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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저김 Oct 12. 2022

불면의 역사

Since 처음, 죽음에 대해 생각한 날

내 기억으로는 족히 30년 정도는 불면증을 달고 살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 잔 적이 있긴 한가 싶다.


미취학 아동일 때는 엄마 품을 떠나지 못하는 아이였다고 들었고,

초등학생이 된 뒤에는,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인식한 뒤에 잠드는 것을 두려워했다.


의식적으로 잠을 거부한 첫 번째 이유는 ‘죽음'이었다.

막연하게 ‘죽으면 끝’,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고 나면, 몸서리쳐질 정도로 무서웠다.


어린 마음에 이 공포를 혼자 이겨낼 자신이 없어서,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어머니에게 물었고

독실한 기독교인이신 어머니는 당연히 성경에 있는 말씀을 해주셨다.


하지만, 말 그대로 모태신앙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음에도

본능적으로 믿기지 않았던 것 같다.


여전히 두려웠고, 마음의 안정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저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물론,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의식 하면 결국 죽음을 의식하게 되고.. 한 번 죽음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그 생각을 떨쳐내기는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초등학교 입학도 하지 않은 나이에,

“사람은 어차피 죽는데, 왜 태어난 거예요?”라고 어머니에게 물었고

이 질문은 어머니에게도 나름 임팩트를 주긴 했던지, 요즘까지도 내가 한 질문에 대해 이모들이나 친구들에게 종종 말씀하셨다.


그만큼, 죽는 것이 무서웠고(지금도 안 무섭진 않다..^^)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받아들였다는 표현보다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에 대한 포기 혹은 순응이라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어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신앙심은 생기지 않았다.

다만, 어머니와의 약속(고등학생 때까지는 대학 가면 교회를 다니겠다고 했고, 대학에 가서는 군 전역 후 교회를 다니겠다고 약속했다.)을 지키고 어머니에게 하는 작은 효도 정도로 생각하고, 일주일에 한 시간을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가서 앉아있었다.(독립 이후에는 이 마저도 제대로 못 지키지만…)


그래도, 내게 작게나마 신앙심이 남아있다면, 이 정도 마음은 가지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어머니가 믿는 세계가 사후에 존재하기를…

그곳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하지만, 종교서적보다는 과학서적에 마음이 가고

창조론보다는 진화론에 설득되고

창백한 푸른 점, 이기적 유전자, 엔드 오브 타임 같은 책에 매료되는 것을 봐서는

여전히 내게 기독교적 믿음이 찾아올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송서래가 찾아오지 않는 한, 만성 불면증 역시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굳이 다행인 점을 찾자면,

워낙 오랜 시간 불면의 밤을 보내다 보니

그닥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오늘 정말 못 잘 것 같은 날은 느낌이 온다.


그런 날은 빠른 포기와 함께, 이 긴긴밤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 고민한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예능 몰아보기를 하거나, 유튜브만으로도 사실 요즘엔 그렇게 밤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예전에 아이유가 “대화의 희열"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본인이 불면증이라는 얘기를 하면서 ‘사랑'을 “상대방이 잘 잤으면 하는 마음”으로 정의하며 만든 음악이 [밤편지]였다고 소개한 것이 기억에 남았는데..


내식대로 정의하자면,

불면증인 상대를 위해 쏟아지는 잠을 밀어내는 마음과

불면증임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마음 놓고 잘 수 있게 오지 않는 잠에도 불구하고 계속 눈을 감은 채 상대가 잠들기를 기다리는 마음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이렇게 잠 못 드는 시간이 있어서, 꾸준한 글쓰기가 가능해지는 것 역시 장점이다.

모든 일이 늘 그렇게 괴롭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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