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러시아의 치밀한 드론 전쟁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서 살아남았다. 나는 A와 가끔 키이우에서 만나면서 그가 정말로 이곳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는 왜 우크라이나를 떠나지 않는 것일까. 키이우가 A에게 정말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A가 키이우의 한 게임회사에서 한국에 대한 자문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아직도 우크라이나에 게임회사가 존재하고 그 게임회사가 한국을 게임에 등장시킬 정도로 여유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누구나 자유로운 일을 하면서 살 권리가 있지만 전쟁 중에는 많은 것들이 무의미해지기 마련이다.
A는 내게 한국이란 나라야말로 모순의 총체라고 말했다. 바로 지근거리에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나라가 있는데 온갖 사치를 부리며 사는 나라가 한국 아니냐고, 이란과 이스라엘 전쟁을 실시간으로 시청하면서 축배를 드는 레바논 같은 나라가 한국 아니냐고, 같은 민족이 세운 지옥과 같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한국인들은 모두 위선자들이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물론 위선자도, 거짓 선지자도 아니다. 북한이 자기 나라의 국민을 총살시키는 건 모두 김정은 탓이지 남한의 탓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젤렌스키 같은 코미디언을 대통령으로 뽑아 러시아란 대국과 몇년 째 전쟁을 하며 수십만명에 달하는 자국민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고간 나라에 사는 사람이 할만한 말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크라이나에 비하면 모국은 전쟁의 여지도 없고, 물론 과거에 민주화 운동이 있기는 했지만, 정치적으로 안정된 국가에 경제적으로 발전된 도시다. A는 모국에 대해서도 자신이 정신이 나갔을 때 본 수많은 말레이시아, 태국, 미얀마 출신의 가정부들이 거리에 나와 주말을 보내는 걸 기억하고 있다며 홍콩은 위선자들의 도시이고, 한국인이 홍콩에 가서 감옥에 갇히는 건 일종의 대속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으므로 그가 말하는 대속의 의미를 알 수 없었고, 오에 겐자부로의 타오르는 푸른나무 3부작이 떠오를 뿐이었다. 타오르는 푸른나무 3부작에서 오에 겐자부로는 예수의 수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1권을 선물해준 여성은 기억이 날 것도 같고 기억이 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오에 겐자부로와 같은 인격자는 노벨상을 받을 만한 일들을 많이 했고 그의 작품들 또한 우리 시대의 양심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A는 오에 겐자부로와 같은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했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보였다. 트럼프는 아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을 중재하지 못했고, 만약 전쟁이 끝난다면 젤렌스키는 곧바로 사형 당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영도 식으로 말하자면 대통령은 피를 마시는 새다. 눈물을 마시는새 보다 오래 사는 게 피를 마시는 새로, 우리는 대통령을 뽑아 그가 우리 모두의 죄를 대속하도록, 우리의 피를 마시도록 한다. 어떤 대통령은 너무 오래 살고, 너무 오래 대통령으로 일해서 더이상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국민들이 판단하도록 만든다. 박정희가 그랬고 이승만이 그랬고 전두환이 그랬다. 그런 자들은 모두 일종의 독을 마시는 새다.
이영도는 한때 좋은 소설을 썼지만 지금은 그저 한물간 작가에 불과하고 한때는 레전드라 불렸지만 지금은 현역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필력이 떨어졌다. 대중작가란 대개 그런 것이다. 하룻동안 장편 소설 1권을 타자 칠만한 기력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영도의 신작이 곧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에 전율했다. 하지만 이영도는 노벨상을 타지 못하겠지.
미국의 유명 SF 작가인 어슐러 르귄도 결국 노벨상을 타지 못했고 대신 도리스 레싱이 탔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아직도 노벨상을 타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노벨상을 타지 못했던 데 반해 사무엘 베케트는 노벨상을 탔다. 심지어 페터 한트케 역시 노벨상을 탔다.
노벨상을 오래 산 사람 중 운이 좋은 사람에게 주는 것이지 실제 그의 문학적 성취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지만 결국 노벨상을 타지 못한 사람은 진정한 문학가가 아니었다는 느낌을 준다.
이영도가 낸다는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은 이상한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어쩐지 뻔해 보이는 스토리일 것 같고, 그는 SF작가로서는 실패자이지만 판타지 작가로서는 글로벌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