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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저김 Dec 11. 2023

#3. 어떤 어른과 어떤 어린이

어린이라는 세계(원더) & 원더(스티븐 크보스키)

이번에 선정한 책과 영화를 보면,

어떤 어른이 이 세상에 있어야 하는지를 많이 느끼게 해 준다.


각각 한 줄평을 남기자면, 이런 문장들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다려 줄 수 있는 어른"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사랑받을 수 있고, 그렇게 사랑은 또 이어진다"


원더의 어기가 성장하는 모습은

우영우와 많이 겹쳐 보였다.


(4회까지만 좋아한 드라마이긴 했지만)

우영우가 사랑스럽게 보였던 이유는

최수연, 동그라미, 정명석 같은 인물이 우영우 곁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어기 역시, 그런 부모님과 비아 같은 누나(미란다도 포함)

잭, 썸머와 같은 친구가 있었기에 내내 몽글몽글한 느낌으로 영화를 바라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표현 그대로 마치 태양처럼 모든 이야기는 어기를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어기 주변인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놓치지 않은 것이 이 영화를 가장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린이라는 세계는 마음속에 담아두고 싶은 문장이 참 많았다.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 가볍지만은 않게 읽히는 내용들을 하나하나 되새겨가면서

어느새 미소도 머금고 읽을 수 있었던 책


이젠 너무나도 까마득한 시절로만 느껴지는 어린이였던 내 모습을 조금씩 되찾아가는 과정도 즐거웠고

이젠 어린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성장해 버린 조카들 때문에 어린이라는 존재가 나랑은 더 멀어졌다고 느꼈는데

언제 어떻게 만날지 모르는 어린이들을 이전보다는 조금 더 나은 자세와 태도로 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도 심어준 것 같다.


특히, 잊은 줄만 알았는데 다시금 떠오른 몇 가지 기억들이 뭔가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 좋았다.


계단 내려가기를 무서워했던 때도,

신발 좌우를 늘 헷갈려했던 것도,

오토바이를 받치고 있던 봉(?) 같은 것을 빼서 오토바이에 깔려서 온 동네 어른들을 놀라게 했던 것도,


내게도 있었던 어린이라는 시절이

잊고 있었지만 다시 되살아난 어린이 시절의 나를 마주한 것 역시 좋았다.


그중에서도, 조금이라도 날 조금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주신데 가장 큰 역할을 해주신 것 같은

5학년때 담임선생님에 대한 기억도 그렇다.


워낙 내성적이었기 때문에, 발표 같은 것은 생각도 안 해본 나를 (정확히 기억나지도 않지만)

우연한 계기로 발표할 기회를 만들어주시고, (아마도 그렇게 잘했을 리도 없었을 텐데)

분에 넘치게 칭찬해 주신 기억이

6학년때는 반장도 하게 만들고

대학에 가서는 조별과제마다 발표를 맡고,

결국에는 광고대행사에 들어가서 PT까지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셨으니...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지지받고 있다는 기억을 남겨주신 것이 가장 감사했다.

'음악, 미술'에 특히나 재능이 없었는데, 잘 보이고 싶었던 선생님이었기에 외워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음악, 미술' 실기시험이 특히 싫었던 것 같다.

일기장에 '음악, 미술'은 그냥 즐기는 것이지, 왜 평가를 해야 하냐는 둥의 투덜대는 내용의 일기를 쓴 기억이 있는데

투정에 불과한 내용이었을 텐데도, 내 마음을 이해해 주시고 보듬어 주신 몇 줄의 피드백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 것을 보면

어떤 어른을 만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뼈저리게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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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을까요?"

"응? 뭐가?"

"초콜릿요. 이거 손에 들고 집에 가면 녹을까요? 엄마 아빠랑 먹으려고요."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조그만 지퍼백에 초콜릿을 담아 주자 연두는 안심한 얼굴이 되었다. 늘 그렇듯이 이날도 연두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고, 모퉁이를 돌면서도 손을 흔들었다.

연두를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나도 어렸을 때 저 만큼 부모를 사랑했을까? 처음 먹어 보는 작고 예쁜 초콜릿을 엄마 아빠에게 가져다주고 싶어서 방법을 고민했을까? 손에 쥐고 가면 녹을까 걱정했을까?

그랬을 것이다.

연두처럼 나도, 엄마의 감기약이 식을까봐 약국에서 집까지 약 봉투를 품에 안고 달려간 적이 있다.

다만 어린 나는 부모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사랑도 감사의 표현인 양 생각했던 것 같다.

고마워서 사랑한게 아닌데. 엄마 아빠가 좋아서 사랑했는데.

은혜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응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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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이를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린이는 이성으로 가르친다! 이것이 나 자신의 사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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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이들이 좋은 대접을 받아 봐야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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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부풀리기'에는 무시할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매력이 있다.

어린이는 허세를 부리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어린이의 허세는 진지하고 낙관적이다.

그래서 멋있다.


(어린이의 허세는 '당신을 좋아해요,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어요'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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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에게 '착하다'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중략)

어른들의 말과 뜻을 거스르지 않는 어린이에게 착하다고 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착한 어린이'라는 말에는 '남의 평가'가 들어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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