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가끔씩 나를 찾아와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털어놓곤 했다. 그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수용소는 정신병원이었다. 독방과 2인실, 큰 거실이 있는 그 병원은 말이 병원이지 전혀 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재소자들은 평소에는 큰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밤이 되면 2인실로 돌아갔다.
그 거실에서 가장 오래 있었던 건 매튜라는 영국인이었다. 그는 자기 말로는 사우스 아프리카에서 왔다고 하는데 도통 제정신이 아니어서 맞는 이야기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매튜는 4년 가까이 그 병원에 수용되어 있었는데 그만큼 재판도 길어져서 언제 나갈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들은 얘기로는 그가 실은 살인자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살인자라고 해도 굉장히 똑똑한 살인자라서 심심하면 혼잣말로 애플이 어쩌고 AI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영어로, 그것도 아주 유창한 옥스퍼드식 영어로 중얼거렸다. 그러다 히죽, 바보 같은 웃음을 소리내거나 담배를 너무 피워서 속이 역겨운지 구토에 가까운 기침을 하다가 다시 담배를 마는 일로 돌아가곤 했다.
매튜는 확실히 그 방에서 가장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레이시스트이기도 했다. 동양인이 새로 거실에 들어오면 말을 걸지 않는데 서양인이 거실에 들어오면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걸곤 했다. 하루는 콜롬비아에서 온 영국 혼혈인이 들어왔는데 그의 이름은 필리페 어쩌구였다. 필리페는 매튜와 죽이 잘 맞았는지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눴다. A가 나중에 되도 않는 영어로 물어보자 매튜는 엔지니어이고 아주 똑똑하다고 했다.
A는 종교가 없었지만 교도소에 들어오기만 하면 독실한 크리스찬이 됐다. 어떤 교도소든지 있는 성경을 찾아서 읽기도 하고 암송하기도 했다. 매튜는 거의 모든 일에 관심이 없고 TV를 보지도 않는데 유독 성경이나 종교와 관련된 일에는 관심을 가져서 성경을 가져다 덩달아 읽었다. A는 매튜가 종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고 어느날 그 속에서 너의 세이비어를 찾았느냐라고 말을 걸었다. 순간 매튜는 왓?이라고 말하며 엄청 화를 냈다. A는 매튜의 기세에 눌려 소리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매튜는 소리라는 말을 듣자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어설픈 미친 연기로 그 상황을 넘어가려고 했다.
매튜에게는 감방 소지 친구가 있었는데 그 감방 소지는 매튜의 어깨를 주무르면서 이상한 영어로 더 죽이고 싶은 사람이 없는지 묻곤 했다. 그때마다 매튜는 더이상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며 웃었다. A는 그런식으로 매튜를 자극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감방 소지도 살인자일까봐서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았다.
매튜는 담배를 아주 좋아했다. 그 병원에서는 흡연자에 한해서 일주일에 한갑의 담배를 공짜로 주는데 매튜는 담배를 3분의 1씩 잘라 자신의 컵에 저장해 놓았다. 그리고 은박지를 잘 접어서 필터를 만들고 꽁지 담배를 끼워 화장실에서 피곤 했다. 사실 그 병원에서는 담배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매튜의 행동은 합리적이었지만 고질적인 구토에 가까운 기침을 불러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매튜는 가끔 재판을 받으러 코트에 갔다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어느날은 매튜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다. 매 끼니마다 외국인들은 밀크티를 컵에 받아 마시는데 매튜의 컵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미친 짓을 잘 하다가 컵이 없어지자 갑자기 정신이 돌아왔는지 주인 없는 컵을 가리키며 잇츠 낫 마이컵이라며 똑똑히 말했다. 사람들은 매튜의 컵을 찾아봤지만 어떤 또 미친 녀석이 훔쳐갔는지 알 수 없었다. 병원에서 중요한 물건은 거의 없었지만 컵만은 다들 소중하게 다루곤 했다.
플라스틱으로 된 머그 컵은 뚜껑이 달려 있다. 물을 담아 마시기도 하고 점심에 나오는 이상한 꿀꿀이 죽 같은 것을 담아 마시기도 했다. 이 컵이 없으면 물을 마실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컵을 잃어버리는 걸 두려워했다. 컵에는 수인번호를 적어놨는데 수인번호를 보면 그 사람이 언제 감옥에 들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23이라는 수인번호를 가지고 있었고 때때로 21이나 20이라는 수인번호를 가진 사람도 있었다. 매튜는 10번대 수인번호를 가지고 있었다. 매튜는 정말 병원-교도소 생활을 아주 오래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