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금요일이다. 매주 금요일은 1주일에 한 번 노숙자 쉼터에 자원 활동을 가는 날이다.
아디군(여자 이름)과 나는 미국 성당에서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세계 이민자의 날’ 미사 때 처음 만났다. 나는 한복을 입고, 아디군은 나이지리아 전통의상을 입고 ‘신자들의 기도’를 같이했다.
그날은 베트남, 필리핀, 이탈리아, 프랑스,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온 신자들이 자기 나라 전통의상을 입고 자기 나라말로 기도문을 하나씩 낭송했다. 나이지리아 출신인 아디군은 30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행사가 끝나고 아디군에게 물어보았다.
“아디군, ‘무료급식소’나 ‘노숙자 쉼터’에서 자원 활동을 하고 싶은데 혹시 우리 집 가까운 곳에 있을까?”
아디군은 아주 잘 되었다는 듯 반갑게 말했다.
“정말이세요? 루미 집 바로 가까이에 내가 봉사하는 ‘노숙자 쉼터’가 있는데 항상 일손이 부족해요. 같이 가볼래요?”
처음 이곳에 봉사하러 온 날 목사님과 사모님은 종교를 초월해서 언제든지 자원봉사자를 환영한다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왜냐하면 이곳은 침례교회였고 아디군과 나는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이다. 나도 종교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내 손길이 필요한 곳엔 어디에라도 달려가 봉사할 의향이 있었다. 노숙자 쉼터에 처음 자원활동하러 온 나에게 목사님은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말해주었다.
“이 마을에는 여성노숙자 쉼터와 남성노숙자 쉼터가 분리 운영되고 있어요. 추운 겨울, 석 달 동안만 운영합니다. 대화할 때 사적인 이야기를 오랫동안 하면 안 돼요. 개인 전화번호도 알려주시면 안 됩니다. 많은 전화를 계속해서 통제 불능이 될 수도 있어요. 노숙자분들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대해 주세요.”
시간이 되자 10여 명의 노숙자분들이 한두 명씩 캐리어를 끌고 오거나 혼자 오셨다. 자기 차를 가지고 와서 주차시키는 분도 계셨다. 교통경찰이 불법 주차를 알리려고 교회 안까지 찾아왔다. 목사님은 꼭 지정된 장소에만 주차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일찍 와서 교회 지하에 있는 강당을 청소하고, 테이블을 펼치고, 간이침대도 놓았다.
한아름 꽃다발을 가지고 온 사람은 테이블마다 조금씩 나눠 꽃을 꽂았다. 나는 일회용 Amenity(칫솔, 치약, 샴푸, 비누, 양말까지도)를 준비해서 화장실 옆에 예쁘게 진열했다. 그러고 나서 바쁜 주방 일손을 돕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건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지금 어디 살아요? 나랑 친구 할 수 있어요?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아까부터 힐긋힐긋 나를 쳐다보던 10대로 보이는 소녀다. 낯선 동양인을 보니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은가 보다.
‘아,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할까?’
목사님의 주의사항이 생각나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호기심 많은 소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도 궁금하다. 얘기해 보고 싶지만 안된다. 목사님은 왜 안된다고 했을까? 슬쩍 목사님을 쳐다보았다.
주방 안에서는 10여 명의 자원활동가들이 식사 준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요리사는 싱싱한 재료로 요리를 하고, 집에서 구운 빵을 직접 들고 온 사람도 있었다. 식사시간 동안 연주할 피아니스트도 왔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왔고 근사한 음식들이 차근차근 뷔페식으로 차려졌다.
정성스럽게 만든 한 끼 식사가 시작되었다. 피아노 연주도 시작되고 우리의 서빙도 시작되었다. 하지만 정작 손님들은 불편한듯한 몸으로 느릿느릿 음식 앞으로 다가오셨다. 음식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킁킁 냄새를 맡거나, 인상을 쓰거나, 음식을 흘리기도 했다. 대부분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고 말도 없었다. 나는 옆에 서서 음식을 잘 드실 수 있도록 도와드렸다. 서빙을 원하는 분들에게는 서빙도 해 드렸다. 사실 서빙을 하면서도 내 신경은 온통 소녀에게 가 있었다. 그 소녀가 핸드폰을 보면서도 자꾸 내 쪽을 힐긋힐긋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무슨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음식을 받아 가면서도 나와 눈 맞춤을 했다.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고 목사 사모님이 말했다.
정상적으로 공부하고 결혼해서 잘 살던 분이 아이를 낳고 나서 갑자기 집을 나와 노숙자 생활을 시작한 산모도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집은 부유했고 남편과 부모님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노력했으나 매번 다시 집을 뛰쳐나온다는 것이다.
소녀는 식사를 하면서도 자꾸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식사를 끝낸 소녀는 목사님의 눈치를 보며 자기 침대로 돌아갔다. 목사님께 물어보았다.
“낮에는 모두 어디에 계시는 거예요?”
“주로 다운타운이나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죠.”
돌아갈 집이 있는 우리는 아침이면 집을 나오고 깜깜한 밤이면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서 음식을 먹고, 잠을 자고 다시 힘을 내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혹은 돌아갈 집이 없는 그분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나는 다음 주에 이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친구가 필요하다던 그 소녀가 다시 나에게 다가와 전화번호를 묻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목사님 말씀처럼 또 거절을 해야 할까? 그게 맞는 걸까?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다.
* 소녀는 다음 주에 한 번 더 나랑 만났다. 하지만 첫 만남과는 다르게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다음 주부터는 그 소녀를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