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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저김 Jun 05. 2023

나이 듦에 대하여

부모님의 죽음이 멀지 않다고 느껴진 순간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라는 질문은 은근히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듣는다.

그래서, 타임슬립 / 타임머신 소재의 콘텐츠도 끊임없이 나오는 것 같고, 이제는 인생 2회차 콘텐츠까지 넘쳐나고…


일단, 나는 한 번도 특정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이런 나를 신기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최근 유퀴즈에 나온 김희애 배우나

최근 나영석 PD와 대화를 나눈 이서진 배우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라 더 반가웠던 것 같다.

김희애 배우처럼 후회가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고도 할 수 없는 내 삶이지만

이서진 배우처럼 고생스러운 기억으로 가득한 과거도 아니고,

어렸을 때가 특별히 불행했다거나, 엄청 힘든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미성숙한 예전의 나보다는 (여전히 미성숙하지만) 조금이라도 나아진 지금의 내가 더 좋다.


지금도 가진 것이 많지 않지만,

예전의 나보다는 경제적으로도 괜찮은 지금이 더 좋다.

굳이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다시 고생하고 싶은 마음 역시 없다.


또한, 아직까지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나의 나이 듦을 체감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통해 내가 나이 듦이 확 와닿을 때는 많다.

어리게만 봤던 학교 후배가 벌써 XX살이라고 하거나, 내 조카가 내년에 수능을 본다고 하거나,

부모님의 몸이 이제 조금씩 아파가는 것을 볼 때 그렇다.


몇 년 전부터 어머니는 폐 섬유화 증상을 겪고 계시다가 지난달에는 폐렴으로 입원하시기도 했고,

지난주에 아버지는 건강검진 결과, 위암이라는 결과까지 전해 듣게 되었다.

어제 CT 촬영을 마치시고, 이번주 목요일에 암이 어디까지 전이 됐는지 확인하는 내시경을 다시 한번 할 예정인데

마음 한켠에 부모님의 죽음을 항상 떠올리곤 했지만, 조금 더 살갗에 와닿는 느낌이다 보니 혼란스러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은 편도 아니고 살가운 아들도 아니다 보니

기껏해야 야구 얘기라도 해야 겨우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는 못난 자식을 둔 아버지가 가끔씩은 안타깝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장성한 아들딸이 생일, 어버이날, 명절마다 용돈도 드리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는 것 같은 별 것 아닌 일에도 “요즘이 가장 행복하다”를 아버지를 보면서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런 아버지가 본인 스스로도 남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암’이 본인의 질병으로 다가오니 많이 당황스러우셨나 보다.


아버지와 함께 처음 진료실에서 암 확진 판정을 받고, 추가검진 예약을 하는 과정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아 하시면서도, 당황하는 기색은 차마 숨기지 못하셨다.


나에게 있어서, ‘죽음’을 처음 마주한 일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일이었고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는 순간에는 ‘내가 이렇게 울 수 있는 사람이구나’를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몇 년 뒤,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입관식’을 지켜보면서도 스스로 놀라울 만큼, 눈물이 조금도 나오지 않았고… 슬픈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이 일이 내가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 때 반복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다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어릴 때, 아버지를 참 싫어했다.

그래서 ‘결국 내가 싫어하던 부모의 모습을 자식이 닮게 된다’는 말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이다.


특히, 아버지의 ‘허세’가 너무 싫었다.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말만 앞서다가 벌어진 일의 뒷수습은 늘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머니에겐 부족하지 않다 못해 넘치는 사랑을 받으면서 컸고, 외할머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물론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감정을 충분히 받지 못했고, 친할머니 역시 우리 어머니를 힘들게 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만 내게는 남아있었다.


이런 과정이 부모님의 죽음을 마주할 때

외할머니와 친할머니의 죽음을 마주할 때와 마찬가지로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졌다.


아직 아버지의 검진 결과가 정확하게 나온 것은 아니지만,

더 솔직하게는, 두 분 중 어떤 분이 먼저 돌아가시는 상황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정말 내 이기적이고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 대상은 항상 아버지였다.


어머니가 없는 아버지가 과연 잘 버티실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혼자되신 아버지를 나나 누나가 과연 잘 모실 수 있을까를 생각했을 때 둘 다 긍정의 결과는 떠오르지 않았다.


지난주 독서모임에서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과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으로 모임을 진행했었는데, 아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서로 나누던 중

모임에 참석한 여성 멤버들 대부분이 우는 일이 벌어졌다.


진희는 정신적으로 아픈 엄마에게 버려지고, 얼굴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아빠와의 관계형성도 없는 정서적 결핍으로부터 성장하여 12살의 어린이가 가지기 힘든 절재력과 자기 객관화로 스스로를 컨트롤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결핍을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결핍이 성장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나요?



모두 부모를 통해 받은 상처와 결핍에 대한 이야기였고,

내가 우리 아버지를 미워하는 이유 정도는 입 밖으로 꺼내는 것 자체가 미안할만큼 무거운 이야기였다.


그 순간, 아버지에게 더 미안해졌다.

어린 나에게 상처를 주었을지언정, 과연 그게 내가 지금까지 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 만큼 컸나 싶기도 했고…


언젠가는 찾아올 아버지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아버지의 죽음이 찾아올 때, 내가 제대로 슬퍼하는 사람이면 좋겠고,

후회를 하지 않을 수도 없겠지만, 지금부터라도 후회할 일은 최소화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내 마음을 마주하는 것이 내게는 두려운 일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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