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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비누 공유 연맹 2

by 인디캣

소설을 너무 오래 안 쓰다보니 소설 쓰는 법을 잊어버렸다. 최근에 장강명 작가의 페북을 염탐하다가 초단편 이야기를 읽었다. 초단편을 쓰는 작가들도 정확한 작법 연구 없이 쓰고 있다는 조금 황망한 이야기였다.


이십년 전에 나는 젊었고 초단편으로 일가를 이루리라 다짐했다. 초단편으로 유명한 작가로는 프레드릭 브라운, 호시 신이치 등이 있다. 초단편은 쓰기가 정말 까다로운 장르다. 섣불리 쓰면 장난치는 것 같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가독성이 떨어져서 안 읽힌다.


콩트라는 장르와 초단편은 흔히 혼동된다고 장강명 작가는 썼다. 콩트는 기지를 담고 반전이 있어야 하는데 초단편은 굳이 반전을 추구하지 않고 미니멀리즘 실험을 한다는 상당히 고상한 이야기였다.


나는 장강명은 어쩔 수 없는 조중동 출신 먹물이다. 고담준론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장강명 작가의 팬이 아니라 억하심정을 가진 안티였던 것인가. 아무튼 나는 조중동 출신은 다 싫다. 이동진도 안좋아한다. 데스크가 시키는대로 다 하는 나쁜 놈들이다.


그에 비해 최근 초단편의 최강자로 떠오른 김동식 작가는 주물공장에서 십년넘게 일한 워킹 클래스다. 그의 글에는 고상한 먹물들은 흉내내지 못하는 킥이 있다. 바디감이 남다르다. 김동식 작가야말로 진짜 천재이고 인터넷으로 실시간 전투를 벌인 전사다. 나는 김동식 작가를 정말로 존경한다.


나는 노동자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글밥만 먹어온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초단편은 정말 제대로 쓰기가 어렵다. 독자들은 초단편이라고 하면 변변치 않은 화장실 낙서 같은 것을 떠올린다. 시작부터 지고 들어가는 게임이다. 그러고 보니 화장실 낙서 하니까 떠올랐는데 예의 A에 관한 이야기다.


A는 재판을 받기 전에 잠시 유치장에 들어가 있었다. 벽에 와이 쏘 시리어스 라는 낙서가 그려져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정말 의미 심장한 얘기 아닌가. 재판을 받을 정도면 이미 볼장 다본 상태인데 왜 심각해 하냐는 얘기라고 A는 내게 말했다. A는 재판을 들어가기 직전에 앉는 벤치에 누군가 누워서 자길래 왜 이렇게 태평한가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실 진지할 이유가 없는게 실제 재판에서 피고인이 끼어들 여지는 없고 십오초 정도 판결을 청취할 기회만 주어지는데 판결은 항상 한달 후 혹은 두달 후에 재판을 속개하겠다는 하나마나한 이야기였다.


대부분의 죄수들이 변호사도 없이 재판에 들어가고 판사는 얄짤없이 법봉을 휘두른다. 이놈은 2년. 이놈은 3년. 죄수들은 판결을 받기 전인 미결수 신분이 더 편하다며 일부러 재판정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식으로 재판을 지연시키기도 했다. 한마디로 재판이란 건 코미디고 이미 짜여진 각본대로 진행되는 것이기에 비전문가인 죄수로서는 잠이나 자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A는 절실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감옥에서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엉터리 변호사라는 걸 알고도 프리 로이어 즉 국선 변호인을 선임했다. 국선변호인은 자신들이 법을 공부하는 학생들인데 이번 재판을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A는 기가 찼지만다른 수가 없어서 좋다 대신에 모든 재판은 자신의 모국어 통역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금세 국선변호인의 표정이 달라졌다. 가능은 하지만 몇시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A는 기다리겠다고 했다.


몇시간후 통역을 대동하고 다른 변호사가 A를 찾았다. 그는 학생이 끼어들었던건 착오라며 자신이 변호를 맡겠다고 했다. 변호사는 A의 범죄행위, 월수입, 직장 등을 물어보며 변론을 하는 척 했다. A는 지금 자신은 가족들과 연락도 안되고 직장에 무단결근하고 있어서 국제 미아가 됐으며 실직자가 될 처지에 있다고 솔직히 말했다. 변호사는 그것이 리얼리티라며 받아들이라는 뜬금없는 답변을 내놨다.


A는 화가 치밀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변호사는 보석 신청을 하겠냐고 물었다. 신청하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냐고 묻자 통역을 맡은 여자가 자신이 십년동안 사법통역을 해왔는데 해당 국가 여행객이 보석 허가를 받은 경우는 없다고 말해주었다. A는 보석이든 뭐든 해서라도 하루 빨리 감옥에서 나가고 싶었지만 사법통역의 말을 무조건 무시할 수는 없어서 가능성이 없는 일을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정답은 역시 보석신청을 하는 거였다. 일단 시도라도 해보는 것이 아무것도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호사는 현재 이 나라에 유효한 어드레스가 있느냐 보호해줄 친구나 가족이 있느냐며 없다면 보석 신청을 하나마나라고 말했다. A는 참으로 도움이 되는 국선변호인이라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A 역시 변호사 없는 다른 죄수들 처럼 두달 후에 재판을 속개하겠다는 이야기를 받아들었다. 너무 길다 두달의 감옥 생횔은. A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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