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홍콩에 다시 가고 싶다고 말했다. 홍콩의 새벽이 그리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서늘한 기운에 커피를 사러 거리로 나서는 그 느낌이 계속해서 생각났다. 블루보틀에 가서 화장실 냄새를 맡으며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는 것 만큼 속이 풀리는 일이 없었다. A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셨지만 홍콩에서의 그 맛이 나지는 않았다고 내게 말했다.
하지만 홍콩의 감옥에서 견디는 새벽은 정말 사람 정신 나가게 했다. 저녁이 되면 시끄러운 광둥어로 라디오 방송을 하는 소리가 2인 감옥 여기저기에 울려퍼졌다. 잠을 자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버티고 나면 새벽에는 홍콩 대한파로 인해 추위가 엄습했다. 6시가 되면 밖으로 나간다. 밖으로 나가 걷고 씻고 의자에 앉아 있는다. 그리고 우리들은 음식을 먹기 위해 거실로 돌아온다.
A는 거실에서의 삶이 답답하고 춥고 매캐한 연기로 가득했다고 회상했다. 연기로 가득한 중앙 거실은 무슬림들의 푸근한 담배 인심으로 인해 여기저기서 기침이 터져나왔다.
우리는 모두 죄수였어. 그 중에서도 섹슈얼 오펜서였지. 다들 무슨 성범죄를 저질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죄다 성범죄자였던 거야. 그 중에서도 나는 가장 억울한 죄수였지. 홀랜드 출신 백인 청년도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물으니 자신은 억울하다며 범죄와 범죄가 아닌 성행위의 어중간한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며 자신의 범죄가 디스커션의 여지가 있다고 했어. 물론 나는 그 이야기를 믿지 않았어.
나의 범죄는 디스커션의 여지도 없고 경찰도 봤고 의사도 봤고 환자도 봤고 간호사도 봤고 CCTV에 다 찍혀있었으니까. 세상 천지에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성추행을 하는 정상인이 있을까. 그런 정상인인데 왜 응급실에는 실려왔을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 그게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생각해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커피. 그걸 마시고 싶었다. 감옥에 있는 한달 반 동안 커피 대신 빌어먹을 감옥 티만 많이 마셨다. 홍콩인들도 감옥에서 티를 마시는 걸 원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티는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아주 쓰고 강배전으로 내린 커피, 그걸 마시고 싶었다. 스타벅스만이 아니라 블루보틀도 아니라 아무튼 뭔가 쓰고 진한 커피를 마셔야 이 억울한 감옥생활이 참고 견딜만 해질 것 같았다. A는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에 가서 이름모를 죽 프랜차이즈에서 커피를 시켜 마셨다.
새벽의 맛이 났다.
홍콩의 새벽은 영화에서 보던 것과 비슷하기도 했고 다르기도 했다. 사람들은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며 높은 언덕을 올라갔다. 언덕 위에는 트램이 다니는 노선이 있었고 사람들은 빅토리아 피크까지 트램을 타고 올라갔다. 그 위에는 허공과 하늘과 공기와 외국인 관광객들이 있었다. A는 클락켄플랍을 보기 위해 3번, 한번은 아고다에서 잘못 예약한 숙소를 풀어주지 않아서 한번 관광을 온 적이 있었다. 4번의 홍콩 방문 동안 A는 아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응급실에 끌려갈만한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A는 자신이 그만큼 미쳐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상황에서 병이 커지고 도발하는 것처럼 태어나서 정신이상이 올 정도라는 걸 잘 알지 못했다. 미친다는 것. 그것은 자신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통제를 벗어난 자아는 꿈과도 같고 꿈을 꾸고 나서는 파편화된 기억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A는 한국에 돌아와 정신과 약을 바꾸면서 망상증을 억제하는 약을 먹게 됐고 그제서야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것, 자신은 그냥 패배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소설을 쓰는 것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처음에 A는 자신이 신이라는 생각이 망상이 아니라 일종의 문학적 프레이즈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나는 천재라거나, 위대한 작가가 될 지망생이라거나 다 같은 맥락이었다. A는 글을 잘 쓰지 못했고 위대한 작가는 커녕 형편없는 작가도 되지 못할 운명이었다.
A에게 남은 것은 새벽의 향기를 담은 커피 한잔 뿐이었다. 그건 스타벅스여도 좋고 블루보틀이어도 좋았다.
어느쪽이든 상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