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난다 캠퍼스의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하 아기시)' 12주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 5주 차에 나는 죽었다. 나는 죽기 전, 생의 마지막 10분 동안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마지막 말을 남겼다.
제 걱정은 마세요. 고통은 사그라들 것입니다.
저 너머의 세계가 나는 늘 궁금했습니다. 그러니 너무 슬퍼 마세요. 저는 드디어 그것을 경험하게 될 테니까요.
엄마 사랑해요.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 제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엄마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세요.
엄마는 제 우주셨고, 저의 가장 그리운 분이셨어요.
제가 이만큼 산 것은 엄마의 사랑 덕분이었답니다.
엄마 덕분에 저는 따뜻한 품에 안겨 젖도 배불리 빨고, 귀여운 곰돌이 머리도 해보고, 파란색 우리 집 대문도 넘어보고, 통영 그 아름다운 바다가 빛으로 가득한 순간도 보았어요. 철없는 사랑도 해보고, 엄마가 그러셨던 것처럼 예쁜 아이 둘 낳아 품에 안아보았어요.
엄마 제가 죽어 어디에 있을 거란 생각 마세요.
나는 어린 시절 그 모습 그대로 엄마 기억 속에 살아 있어요.
엄마 자책 마세요. 엄마는 최고의 엄마셨어요.
잘 챙겨 먹고, 잘 자고, 좋은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엄마 웃음소리가 내게 들릴 거예요.
아빠, 담배는 너무 많이 피우지 마세요.
아빠가 다정하게 절 안아주셨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요.
'토끼'하고 불렀던 목소리도 나는 기억해요.
고마워요, 아빠.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어요.
그래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 항상 궁금했어요.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아빠! 아빠 덕분에 나는 가장 자연스러운 나로 살아갈 수 있었어요.
아빠 덕분에 나 자신과 화해할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해요.
아빠를 미워했던 때도 있었지만, 전 그 시절을 다 잊었어요.
저는 그저 자신에 목마른 한 사람을 볼 뿐이에요.
저처럼 언제나 그립고 슬픈 사람을 알았을 뿐이에요.
남편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우리 열매, 기쁨.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해
너희 모습 그대로 엄마는 너희를 사랑해.
엄마 없는 빈자리가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엄마는 네 속에 있어. 네 속에서 사랑한다는 소리가 들린다면 그건 엄마 속삭임이야.
엄마는, 엄마 사랑은 온 우주를 돌고 돌아 결국 너희에게 가 닿을 거야.
사랑한다, 엄마 딸, 사랑한다. 사랑해.
내가 마지막 순간 가장 함께하고 싶은 이들은 내가 사랑하는 내 가족이었다. 죽음 앞에 선 내가 그들에게 전할 것은, 감사와 사랑, 그리고 속죄였다. 나는 가족을 더 깊이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 안타까웠다. 나는 부모의 사랑에 감사로 화답하지 못했던 것, 남편을 뜨겁게 사랑하기를 포기했던 것, 아이들이 자기로서 완전무결하다는 믿음을 유산으로 남겨 주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나는 이미 내 것인 삶의 기쁨과 사랑을 누리지 못하고, 허기지고, 목마르고, 외롭고, 쓸쓸한 이 마음 메울 것을 찾는다며 헤매는 내가 안쓰러웠다. 죽음 앞에 서서야 나는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순수한 나로 살며, 깊은 사랑을 나누는 것.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였다.
나는 그날 결국 죽었다. 그리고 다시 살았다. 죽음 이전의 기억을 온전히 간직한 이 삶에서, 같은 실수와 후회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나는 내가 누구이고,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하는지 알아야 했다. 어떤 나는 트러나 폴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을 나침반 삼아 현 위치의 나를 찾았다.
나는 애벌레였다. 하늘을 향한 본능으로 목숨을 걸고 서로를 짓밟으며 올라가던 꼭대기엔 사실 아무것도 없고, 땅으로 내려가 고치가 되어 나비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애벌레. 나는 저 위에도 아무것도 없다는 자신의 말을 외면하는 다른 애벌레들의 모습과 , 끝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내리막길이라는 냉랭한 현실 앞에 희망의 빛을 잃고 혼란에 떨고 있었다. 나비에 대한 환상마저 희미해졌다.
사실 나는 최근 홍수처럼 밀려오는 자신에 대한 의심 속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로서 사는 지혜, 내 몸의 감각이 말하는 희열에 스스로를 맡기는 몰입, 희열에 답하는 것이 바로 내 재능이란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런 게 무슨 딸이냐고, 이런 게 무슨 아내고, 엄마냐고, 이런 게 무슨 글 쓰는 사람이 되겠냐고, 증거를 보이라고, 이 몸뚱이에 그런 위대한 것이 어디에 있냐고 하는 내면의 빈정거림에, 나는 알아차림 이전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애벌레는 결국 나비의 삶을 살게 될 운명인데, 그저 믿고 고치의 시간을 견디면 되는데, 하늘을 향한 욕망이 나를 부르는데, 결국 꽃의 희망이 될 것인데 , 나는 나됨을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대를 이은 아주 오랜 습관처럼.
나는 이 두려움 앞에 직면해야 했다. 이토록 두려울 수밖에 없는 나를 깊이 이해해 주었다. 다시 살아도 살고 싶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올랐다. 나는 분명 그럴터였다. 나는 피할 수 없이 나비가 될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