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치유 기록 NO. 8
아난다 캠퍼스의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하 아기시)' 12주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나는 이 프로그램 8~9주 차에, 일상에서 내가 느끼는 기쁨을 채집했다. 나는 머리로 느끼는 기쁨이 아니라 온몸이 감각하는 기쁨의 순간을 30분 단위로 기록하며 내가 언제 실제로 행복해하는지, 웃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아픈 사람이었는지 겸손하게 인정할 수 있었다. 나는 아이들과 있는 시간 행복하지 않다고 기록했다. 아이들이 어서 밥을 먹고, 잠을 자야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늦장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에게 화를 냈다. 엄마도 사람이라고, 엄마도 쉬어야 한다고, 엄마도 엄마 시간이 갖고 싶다고.
나는 이 기록을 보고 한참 울었다. 나는 4년이 넘는 시간 두 아이 가정 보육하며, 아이들의 유년 시절을 지켜준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아이를 양육하며 마음에서 솟아나는 깊은 기쁨에 감동할 때가 자주 있었지만, 내가 예상했던, 엄마가 아이들 곁에 있어야 하는, 애착 육아의 결정적인 3년의 시간이 지나면서는 초조해졌다.
유치원에 다닐 때쯤 되면, 재우는 것도, 먹이는 것도, 씻기는 것도 쉬워질 거라 믿었는데, 아이는 별로 달라진 것 없이 여전히 엄마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일곱 살이 된 딸을 보면서 너는 이제 자라야 한다고, 반찬 투정도 그만하고, 양치질할 때 실랑이 하는 것도 그만두고, 영상을 더 보고 싶다고 때 쓰는 것도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밥을 먹으면서 아이 둘 책 읽어주는 것도 너무 지겨웠다. 남편이 둘째 책을 읽어주는 소리, 내가 첫째 책 읽어주는 소리가 겹치면서 내 머리가 울렸다. 지끈거리는 머리로 아이들 씻기고 저녁 먹은 것을 치우고 나면 제발 모두가 잠든 밤이 찾아왔으면 하고 바랐다.
다행히 나는 기쁨 채집을 하면서 내 행복의 조건을 알게 되었다. 나는 개인의 시간을 조금 가지고 나면, 기쁜 마음으로 가정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충전된 나는 아이들과 농밀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겼고, 나에 대한 갈급함을 채운 후에 남편과 나누는 대화를 정말 좋아했다.
당시 나는 나는 퇴직과 이직 사이의 짧은 휴식의 시간 동안, 어른 둘이 집에 있으면서 아이 하나를 돌보고, 유치원에 간 아이 하나를 기다리는 상황을 견딜 수가 없어서 다시 일을 하러 나갔었다. 나는 아이들 곁에 있을 수 없을 만큼 내가 아팠던 것을, 내가 나를 돌보지 못해, 가족 모두가 긴장과 불안 속에 살았음을 알고 애통함에 마음이 뒤틀렸다. 나는 잘해보려다 모든 것을 망치고 있었다. 가족과 하는 일상을 기쁨 아닌, 과제나 의무로 만들어버렸다.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엄마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돌봐야 했다. 나는 내가 몸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남편과 사랑하는 것도 몸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여태껏, 모든 시간 가족 옆에 있어야 좋은 엄마, 좋은 아내인 줄 알았다. 나를 헐어서는 가족을 참 사랑할 수 없었다. 나를 돌보는 것이 아이를 돌보는 것이고, 나를 돌보는 것이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고, 나를 돌보는 것이 가족을 세우는 일이었다. 환상 아닌, 현실 세계에서의 육아는 멘털(mental)이 아니라, 피지컬(physical)이었다.
나는 나를 돌보고 사랑한 만큼 가족을 돌보고 사랑할 수 있다.
나는 나에게 깊어진 만큼, 가족에게 깊어질 수 있다.
진실한 나라야, 진실한 어머니, 진실한 아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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