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비누 공유 연맹 44

by 인디캣

나는 작가가 아니다.


나는 작가가 아니다.


나는 소설가가 아니다.


나는 소설가가 아니다.


나는 A의 회복을 돕기 위해 두가지 문장을 거듭 외워보라고 주문했다. 실제로 A는 작가도 소설가도 아니었기에 그에게는 아무런 부정적인 영향도 없을 말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A는 내심 자신이 작가이며 자신의 작품 또한 아주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정말로 A의 작품이 재미있다면 그는 벌써 '진짜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A가 자신을 작가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그의 망상 증세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 내 결론이었다.

작가가 아닌데 소설을 왜 쓰지? A는 내 말에 단지 소설 쓰기는 취미에 불과하며 남는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A는 너무 많이 소설을 쓰면 그만큼 소모된다면서 마치 자기에게 소설을 쓰는 재능이라도 있는 것처럼 굴었다. 소설가가 아니라면 소설을 쓸 이유가 없다. 라고 내가 말하자 A는 모든 사람에게 소설을 쓸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답했다.


우리는 소설가가 아니지만 소설을 쓸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것은 하늘이 인간에게 내려준 자신의 성향을 예술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다. 라고 A가 말했다.


나는 A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지만 아무튼 A가 소설가가 아닌 것은 분명하고 그에게 소설가도 아닌데 소설을 쓴다고 해서 대단한 예술적 성취가 있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될 정도로 A가 현실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A는 얼마전에 병원을 다녀왔는데, 의례적인 약 처방을 위해서, 의사가 약을 충분히 쓰고 있다고 했다며 자신은 안전하고 앞으로도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나는 A가 다니고 있는 우크라이나 병원의 의사가 과연 말이 통하지 않는 환자에게도 적절한 처방을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A는 모국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 의사와 그다지 좋지 않은 에피소드가 여렀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의사는 의사라고 할 수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A는 그에 대해 겉으로는 동의하는 척 했지만 어쨌든 의사가 주는 약은 어느 나라든 뻔하다는 상당히 안이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A는 유튜브를 통해서 탐정이 평소에 하는 일이 얼마나 지저분한지 알게 됐다고 내게 말했다. 탐정들은 대개 가까운 친척 간의 불륜 사건이라거나 특히나 비도덕적인 외도 사건에 대해서 조사하기를 즐겼다. 그들이 정말로 그런 일들을 주업을 삼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돈을 지불하는 것은 그런 지저분한 일들이었고 탐정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은 흔히 그런 일들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유튜브는 쓰레기야. 온갖 바보들이 나와서 떠들어대지.


A는 유튜브를 즐겨보면서도 자신이 보고 있는 영상의 제작자를 욕하기를 좋아했다. 사실 A도 그 영상 제작자들에 비해 하등 나을 것도 없으면서 욕을 해대는 것이다. A의 머릿속에는 창녀와 창녀가 될만한 가능성이 있는 여자아이들, 죽은 여자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최근에 A는 이전 직장에서 죽은 모씨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써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당시에 같이 일했던 사람에게 연락해봤다. A는 모씨가 죽은 것이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자살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같이 일했던 사람의 말로는 모씨에게는 원래부터 우울증이 있었고 그래서 당시에 술을 먹고 오토바이를 타고 집에 갔으며, 그러다가 결국 사고가 나 죽은 것이라고 했다. 같은 팀이었던 사람들도 모씨가 술을 마시고 오토바이 운전을 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며 크게 욕을 먹었다고 했다.


A로서는 완전히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모씨에게 우울증이 있었다고 해도 그가 매일 새벽까지 일을 한 것은 사실이고 술자리를 만든 것은 리드였던 팀장의 잘못이지 모씨가 알코올 중독이라서 병나발을 불었던 것이 아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가 오토바이 운전을 하긴 하지만 술을 먹은 날에는 다른 운송수단을 이용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을 뿐 그런 행위를 막아야 한다는 것까지는 생각 못했던 사정이 있었다.


아니 자기가 죽고 싶어서 음주운전을 한 것까지 막지 못한 게 잘못이라는 게 도대체 어느나라의 인민법정이 내리는 결론이란 말인가. A는 아무리 모씨가 죽은 것이 그런 사정이 있었다고 해도 모씨가 자정을 넘어서 일하는 것을 묵인한 회사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매일 술판을 벌인 리드의 문제도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에 있었던 사람 중 하나가 모씨의 죽음에 대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A는 놀란 나머지 그의 이야기를 소설로 옮길 생각을 하지 못했다.


A가 생각하기에 모씨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몸에 작지 않은 문신도 있었고 옷도 개방적으로 입고 다니는 남자였다. 그는 밴드를 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그도 아마 밴드를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모씨는 아주 착해보였다. 착한 사람일수록 우울증으로 죽을 가능성이 높아. A는 내게 말했다. 나는 착하다는 기준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어 그에게 더이상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A가 만약 신문기자라면 모씨의 이야기에 대해 그럴듯한 기사를 하나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기자 경력이 있던 당시 같이 일했던 사람은 모씨의 이야기에 대해 뉴스 가치가 없다고 했다. A로서는 자신의 판단력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같이 일했던 사람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뉴스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맞을 것이다. 아마도.


그의 죽음은 그냥 너무나 슬픈 에피소드에 불과한 건지도 모른다. 그 에피소드에서 뭔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슬픔도 그냥 슬픔으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A의 생각에 대해 나는 이렇다 저렇다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보기에 A는 줄줄이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착하고 있었고 그것은 뉴스 가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소설 소재로서도 그다지 가치가 없었다.


술 먹고 운전하다 죽는 사람은, 그 중에서도 오토바이를 타다 죽는 사람은 아주 많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을 전부 다 기사나 소설로 다룰 수도 없고 다룬다고 해도 재미나 의미가 없을 게 분명했다. 죽는 사람은 언제나 있다. 그 사람들이 모두 다 주목받을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도 조직에게도 슬픈 일이지만 그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난다.


그렇다면 내가 죽고 싶어하는 것 또한 기사나 소설의 소재로 쓰일 만한 가치가 없을 것이다. 나는 죽고 싶다. 그러나 전혀 죽고 싶지 않다. 세상에 죽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란 말이 얼마나 거짓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사람이 왜 죽고 싶어지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세상에는 사는 것보다 죽음을 택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도 잘 알고 있다.


사람이 죽고 싶어지는 것은 나이와 관련이 있다. 너무 어리거나 늙으면 죽고 싶어진다. 젊은 예술가들은 모두 나이들기를 원치 않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곧 추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예술가는 나이와는 상관없이 예술을 행할 수 있다. 하지만 위대한 예술가들은 항상 적은 숫자다. 그리고 언제나 죽음과는 관련이 없는 곳에 성실한 예술가군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창작을 행하는 기계나 마찬가지다. 내심 죽음을 원하더라도 술이나 클럽과는 관계없는 곳에서 너무나 성실하게 살아간다.


어떤 작가는 마라톤을 하고 어떤 작가는 수영을 한다. 요즘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노이즈를 하는 것 같다. 메종 마르지엘라가 조율이라는 노이즈 음악가를 섭외해 전시를 하는 걸 봤다. 조율은 너무 시끄럽다. 당연하다. 그의 음악이 노이즈 - 소음이니까. 하지만 시끄러워도 너무 시끄럽다. 닥소폰은 시끄러움의 한도를 넘어섰다.

어쩌면 그런 건지도 모른다. 모든 건 내 내적인 문제이고 외부에서 문제를 찾으려는 시도는 헛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군대에 있을 때 사회에 있을 때 외국에 있을 때 문제가 일어난 이유를 찾기 힘들지 않겠나. 나한테만 신기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나는 원인을 나 자신으로 돌릴 때 삶의 해법을 찾을 수 있었고


자기 자신이 점점 더 미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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