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를 키우게 되면서 알게 된 향기가 있다. 바로, 꼬순내이다.
(쿠기의 꼬순내나는 발. 꼬순내를 직접 맡게 해줄 수 없어서 아쉽다...)
꼬순내는 강아지나 고양이 발바닥에서 나는 고소하고 달콤한 향으로, 많은 반려인들에게 중독성 있는 힘을 준다고 여겨진다. 나도 종종 스트레스를 받거나 머리 아픈 일이 있을 때 쿠키의 발바닥에서 나는 꼬순내를 맡곤 한다. 그러면 왠지 모르게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 같고, 기분 좋은 마음이 자리 잡게 된다.
꼬순내는 주로 발바닥에서 서식하는 프로테우스, 슈도모나스 등의 박테리아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 박테리아는 강아지나 고양이의 땀샘이 집중된 발바닥에서 번식하며, 옥수수나 팝콘, 누룽지와 비슷한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 이 냄새는 건강한 발바닥에서 정상적으로 날 수 있는 향으로, 특별한 질병의 징후가 아니라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꼬순내는 반려동물과 주인 사이의 정서적 유대와 심리적 위안을 준다. 꼬순내에 중독된 보호자들이 많고, 심지어 일본 등지에서는 '강아지 발바닥 아이스크림'이 출시될 만큼 꼬순내는 중독성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결론적으로, 꼬순내는 단순한 냄새를 넘어, 반려인에게는 심리적 안정과 애정의 표현, '작은 행복'을 주는 힘이 있다.
문득 어느 날은, 쿠키의 꼬순내를 맡고 있다가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나의 꼬순내는 무엇일까?', '요즘 나는, 쿠키의 꼬순내처럼 얼마나 주변 사람들로 기분을 좋아지게 하고 행복감을 나눠주고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물론, 우리 인간이 풍기는 꼬순내는 강아지 발의 땀샘에서 나는 그런 냄새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인간이 풍길 수 있는 꼬순내란, 무엇일까?
일찌감치 바울은 우리 인간에게서 날 수 있는 꼬순내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고후2:15-16)
여기서 쓰인 '향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오디아'는 구약에서 '희생제사'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이다.(창8:21,출29:18,레1:9,민15:3). 사실 구약의 제사에서 짐승을 태우는 냄새는 향기로울 수는 없다. 피의 역한 냄새를 어찌 향기롭다 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이는 어디까지나 하나님 편에서 피제사를 드리는 인간의 기꺼운 순종을 향기로운 냄새로 받으시는 것을 뜻할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을 전파하는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희생제사와 같은 것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배척과 핍박을 당하였고 죽음을 무릅써야 했다. 이때 바울과 동료 교약자들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졌는데, 이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향기가 되었다.
이처럼,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이 풍길 수 있는 '향기'란, 인간을 통해 퍼지는 하나님의 지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지식이란 또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렘9:24)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님께서 사랑과 정의과 공의를 땅에 어떻게 행하신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더욱 자세하게 나타났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일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드러난 절정이었다. 하나님은 우리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존귀와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고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인해 그분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롬5:8). 그리고 또한 범죄 하지 않아 죄를 모르는 천사나 온 우주 피조물들에게 예수님의 생애(출생부터 부활과 승천까지)의 모든 국면을 통하여 완전한 품성과 전적인 이타심을 증거 하심으로 공의를 드러내셨다(딤전3:16).
장황하고 복잡하게 이야기한 것 같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님의 품성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나를 향하여 얼마큼의 사랑을 드러내셨는지, 또 나를 위해 무엇을 희생하셨고, 지금도 나를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를 아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지식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고(갈2:20) 그 지식이 그 인생에 향기가 되어 세상에 풍겨져 나갔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5:14)
우리 인생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 진다(빌 3:8).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게 되며(요14:15), 그분의 사랑을 소유한 자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요15:10). 이것이 참된 생명으로 향하게 하는 우리 생애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러한 생애를 사는 인생에야말로 '꼬순내'를 풍기게 되어 주변 사람들로 기분 좋게 하고 힘을 얻게 하며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진리와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다.
다시 이 질문으로 돌아오자.
'나의 꼬순내는 무엇인가?'
나의 꼬순내는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향기이고 싶다.
예수님처럼 나도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는 생애를 살아, 좀 더 사람들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삶을 살고 싶다. 기꺼이 희생하는 생애 속에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향기로운 냄새이고 싶다.
그렇게 오늘도 나와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품성을 온전하게 드러내어 꼬순내를 풀풀 풍기는 하루를 살게 되길 기도한다.
그리고.. 이런 나의 모습으로 오늘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길 소원해 본다(마 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