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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캣 Jul 05. 2024

[오늘뭐볼까] 미나리는 미국에서도 잘 자란다

영화 미나리는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화제성에 비해 영화 자체의 이야기는 묻힌 감이 없지 않다. 정이삭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이 윤여정 배우의 수상에 기여한 바가 크지만 미나리란 영화는 잔잔한 색채 때문인지 국내에서는 100만 관객 돌파 이후에도 화제성은 덜한 편이다.

미국에서는 미나리를 두고 이민사를 다룬 더없이 미국적인 영화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한국어를 쓰는 배우들이 나오는 재미교포 영화지만 미국인들 입장에서는 소수인종의 정착기를 다룬 미국 영화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감독의 아버지 ‘제이콥’ (스티븐 연)은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기 위해 아칸소로 이사온다. 아칸소는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주로 그들이 이전에 살았던 캘리포니아에 비하면 시골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난다. 제이콥은 아내 '모니카' (한예리)와 함께 병아리 감별사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왔다. 


제이콥이 본래 살던 곳을 버리고 아칸소로 이주해온 것은 큰 농장을 가져보겠다는 포부가 있어서다. 그가 고른 땅은 이전 주인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도는 불길한 땅이었다. 막내 아들 데이빗에게는 선천적인 심장병이 있어 아이를 돌봐주기 위해 한국에서 할머니 ‘순자’ (윤여정)가 바다를 건너온다. 


미나리는 정이삭 감독의 어린 시절을 다룬 자전적인 이야기지만 극에 변화를 가져다주는 인물인 ‘순자’는 굳이 자신의 할머니를 재현하려고 노력한 캐릭터가 아니다. 정이삭 감독의 창작력과 윤여정 배우의 연기력이 합쳐져서 탄생한 인물이다. 때문에 순자는 자신의 딸을 위해 한국에서 멸치와 한약, 고춧가루, 미나리씨를 바리바리 싸갖고 올 정도로 헌신적이면서 아직 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손자 데이빗을 놀릴 정도로 허물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데이빗은 “할머니는 할머니 같지 않아요” 같은 대사를 통해서 순자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순자는 다른 백인 할머니처럼 쿠키도 구울 줄 모르고 영어도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한다. 순자는 화투를 두면서 욕설을 내뱉는 등 한국 할머니의 모습을 갖고 있지만 전형적인 인물은 아니다. 순자는 전세계인이 자신의 할머니에 대해 가지고 있는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원형적 할머니의 모습을 갖춘 동시에 윤여정 배우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캐릭터성을 갖고 있다. 


극 내내 제이콥과 모니카는 아칸소에서 계속 농사를 지으며 살 것인가 아니면 데이빗을 위해서 큰 도시로 돌아갈 것인가를 두고 싸운다. 이들의 다툼은 극 종반에 가서야 해소가 된다. 자신의 가정사를 거리낌 없이 보여주는 정이삭 감독의 모습은 진실되다. 이 부모님의 다툼이라는 요소가 아직은 어린 데이빗 남매에게 끼치는 영향을 보면 극을 무겁게 가져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더구나 스티븐 연의 한국어 연기는 아주 흠잡을 데 없을 정도로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는 이창동 감독의 ‘버닝’에 출연하며 한국어 연기에 대한 기본을 갖췄지만 화내며 싸울 때의 억양까지 한국적인 것은 아니다. 완전히 한국적인 억양을 쓰고 있는 한예리와 미국식 억양이 들어간 한국어로 싸우는 스티븐 연의 모습은 한국인 입장에서는 어색하게 보인다.


이 묵직한 분위기를 단숨에 깨주는 캐릭터가 바로 순자다. 순자는 데이빗과 함께 뱀이 돌아다니는 강가까지 가는 모험을 하는 한편, 강 주변에 미나리 씨를 심어서 후일을 도모한다. 미나리는 약으로도 쓰고, 국에도 넣을 수 있는 만능 나물로 그려진다. 순자가 죽음을 겁내는 데이빗을 달래기 위해 부르는 노래도 (정체를 알 수 없기는 하지만) 가사가 미나리로 이루어져 있다. 


미나리는 외딴 미국 땅에서도 풍성하게 자랄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 이는 한국에서 건너온 데이빗 가족이 미나리처럼 굳세게 정착할 것임을 암시한다. 또 미나리는 여러 용도로 쓰이며 자신의 쓸모를 자랑한다. 데이빗 가족 또한 병아리 감별사에서 농부로의 직업 전환을 해내는 데 결국에는 성공할 것임을 다짐하는 듯한 부분이다.


이 영화를 미국적으로 만들어내는 요소는 기독교와 물을 찾는 다우징으로 상징되는 민간 신앙이다. 아버지 제이콥에게 농기계를 넘기는 폴은 기독교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주말이 되면 교회에 나가는 대신 거대한 십자가를 메고 행군한다. 기독교도로 그려지고 있는 모니카는 폴의 괴상한 신앙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폴은 미국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미치광이 캐릭터인 동시에 제이콥과 아칸소 마을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제이콥은 나뭇가지를 이용해 물을 찾아야 한다는 주민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의 감대로 땅을 파서 수원을 발견한다. 이 물은 금방 말라버리고 곤경에 처한 제이콥은 비싼 수돗물을 작물 기르는 데 사용하기에 이른다.


제이콥은 데이빗에게 “한국인은 머리를 써야돼”라며 자신의 방식을 고수한다. 아칸소 시골에서만 통하는 그들만의 규칙을 따르기를 거부한다. 농장에 심을 식물을 고를 때도 그의 이런 태도는 여전하다. 미국 땅에서 과연 잘 자랄지 또 얼마나 수요가 있을지도 알 수 없는 한국 작물을 기르기로 결정한다. 


이런 제이콥의 모습은 이민자들이 흔하게 빠지는 자문화 중심주의적 태도다. 이민을 와서도 주류 문화에 속하지 못하고 모국의 문화와 습속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제이콥의 다소 거친 태도에도 아칸소 시골 마을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인종 차별이란 요소는 이 영화에서 제거되어 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일 수도 있고 정이삭 감독의 창작 차원의 문제일 수도 있다.


실제 80년대 아칸소 주에서 동양인을 대하는 태도에 인종차별적 요소가 있었는가와는 상관 없이 영화 미나리는 착한 영화로서의 길을 간다. 동양인이라고 해서 눈을 쭉 찢어 보이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과 같은 행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에서 손흥민이 당했고 지금도 당하고 있을 인종차별이 영화 속에서만은 없었던 것으로 치자는 식으로 넘어간다.


이 점이 미국 관객들에게 미나리가 어필한 요소라고 본다. 반대로 한국인 입장에서는 교포 영화가 가지는 한계점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한국식 이름을 갖고 있지만 정이삭 감독 또한 국적은 미국이며 한국어는 잘 하지 못한다. 미국 교포라는 존재는 한국인에게 있어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선진적인 국가에서 민족의 위상을 휘날리는 자랑스러운 존재로서의 한민족이다. 다른 하나는 먼 타국까지 가서 나라망신을 시키는 어쩔 수 없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윤여정 배우에게 아카데미상을 안겨주었으므로 당연히 미나리의 감독인 정이삭은 자랑스러운 교포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해 한국인이 이중적인 태도를 가진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아카데미가 윤여정 배우에게 상을 준 것은 외국어 영화로서 미나리를 대한 것이 아니라 자국 영화로서 미나리를 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 입장에서 미나리의 선전이 자랑스러울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 점이 미나리의 잔잔한 흥행 성적 속에서의 조용함이 의미하는 바라고 본다. 미나리는 내용과 형식 모두 미국 영화다. 그 중에서도 마이너리티에 속하는 동양인을 그리고 있다. 미국으로 건너간 동양인이 겪게 되는 온갖 역경과 괴로움은 미국 사람들에게 오랜 역사를 가진 자신들의 이민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 점에서 미나리에 대한 과도한 우상화는 자제해야 한다고 본다. 미나리는 우리 풀이지만 미국에서도 잘 자란다. by 벨레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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