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성근 May 15. 2020

거짓말에 대하여

아빠 인문학

작게 찢어진 살은 따갑고 불편하지만 죽음을 몰고 오지는 않는다. 심각한 상처가 아니라면 금세 아물 것이고 상처는 새로 돋아난 살에 묻힌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게 있다. 그 작은 틈으로 죽음의 씨앗이 파고들 수 있다.


거짓말하는 습관은 네 영혼에 상처를 준다. 심각한 거짓이 아니라면 금세 묻히고 덮힌다. 하지만 작은 거짓 사이로 더 큰 거짓과 불의, 사악함이 들어올 수 있다. 


거짓말은 잔혹한 술수와 유언비어, 온갖 사기극의 어머니이다. 복수와 살인, 학살과 전쟁도 거짓말에서 시작된다. 남에게 아픔을 주는 행동, 참기 힘든 고통과 피하기 어려운 절망을 주는 일은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 빚어 낸다. 


남을 속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실을 짜맞추고 진실을 왜곡해야만 한다.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힘 없는 강아지의 목줄을 끌고 달리는 것만큼 쉽다. 약간의 저항이 있겠지만 결국 굴복하고 만다. 거짓이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부당한 이득을 포기하면 거짓말의 유혹도 사라진다. 



이제 좀 복잡한 얘기를 해 보자. 너의 말과 행동은 진실이지만 그 진실이 커다란 거짓의 일부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 그냥 저 사람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에요. 저 사람이 나한테 시켰어요.”


이것은 진실과 거짓의 문제를 넘어선다. 이는 악의 문제다. 악은 박쥐와 비슷한 괴물이 아니라 사방에 퍼져 날리는 곰팡이 포자를 닮았다. 너의 힘으로는 그것을 막을 수 없다. 


곰팡이가 강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곰팡이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더럽고 습하고 눅눅한 환경에서 자라는 방식으로 곰팡이는 자란다. 자주 청소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악은 악의 방식으로 퍼진다. 그것은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와 같고, 건물 기둥에 생기는 금, 균열을 닮았다. 두세 마리의 모기를 잡아서 말라리아를 없앨 수 없고, 금 간 벽에 회칠을 한다고 붕괴 직전의 건물을 떠받칠 수 없다. 어떻게 이것들을 막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개인주의의 길을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지혜로운 한 개인으로 행동하는 길이다.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잠들기를 거부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어 몸을 자주 씻으면 모기에 물릴 확률을 줄일 수 있다. 안전을 장담하는 건물주의 말을 믿지 말고 너 스스로 안전한가를 따져보는 것이다. 


세상에는 악이 넘쳐난다. 이들 전부에 맞서 싸우겠다는 것은 미친 짓이거나 그 역시 악한 마음이다. 우리는 그때그때 판단하고 행할 수 있을 뿐이다. 악을 피하라는 말이 아니다. 판단하라는 말이다.  


아돌프 아이히만. 1942년. 위키백과

1961년 4월 11일, 육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혐의로 아이히만이 예루살렘 법정에 섰다. 그리고 말했다. 


“저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입니다.”


그가 만약 자기 양심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광기에 사로잡힌 공동체의 목표에서 벗어나 자기 길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개인주의의 길을 갔다면, ‘위’에서 내린 지시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판단을 지속적으로 실천했다면, 그는 악마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악에 맞서 싸우려 하지 마라. 악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하거라. 


하얀 거짓말이 있을까? 타인의 유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거짓말을 해야 할까? 사례를 하나 들어 보자. 동생과 함께 방에서 뛰어 놀다가 동생이 실수로 고급 청자를 깨트렸다. 동생은 겁을 먹고 울었다. 부모님이 돌아왔을 때 형이 부모님께 말했다. “제가 그랬어요.” 형은 부모님께 매를 맞았고 외출 금지를 당했다. 형은 거짓으로 동생의 잘못을 덮었다. 형의 거짓말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형은 거짓말을 했지만 사랑을 실천했다. 형의 거짓말은 잘못이 아니다. 왜 그럴까?


사랑과 연민이 진실보다 더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뼈다. 진실은 사람을 올바로 서 있게 하지만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감싸주지 못한다. 감싸고 품어주는 것은 따뜻한 살과 피다. 부드러운 살결로써만 타인을 안아줄 수 있다. 


형은 동생을 사랑해서 진실을 덮었다. 우리는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 진실을 덮어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 진실이 아무리 올곧은 나무와 같아도 그것이 사람을 다치게 한다면 베어버려도 좋다. 어떠한 조건도 없이 말하마. 진실은 결코 사랑을 뛰어넘을 수 없다. 


진실은 곧은 자와 같지만 사랑은 구불구불하다.  사랑을 위해서 너는 유연해야 한다. 한 사람의 영혼을 품기 위해 너는 때로 상처 입고 다칠 각오를 해야 한다. 


진실을 고집하지 마라. 다만 사랑을 지켜라. 



작가의 이전글 재능 없는 아들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