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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저김 Dec 11. 2023

#1. 다시 본 책과 영화, 처음과는 달랐던 책과 영화

사랑의 생애(이승우) & 아사코(하마구치 류스케)

처음 '사랑의 생애'를 읽을 때 홍상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감상평을 남겼다.

저자의 방식으로 면죄부를 주자면, 숙주에 불과하기 때문이겠지만..

사랑의 숙주가 된 사람은 사랑의 숙주가 되기 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그 찌질함(?)을 마주하는 것이 사실 썩 그렇게 유쾌하진 않다.

그래서 남자주인공들의 찌질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홍상수 영화를 떠올렸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찌질한 주인공들을 바라보는 것이 불편했던 이유 역시,

객관화했을 때는 찌질한 모습이지만, 사랑의 숙주가 됐을 때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찌질한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나한테도 저런 모습이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사랑할 자격이 없다던 형배의 감정은 비겁해 보였고, (사랑의 숙주가 돼버린) 형배의 감정은 오만했고,

그야말로 사랑의 숙주가 돼버려 자기 자신을 모두 잃어버린 것 같은 영석의 감정은... 감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인생을 경험을 한 사람의 감정이라 감히 뭐라 말하긴 어려워 보였고,

준호는.... 사랑의 숙주보다는 성(sex)의 숙주가 더 정확한 표현 같긴 하지만, 너무 목적지향적인 그의 감정이 나에게 없다고 할 수도 없고.. 준호처럼 자기 합리화가 완벽하진 않더라도, 이런 스타일의 친구가 없던 것도 아닌 터라 그랬는지 (오히려) 가장 매력 없던 캐릭터였던 것 같다.


작가가 남자라서, 남자들의 감정에 대해 조금 더 세밀하게 다뤘던 것에 비해 선영의 감정은 다소 불친절하게 다룬 것 같다는 느낌도 있었고 (나 역시 남자라서 그랬겠지만) 더 이해하기 어렵긴 했다..


그런 반면, 두 번째 본 아사코에서는

(후반부 아사코의 뒤통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아사코의 감정을 따라가며 끝까지 영화를 봤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료헤이'의 감정에만 몰입했고,

마지막 '료헤이'의 결정에 매우 공감하고, 나 역시 같은 말(앞으로 널 믿지 못할 거야)을 무조건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료헤이와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다만, 처음 영화를 봤을 때보다는 아사코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아사코 역시, 바쿠에게 다녀오는 과정이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료헤이가 말했던 것처럼, 언젠간 닥칠 일이 닥쳤다는 느낌 역시 받았을 것 같았기에,

오히려 후련해진 감정도 생기지 않았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돌아온 아사코를 계속 외면한 채 사랑이 끝나버리면

그 찜찜함 역시, 나 혼자 안고 가야 할 것이기 때문에...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나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사랑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아사코를 붙잡고 싶은 생각도 있었을 것 같다.


'복수'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은 아니겠지만,

이미 한 번 배신을 당한 만큼, 료헤이처럼 아사코를 믿을 수 없게 돼버린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지만

내 사랑이 끝나지 않았다면, 다시 돌아온 아사코를 외면할 자신은 없다.


누구나 사랑을 하지만, 모두의 사랑이 비슷한 것처럼 보여도 모두가 다르듯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랑에 대해 어떻다 평가하는 것만큼 오만한 것 역시 없다고 생각하기에




p.27

저 웃음은,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주 낯선 것이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p.30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에게 끌린다. 아는 사람은 편하지만 때때로 매혹의 대상이 된다. (…) 매혹당하기 위해서는 전에 알던 사람을 모르는 사람으로 바꾸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p.60

그는 사람들의 관계, 특히 애정 문제가 결부된 남녀 관계에 대해 일종의 원칙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는데, (…) 당사자들이 아니고는 그들 사이의 사연의 골과 감정의 주름들을 속속들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제삼자에게 알려진 것들은, 설령 거의 다 알려졌다고 해도, 실은 아주 조금밖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다 알리려고 해도 알려지지 않는 것, 알려질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알려지지 않는 것, 알려질 수 없는 것이야말로 진짜로 알아야 할 것이다. 제삼자에게 알려진 거의 모든 것들은 알리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들이다.


p.96

'사랑한다'는 말은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닐 뿐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말도 아니다. 그 반대이다. 대개의 사람들에게 그렇듯 형배에게도 그 말은 하지 않을 수 있다면 하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p.147

당신이 나의 방식을 정한다. 연인은 사랑하는 자이고, 동시에 연인의 사랑의 방식을 결정하는 자이다.


p.228

질투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그가 느끼는 약점의 크기를 나타내 보인다. 사랑해서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약점이 있어서 질투하는 것이다. 맹렬하게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열등감을 느껴서 맹렬하게 질투하는 것이다.


p.247

당신이 태어나기 전에 형성된 세계인 그 사람의 과거를 질투하는 것은 부당하고 비합리적이고 무엇보다 불가능하다. 당신이 태어나기 전의 세계인 연인의 과거는 당신의 출입이 가능하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투에 사로잡힌 사람은 이 사실을 너무 쉽게 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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