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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Jul 13. 2024

죽을 거라는 말에 웃어줄 줄 알았다.

 대학생 시절 동기들과 MT에 갔었던 나는 평소와 달리 아주 깊게 술에 취했었고, 마치 마이크를 잡고 떠드는 사람마냥 좌중의 주인공이 되어 동기들 앞에서 흰소리를 지껄였다. 평소와 다른 나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는지, 동기들은 나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 웃었기에 더 주체를 하지 못하며 광대처럼 굴었다.


그러다가 나는 소주 잔과 국물이 졸아든 라면냄비, 숟가락이 꽂혀있는 먹다 만 수박화채를 앞에 두고서 각자 자신의 인생 계획을 돌아가며 짧게 말해보자는 말을 꺼냈다. 새벽 3시가 넘어가던 시각,  다들 졸음과 술기운에 잠겨 맨정신에는 손발이 오그라들 수 있는 그 제안을 좋다는 듯 받아들였다.


내가 당시에 무슨 말을 했는지는 이제 나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나만 나는 내 차례가 왔을 때 부분적으로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40대가 되면 말이야. 내가 지금 살고 싶었던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 않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거야."

 

 당시에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갖고 있었고, 나이가 들었을 때에 조차 소설가로서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 않다면, 그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흔한 범인들처럼 삶에 구질구질하게 매달리지 않는 나의 단호한 태도가 꽤나 마음에 들기까지 했다. 대학생인 나에게 마흔은 너무 먼 나이였으니,  그 나이 때의 죽음은 와닿지 않는 먼 미래같은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나의 약간의 진심과 허세, 허풍, 오만이 담긴 말을 동기들이 우스갯소리로 넘기거나 한 번 놀라고는 지나갈 거라고는 생각했다. 그것도 아니면 박수를 치며 멋있다고 하거나, 못할 말을 한다고 야유를 할 거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누군가 나의 그 말을 듣고 '불편함'을 느끼거나 '화'를 낼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할 줄 몰랐던 것이다. 역시나 대부분 내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고, 멋있다고 추켜세우거나 그게 뭐냐며 당황하거나 어이없다며 웃는 식이었다. 그런데 나와 친한 동기 언니만 혼자서  아주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결국 언니에게 왜 그러냐며 물어본 쪽은 나였고, 곧이어 쌀쌀맞은 음성이 돌아왔다.


  "너,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내 친한 친구 아버지가 자살했을 때, 내 친구가 얼마나 괴로워했는데. 내가 장례식장 갔을 때, 그 가족들을 보고 얼마나 눈물 흘렸는데. 너 진짜, 그러는 거 아니야."


평소에 언니는 진지하기 보다는 가볍고 재미있는 농담을 많이 하는 밝은 분위기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언니가  한 번도 보인적 없는 굳은 표정을 하고서 나에게 쓴소리를 하자, 나를 포함해 모두들 삽시간에 술에서 깨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언니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사과 했지만 언니의 말에 수치심을 느꼈고 뒤이어 언니가 조금 미웠다. 이런 술자리에서 한 말에 굳이 저렇게 진지하게 반응해야 하나 하는 치기 어린 마음에서였다. 나는 얼마나 건방지고 가벼웠는가. 스스로의 잘못에 진심으로 반성을 하고 언니를 이해하게 된 건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나서였다. 시간이 흘러도 때때로 그 날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은 채 수치심과 함께 간간히 떠오르곤 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다시는 누군가에게 아무리 술에 취해도 나의 '목숨'에 대해서 가볍게 얘기하지 않는다. 그게 누구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일이라는 걸 배웠으니까.


그런데도 가끔씩 나는 마치 소설 '인간실격'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처럼, 때때로 '죽음'을 고통의 도피처처럼 여길 때가 있다.  다자이 오사무는 총 다섯번의 자살 시도를 했었고, 내면의 수치와 고통을 죽음으로 치환하려던 사람이었다. 그의 작품이 늘 우리나라 베스트셀러에 올라와있는 것은 그의 허무한 내면과 죽음에 대한 끌림에 모두들 어느정도 공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마치 내게 괴로운 현실과 끝도 없는 불안에 대한 숨통이나 호흡기처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적어도 이 고통에, 허무에, 불안에, 괴로움에, 아픔에 '끝'이라는 마침표를 달 수 있다는 희망을 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내 생명이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오만'이 드는 날이면,  모든 걸 포기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술에 만취했던 새벽 날 언니에게 혼이 났었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본다.


장례식장에 들어와 내 영정사진을 노려볼 언니의 눈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나는 내 입에 '죽음'이라는 호흡기를 떼고, 마음을 다시 무장한 채로 삶과 싸울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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