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간, 산책, 그 열네 번째 이야기
실망과 실패들, 입체적인 알아차림의 안내자
발목까지 오는 긴 원피스에 젤리슈즈를 신고 산으로 향합니다. 지난번에 온 비로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은 땅이 푹신합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신발을 벗고, 맨발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산행 시작부터 작은 날파리 몇 마리가 나를 쫓습니다. 날파리는 내 눈과 귀에서 얼쩡대며, 윙 소리를 내고, 내젓는 나의 손을 피하며 나를 희롱합니다. 나는 날파리를 잡으려고 손에 든 신발을 휘젓고 손뼉을 치다가 달립니다. 하지만 이것들도 내 속도만큼 빠르게 날아 나를 빙 두릅니다. 나는 산행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숲의 그늘을 벗어나 뙤약볕 아래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걷습니다. 여전히 손을 휘저으며 눈을 보호하기 위해 실눈을 뜨거나 감으며 걷습니다. 이 끈질긴 것들은 내 산행이 끝날 때까지 나를 쫓습니다.
나는 나로 하여금 가는 길을 멈추게 하고 도망치게 하는 것은, 멧돼지나 뱀같이 크고 무서운 것이 아니라, 작은 초파리입니다. 산책은 어쩜 이렇게 인생과 비슷한지요. 나를 좌절케 하는 것은 언제나, 초파리처럼 내 눈과 귀를 성가시게 하는 작은 실망과 실패들이었습니다. 해봤자 별수 없다는, 또는 해볼 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곤 했습니다.
나는 공간 살림을 통해서, 작은 기쁨과 작은 승리들로 이 작은 실망과 실패들을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산책 끝에 나는 알게 되었네요. 초파리처럼 그 작은 실망과 실패들도, 사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입체적인 알아차림의 안내자였다는 것을요.
등산을 할 때는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고 믿으며 몇 년 동안 한 번도 신지 않은 등산화를 비우지 못하고 있었어요. 몇 차례 비움을 시도했으나 필수품처럼 느껴져 마지막 순간에는 항상 다시 신발장에 넣곤 했지요. 젤리슈즈를 신고도, 아니, 신발을 신지 않고도 산행이 가능함을 감각적으로 경험하면서 공간을 차지하면서도 내 삶에서 효용을 잃은 등산화를 이제는 정말 비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드네요. 참 고마운 산책입니다
#아난다캠퍼스 #공간살림 #살림명상 #명상 #자기치유 #자기회복 #자기돌봄 #산책 #비움
#아난다캠퍼스의 공간살림 명상 중에 작성한 살림 메시지입니다.
#씨앗글: 아난다 박미옥의 '일상으로의 황홀한 몰입 살림 명상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