너머로 화려한 네온사인들이 반짝이는 모습을 봅니다. 환락가가 보입니다.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옵니다.
나는 여기서 실제로 어떤 위협도 당하지 않았고 어떤 불행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여기서 내 과거와 내 미래의 두려움 또는 좌절 또는 고통과 마주했음을 깨닫습니다. 그때 나는 숨을 아껴 쉬고, 두리번거리고, 뒷걸음질을 친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머리로는 여러 이야기를 지어낸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숨을 세 번 천천히 깊게 쉽니다. 지금-여기로 나는 돌아옵니다. 그리고 의연히 길을 걷습니다. 조금 더 오래 걷습니다. 이렇게 나는 지금-여기의 나로 익어갑니다. 알아차림으로 일상으로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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