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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저김 Dec 28. 2022

음악서비스 마케터로 지낸 7년

그 시간이 만들어준 음악에 대한 생각

음악을 좋아한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잘 안다고는 말하기 힘들어진 것은

음악서비스 회사에 입사한 뒤부터였다.


음악을 나름 많이 들었고,

4살 터울의 누나 덕분에 내 나이또래가 즐겨 듣는 음악과는 차이가 좀 나는 음악취향을 갖고 있어서

나름 듣는 음악의 스펙트럼도 꽤 넓은 편이었지만,

음악 잡지 기자 출신의 직원, 현재도 음악활동 중인 아티스트 직원, 프로듀싱이 부업인 직원, 이센스가 트위터에서 언급한 적도 있던 래퍼 출신의 직원까지 있는 환경에서는

명함 내밀기 힘든 것이 당연했다.


해리포터 세계관에 대입하면, 그들에게 난 머글이었고

머글들 사이에서는 음악 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음에도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난 그저 말 좀 섞을 수 있는 머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덕후’들이 이 회사에 이렇게 많을 줄 몰랐고,

그들의 덕력과 기세에 눌려 난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좋아하는 아티스트 얘기를 한다고 치면,

대부분 해외 아티스트 얘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이마저도 콜드플레이, 마룬 5 같은 흔히 말하는 월드스타 라인업은 말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 룰처럼 돼버렸다.)

국내 아티스트는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인디 가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그들 사이에서 가요를 좋아하는 사람은, 무시하기 딱 좋은 먹잇감처럼 느껴졌고, (실제로 몇몇은 정말 국내 대중 가수 몇몇을 매우 혐오한다.)

해외 유명 아티스트의 국내 내한 공연의 티켓팅 시간은 (마치 공식적으로) 업무를 하지 않고 매달려도 되는 시간처럼 모두 당당하게 티켓팅에 집중했다.


하지만,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늘 그렇듯 새로운 자극이 되고 즐거운 일이었다.

성시경을 싫어해서 특정 아티스트의 음악을 스킵할 수 있는 기능인 “아티스트 건너뛰기”라는 기능을 만들어내는 동갑 기획자와 친해질 줄도 몰랐고,

업계 사람들과 친분이 생긴 뒤로는 공짜 티켓이 쏟아져 나와서, 주변 지인들에게 능력 있는 사람처럼 포장되는 경험도 이 회사가 아니었으면 해보지 못할 일이었다.


7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을 음악서비스에 몸 담으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의 가요제 앨범에 내 이름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유명 해외 아티스트의 내한공연 주최를 맡은 것도,

유명 프로그램 PPL을 2년 넘게 하던 중, (내 잘못은 아닌 걸로 밝혀졌으나…) 기사를 통해 큰 물의를 일으켜 보기도 하고,

한 때 가장 좋아했던 페스티벌을 주최하기도 하고,

유료 이용자 수를 2배로 만들어보기도 하고,

운이 좋게도, 입사 당시 (나중에 알고 보니 구조조정 성격에 가까웠지만) 인력 재편이 있어서,

마케팅 팀원이 나 혼자였고,

그렇게 (당시에는 불만 밖에 없었지만) 모든 마케팅 업무를 다 할 수밖에 없던 시간을 견뎠더니,

내부에서 진행하는 대형 프로젝트는 도맡아 전담하면서 커리어적으로도 그렇고, 내부 평가도 좋게 받을 수 있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음악”을 주제로 글을 쓰려고 하다 보니,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결국, 내가 음악서비스에서 일한 시간이었다.


앱 하나에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이 들어가고,

누군가는 평생 한 번도 써보지 않을 기능과 메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그저 그런 이벤트 페이지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일반 이용자는 알 필요도 없는 사실이지만)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또한, 내가 가장 오랜 시간 몸담은 조직이기도 하고, 회사에 대한 애정은 사라졌지만

당시 함께 일한 동료들이나 서비스에 대한 애정은 아직도 꽤 깊은 편이다.


물론, 일할 당시에는 앱을 켜는 순간부터 음악을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앱 화면 자체가 업무로 보였기 때문에 음악을 예전처럼 즐기기 힘들긴 했지만,

이때만큼 음악을 많이 들었던 때도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음악을 잘 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음악은 좋아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Bros의 win win 같은 노래도 좋아하고, D Sound의 Do I Need A Reason도 좋아하고, Cigarettes After Sex의 Apocalypse도 좋아한다.


국내 아티스트는 무시하고, 해외 아티스트의 음악만 듣는 지인도 있긴 하지만,

취향 자체를 권력으로 생각하는 힙스터와는 거리를 두려고 한다.

그래서 전에도 언급했지만, 이동진 평론가의 이 인터뷰는 종종 되새기는 말이기도 하다.


취향 자체를 권력으로 생각하는 힙스터가 있죠. 어떤 특정한 취향을 가진다고 해서 그 취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계급적으로 얕잡아보는 일군의 사람들 또, 그 깔아보는 맛으로 덕질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실제로는 본조비를 좋아하면서 본조비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허위의식을 가진 부류도 있고요. 또 자신이 최상위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뻐기고 싶어 하는 부류도 있죠. 그런데 진짜 훌륭한 향유자들은 에어 서플라이를 좋아하면 에어 서플라이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죠. HOT가 비틀스보다 위대하다고 말할 수는 없죠. 그렇지만 비틀스보다 HOT를 좋아할 수 있죠.



난 이상민이라는 연예인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상민이 프로듀싱한 룰라, 디바, 샵, 브로스를 좋아했고 샤크라도 한두 곡 정도는 좋아했다.

그 싸움에 어떤 내막이 있었는지는 궁금하지도 않지만, 샵의 서지영과 이지혜의 보컬로서의 개성은 인정하기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박지윤이 훌륭한 가수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보컬 박지윤의 목소리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음악성보다는 보컬리스트가 가진 목소리의 개성에 더 많은 점수를 주는 편이다.

음악성이 다소 떨어져도, 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가 확실하다면 그 아티스트의 노래 중 내가 좋아할 만한 노래를 찾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브로콜리너마저와 가을방학의 보컬인 계피도 그랬고,

사람으로 매력은 점점 잃어가고 있지만, 볼빨간사춘기의 안지영도 그랬고,

롤러코스터의 조원선도, 검정치마도, 악동뮤지션도, 윤미래도, 이소은도, 마마무도, 신해철도, 지코도, 언니네이발관도, 슈프림팀도, 규현도, 블랙핑크의 로제도, 권진아도, 이영지도,


그들만이 내는 목소리가 확실해서 좋아한다.

물론, 많이 아는 만큼 많은 것이 보이는 것도 맞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퀸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퀸의 모든 정규앨범을 1-2개월씩 기다리며 모았던 것도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큰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꼭 많이 알아야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깐…

굳이 더 알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깐…

괜히 더 알았다가, 좋아하던 음악이 싫어지는 경우도 있었으니깐…

딱 이 정도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많은 음악을 편견 없이 좋아하고 싶다.

오랜만에 (현재까지는 마지막으로 좋아한 남자 아이돌인) 블락비 음악이나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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