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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성근 Jun 25. 2021

좋은 노래 고르는 법

아빠 인문학

애플 뮤직을 결제했다. 세상의 모든 노래가 거기 있더구나. 지나간 시절의 노래가 있어 좋았다. 대청소 할 때나 발견되곤 하는 플라스틱 CD 앨범이 참 반가웠는데 열고 보면 빈 껍데기라 허무할 때가 많았다. 진주 같은 노래를 품은 작은 원판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우리집 식구들 중 누구의 소행인지 알지만 찾지 않기로 한다. 세월이 그랬겠지, 하며 넘기자. 그래서 아빠는 100여 장의 앨범 플라스틱 케이스를 소장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무슨 노래를 즐겨 듣는지 알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나는 모든 노래를 다 좋아해요, 하고 말한다면 그는 섬세한 감각이 부족한 사람이다. ‘모든 노래’를 하나의 노래로 여기는 사람이고, 이 노래와 저 노래의 음색을 구분 못해 민감도가 떨어지는 녀석이다. 미안, ‘녀석’이라 말했구나. 그러니 노래를 좀 들을 줄 아는 녀석을 사람을 만나야 한다. 


누구에게나 자기 노래가 있다. 자기 시대의 노래가 있고 자기만의 노래가 있다. “전 클라식을 즐겨 듣죠!” 하고 지적 교양을 뽐 내듯 말하는 자가 있고, “난 째즈 스타일이에요.” 하고 도시적인 보헤미안인 듯 칵테일 석 잔 마신 것처럼 발음을 꼬며 말하는 자가 있다. 그러나 자기 노래가 아니면 제대로 들을 수 없다. 


자기 자신의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노래를 타고 논다. 어떤 장르의 노래든 자신의 노래 안에 머물면 기분이 좋다. 우리는 경상도 밀양 지방에 전해져 오는 신라 시대 노동요를 즐겨 듣지 않는다. 국방FM의 군가를 들으며 눈물 흘리는 사람도 극히 드물 것이다. 아프리카 우간다의 열두 박자 타악기 연주는, 가끔 사람을 미치게 하는 신기한 리듬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랑을 고백할 때 배경음악으로 쓰기에 무리다. 이것들은 우리의 노래가 아닌 탓이다. 


노래를 흥겨운 놀이 활동으로 남겨두기에는 너무 깊다. 그 울림은 마음을 후비고 기억을 되살린다. 아빠가 즐겨 보는 KBS 음악 프로 ‘가요 무대’는, 실은 네 할아버지가 즐겨 보시던 방송이다. 나는 그 프로를 보면서 아버지를 생각하곤 한다. 



노래에는 시간이 묻어 있다. 어떤 노래를 누군가와 함께 들으면 그 노래는 하나의 시간을 품는다. 시간을 타고 함께 흐르며 말과 행동, 눈빛, 작은 제스처까지도 음률과 박자 속에 저장한다. 세월이 지난 뒤 다시 듣게 되면 그 노래는 그 시간과 존재의 기억을 모두 되살려낸다. 이것이 노래가 가진 능력이다. 노래는 시간을 저장한다.  

누구나 노래 부를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의 노래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똑같은 악보로 노래해도, 어떤 사람의 노래는 몸을 떨게 하거나 사지를 마비시킨다. 사람의 근육을 씰룩거리게 만들거나 고요하게 가라앉게 하지. 그 노랫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게 만드는 노래, 그러니까 좋은 노래는 사람의 신경계를 지배하여 조종하는 노래다. 나는 여태껏 그런 노래를 딱 한 번 들어 봤다. 네 엄마가 네게 불러 주던 자장가. 40도 가까이 오른 고열에 밤새 경련하던 너를 잠재운 그 노래의 힘을 너도 알겠지? 원시 시대 주술사처럼 강력한 마법을 네게 걸었던 그 자장가의 힘을. 좋은 노래는 일종의 마법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너는 마법사처럼 노래를 불러라. 노래방에서 에코빨 잔뜩 넣어 부른 노래는 마력이 약하다. 네가 증명해야 할 것은 너의 능력이 아니다. 너의 탁월한 재능과 지고한 덕성, 용감한 의협심으로써도 사랑은 밝혀지지 않는다. 사랑은 노래처럼 마법의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바흐의 견고한 수학적 음률로 노래해도, 마음을 담아 부르지 않으면, 지게차가 후진할 때 켜지는 ‘엘리제를 위하여’와 다를 바 없다. 마음을 담지 않은 노래는 노래가 아니다. 시그널 음향일 뿐.


화려한 반주가 없더라도 바람을 타고 파도를 타며 노래해라. 일렁이는 마음으로 노래하고 비처럼 마른 땅을 적시는 노래를, 나무처럼 푸르고 싱싱하고 건강한 노래를,  1억 년을 흘러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계곡을 팠다는 그랜드 캐년의 강물처럼 영원히 울려퍼지는 노래를, 그 정도는 불러야 마법이 통한다. 


인연이란 그런 것이다. 처음 듣는 순간 안다. 이미 들어본 것 같으면서도 새롭고, 낯설지만 반갑다. 반복해서 듣고 싶고 무한 리플레이 상태로 둔 채 잠들게 되지. 혼자 있어도 머리에서 울리고 세월이 지나도 한번 좋아했던 노래는 영원히 좋아하게 되지. 그게 노래지. 그게 사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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