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이면서 바이올린 연주자인 남자는 평소처럼 자신의 작은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친한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그녀는 시인이었다. 남자는 시인과 결혼하고 싶어했지만 자신의 곤궁한 처지를 알기에 섣불리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시인 또한 바리스타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어쩐지 여자가 먼저 청혼을 하는 것은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시인은 오후 세시가 되면 바리스타의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시를 썼다. 바리스타는 그때마다 그윽한 눈길로 시인을 바라봤지만 시인은 자신의 시가 어딘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시인은 어렸을 때 쓴 시 몇 편으로 일약 스타덤에 잠깐이나마 올랐었고 바리스타는 정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되기를 꿈꿨다. 그때까지는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는 신세였다. 시인은 바리스타가 겪어온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했지만 그가 어쩐지 자신에게 어울리는 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마시며 시인은 둘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상상을 했고, 그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자 말했다.
엄마 귀가 안들려.
시인은 자신의 아이에게 청각 장애가 생겼음을 바리스타에게 말했다. 바리스타는 여전히 이도저도 아닌 태도로 일관하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글은 읽잖아. 시인이 될 수 있을 거야.
시인은 바리스타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중얼거렸다. 둘은 먹고 사는 일에 서툴었고 거의 평소에 돈을 버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아이가 천재라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깨닫고 그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아이는 장학금을 받았고 학부를 마치고 석사를 밟았다. 연구실에 들어간 아이는 자신에게 과학보다 더 나은 재능이 있음을 알았다. 바로 소설을 쓰는 것이다.
아이는 소설을 써서 유명해졌고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평생 번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 바리스타는 자신의 아이가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가 되는 건 좋지만 따로 직업을 가져야 해. 예술로 돈을 벌 생각을 하지마.
바리스타의 말이 우습게도 아이는 예술로 전업을 할 수 있었고 그 이후에도 많은 돈을 벌었다. 그녀가 판 소설은 그녀의 어머니가 낸 시집보다 훨씬 더 많이 팔렸다.
아무래도 우리 딸이 천재인 것 같아.
누굴 닮은 거지? 왜 우린 예술가로 성공하지 못한 거야?
바리스타는 여전히 작은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며 쉬는 시간에 바이올린을 켰다. 그의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았고 오케스트라에서 그에게 단원을 제의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바리스타는 자신의 카페에 3시마다 오던 시인을 생각했고 지금은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등지를 돌아다니며 소설을 쓰는 자신의 딸을 생각했다. 세상에는 성공하는 소설가도 드물지만 있는 법이다. 모든 소설가가 돈을 벌지 못해서 자신의 독자들을 불법 복제 혐의로 고소 한 후 철인 3종 경기에 나가지는 않는다.
시인은 소설가가 자신보다 잘 나가는 것에 대해 기뻐했지만 곧 시가 제대로 써지지 않자 자신에게 실망했고 시인으로서 사는 것보다 성공한 소설가의 엄마로 사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한 소설가는 가족을 먹여살린다. 시인은 자신의 아버지가 제대로 된 가장이 아니었던 것처럼 자신 또한, 바리스타 또한 제대로 된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경제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시인으로서 그녀는 2류였고 바리스타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 3류였다.
2류, 3류 예술가들도 자신의 예술을 계속해서 해나갈 권리 정도는 있는 법이다. 바리스타는 이제 새벽까지 글을 쓰는 소설가를 위해 커피를 내린다. 이 커피는 아주 완벽하게 내린 커피여서 맛에 빈틈이 없다. 그의 바이올린 실력과는 딴판이었다. 시인과 소설가는 각자 바리스타의 커피를 마시다가 영감이 떠오르면 각자의 책상으로 가 시를 쓰거나 소설을 썼고, 여전히 시는 제대로 팔려나가지 않았지만 소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았다.
시인과 바리스타는 성공한 예술가의 삶이 어떤 것인지 자신의 딸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부족한 게 뭔지 깨달았다.
바로 예술가 부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