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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상지 Sep 12. 2024

이건 비밀인데요

     “굿모닝 미스터 저스틴? 굿모닝 미스 로라?”    

수업이 있는 날엔 11시부터 11시 30분까지 나와 수준이 비슷한 학생들과 보조 선생님 Ms. 로라와 함께하는 대화모임이 있다. 대화모임은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 번 있는데 수업과 겹치지 않는 편한 시간을 골라하면 된다. 그때마다 주제를 정해서 토론한다. 참석 여부는 자유다. 그래서 어린 학생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 

많으면 5~6명, 없을 때는 나와 로라 둘만 한 적도 있다. 나는 한마디라도 더 들어보려고 모든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라 문화도 다르고 영어 발음도 다르다. 귀를 쫑긋 세우고 잘 들어야 한다. 특히 발음이 데굴데굴 굴러가는 인도 영어, 끝까지 발음하지 않고 끝을 흐리는 중국 영어는 알아듣기 몹시 힘들다.

대화 모임의 좋은 점은 말하는 수준이 서로 비슷해서 틀려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간단한 단어로만 대화하며 자기 생각을 전달하기에 급급했다. 도와주던 Ms. 로라는 완전한 문장으로 말하라고 항상 지적했다. 로라가 말했다.

“오늘의 주제는 비밀입니다. 말하고 싶은 비밀이 있으면 터놓고, 없으면 하고 싶은 말 자유롭게 해도 됩니다.” 

그때부터 나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그래. 바로 오늘이야. 한번 시도해 봐야지. 아마 다들 깜짝 놀라겠지?’  


제일 먼저 중국에서 온 ‘양양’이 말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중국여행을 꼭 하세요.” 

Ms. 로라가 물었다. 

“양양은 여행을 좋아하나 봐요. 가장 가고 싶은 나라는 어디인가요?”

“계림과 하이난성을 가보고 싶어요.”

“아 그렇군요. 중국 말고 다른 나라는 없나요?”

“중국에는 경치가 빼어난 곳이 많아서 죽을 때까지 다 못 가보고 죽을 수도 있어요. 중국 먼저 가야 해요.”     

나도 오래전에 ‘장자제’와 ‘원자제’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원자제는 영화 ‘아바타’의 촬영지였고 아름다운 경관에 감탄했었다. 하지만 양양이 과하게 중국을 자랑하는 모습이 얄미워 아무 말 안 하고 침묵을 지켰다. 

     

페루에서 온 ‘라라’가 말했다. 

“페루는 고대 잉카문명의 중심지였어요. 안데스산을 중심으로 아주 유명한 관광지들이 많아요. 마추픽추는 산꼭대기에 지어진 과거의 도시인데 해마다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어요. 하지만 나도 아직 못 가봤어요. 또 미스터리로 알려진 사막에 거대한 그림이 있는 나스카도 유명해요.”      

“나도 꼭 가보고 싶네요.”

Ms. 로라가 말했다. 나도 꼭 가보고 싶다며 엄지 척을 해주었다. 라라가 흐뭇하게 우리를 바라보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조지나가 말했다. 조지나는 Abaya (아바야.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쓰고 다니는 검은 천을 말한다)를 입고 다녔다. 

“여러분은 공주처럼 살고 싶지 않으세요? 사우디아라비아 여자들은 날마다 공주처럼 살아요.”

교사인 남편을 따라온 조지나는 남편의 유학비용과 자기 유학비용 모두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서 전액 지원해 주고 자동차도 사줬다고 했다. 모두 입을 떡 벌리고 쳐다보았다.     


드디어 내 차례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사람들은 나에게 물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일본? 중국?”

아니라고 하면 그때야 한국이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또 물었다.  

‘남한에서 왔어요? 북한에서 왔어요?’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은 그래도 어느 정도 한국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미국 사람들은 가끔 영화나 뉴스에 나오는 북한을 비밀에 싸여있는 나라로 생각하며 몹시 궁금해했다. 어떤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호기심과 공포심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이 남한과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얼마나 알고 있는지? 반응이 궁금했다.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는 작은 나라입니다. 또 여러분도 알다시피 남한과 북한으로 분리되어 있지요. 나는 이 자리에서 중요한 비밀을 하나 말할게요. 이 비밀은 꼭 지켜주셔야 합니다. 

만약 비밀이 탄로 나면 FBI가 나를 잡으로 올지도 몰라요. 나는 북한에서 왔어요.”     

말을 하면서 그들의 얼굴 표정을 슬쩍 쳐다보았다. 


Ms. 로라와 양양, 라라, 조지나, 크리스티나는 놀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특히 콜롬비아에서 온 크리스티나의 눈동자가 가장 크게 빛났다. 로라가 충격을 받았는지 나에게 물었다. 

“여기서는 혼자 살고 있나요? 루미는 안전~~~?”

내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쉿’ 하며 주위를 살폈다. 로라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멈췄다.       

잠시 뒤, 크리스티나가 말했다. 

“나에게도 큰 비밀이 있어요. 나는 고등학교 때는 크리스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크리스티나가 됐어요. 나는 성전환자입니다.”

맙소사, 깜짝 놀랐다. 당황했다. 나는 그냥 장난으로 말해 본 건데 진심으로 받아들인 크리스티나에게 몹시 미안했다. 어쩐지 목소리가 조금 굵직하고 골격이 크다는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예뻤다. 짧은 대화시간이 끝났다.

로라와 호기심 어린 얼굴들이 크리스티나와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잘못한 걸까? 모두에게 장난이었다고 급히 사과했다. 특히 크리스티나에게는 깊이 머리 숙여 사과했다. 다행히 크리스티나는 괜찮다고 쿨하게 웃어넘겼다.

친구들을 놀라게 해서 같이 웃어보려고 한 장난이었는데 내가 제일 놀라고 사과까지 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내 장난은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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