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녀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그녀를 꼭 안아줄 밖에.
한글학교 입학식 날, 내 옆에 앉아있던 검은 머리의 매력적인 여자가 다가와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안나예요.”
그녀는 크고 동그란 눈, 오뚝한 콧날, 큰 키가 매력적인 40대 초반쯤 되어 보였다. 우리는 서로 이름과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안나가 자기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우리 집에서 걸어갈 정도로 가까운 곳이었다. 그 동네는 조용하고 예쁜 집들이 많은 고급 주택가여서 내가 자주 가는 산책 코스였다.
안나 네 집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안나, 이 집은 내가 산책하다 예뻐서 사진 찍어 놓은 집이야, 벽면이 온통 유리로 된 독특한 집이잖아.”
“맞아요. 저희도 그게 예뻐서 이 집을 샀어요.”
안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안나는 그 집에서 일곱 살 딸 나나와, 남편 제임스와 함께 살고 있었다. 겉으로만 보면 안나는 완벽한 가정의 행복한 여자였다. 맛있는 벨기에 초콜릿과 케모마일 차를 앞에 두고 그녀는 입을 열었다.
“루미,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어요. 아기 때 벨기에로 입양 보내졌대요. 그러니까 저도 한국 사람이에요.”
안나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대전의 어느 길가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벨기에 양부모님은 유명한 음악가였고 부자였어요. 하지만 부모님은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집안 분위기는 늘 무거웠고요. 저는 이쪽저쪽 눈치를 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 같아요. 결국 제가 20살이 되었을 때 부모님은 이혼했어요. 부모님의 이혼 후에는 엄마 집과 아빠 집을 오가며 지내기도 했어요.”
안나는 대학에서 생물을 전공하며 열심히 공부했단다. 유일한 취미는 여행이었고 답답할 때면 혼자 혹은 친구랑 여행을 다녔다고 했다.
“부모님이 이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분은 각자 재혼을 하셨어요. 엄마가 만난 새아빠는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었나 봐요. 엄마의 술과 담배가 더 늘었거든요. 다행히 아빠가 만난 새엄마는 아주 따뜻하고 편안한 분이었어요."
안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했고 회사 동료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딸을 낳았다. 그들은 벨기에에서 회사를 다니다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고 했다. 남편은 이곳에서 회사를 다니고, 안나는 프랑스어 강사로 활동하며 아이를 돌보고 있다는 것이 그녀가 내게 해준 인생 스토리였다.
“저에게도 어머니가 있겠죠? 왜 저를 버렸는지 궁금해요.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어요. 그게 다예요.”
“안나, 엄마에게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지도 몰라. 그때는 한국이 지금처럼 잘 사는 나라가 아니었어. 엄마가 너를 굶기지 않기 위해 내린 판단일 수도 있어.”
그녀는 엄마를 찾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녀는 어머니를 찾고 있다.
결혼 후, 남편과 딸과 함께 한국을 두 번이나 방문해서 그녀가 처음 발견된 대전 아동보호소에도 가봤지만 남아 있는 자료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마지막 방법으로 혈액을 채취해 유전자 검사를 해놓고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유전자 확인은 한국에 살고 있을 어머니도 혈액검사를 해서 유전자가 일치해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어머니가 혈액검사를 하지 않거나 딸 찾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안나는 글썽글썽한 눈망울로 나를 자기 집 지하실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한국과 관련된 물건들이 아주 많이 있었다. 아마존을 통해 구입했다고 한다.
오래된 재봉틀, 다듬이 방망이, 70년대 서울의 모 고등학교 성적표와 앨범도 있었다. 어떻게 그 물건들이 여기 안나네 집까지 오게 된 건지, 무거운 분위기를 뚫고 웃음이 터졌다.
“안나, 이게 뭔지 알아? 성적표야. 근데 이 사람 공부도 별로 못했네. 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 다닐 때 여학생들은 하얀 블라우스에 검정치마를 입었어. 남학생들은 빡빡머리에 검은색 교복을 입고 교모를 썼지. 이 사람처럼 말이야. 그런데 이게 어떻게 너네 집에까지 온 거야?”
안나의 생각은 온통 한국에 가 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에 한국문화를 영어로 홍보하는 아리랑 국제방송도 자주 시청하고 있었으며, 해외 입양아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유튜브와 인터넷 기사도 모두 찾아보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안나네 집에 가면서 나나를 위해 잔멸치 조림과 김치, 잡채, 매실액을 가지고 갔다. 안나가 구워준 빵으로 브런치를 먹고 내가 가져간 매실차를 마실 때였다.
혼자 멸치와 잡채를 먹던 나나가 갑자기 큰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울기 시작했다. 안나는 당황해 딸에게 달려갔고, 나나는 엄마 품에 안겨 멸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이 조그만 생선이 나를 째려보고 있어요. 무서워요.”
안나는 나나가 멸치를 처음 먹어봐서 그렇다며 웃었다. 나나가 진정될 때까지 품에 안고 달래 주었다. 작은 멸치의 아주 작은 눈이 자기를 쳐다본다고 느꼈다는 게 나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어서 웃음이 나왔다. 어렸을 때부터 멸치볶음을 수없이 먹어 왔지만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언젠가 만날 엄마를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어 했다. 안나는 프랑스어와 영어에 능통했지만 한국어는 전혀 못했다. 그래서 한글학교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우리가 헤어지던 날, 한국에서 가져온 태극기와 한복, 그림책을 안나에게 주며 꼭 안아주었다.
“안나, 엄마가 보고 싶고, 한국이 그리울 때는 언제든지 루미 언니를 찾아와도 돼.”
* 우리가 헤어진 1년 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반가운 카드가 도착했다. 안나와 나나, 제임스가 활짝 웃고 있는 가족사진으로 만든 카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