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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상지 Aug 12. 2024

Pearl S. Buck 국제센터

보리차를 끓여 텀블러에 넣고, 피넛 버터 샌드위치로 도시락을 쌌다.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꽃삽과 작업용 장갑을 에코백에 넣는다. 햇빛을 가리는 챙 넓은 모자도 챙겼다. 모든 준비물을 확인한 다음 자동차 시동을 켜고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했다.  

520 Dublin Rd Perkasie, PA 18944. 

ek International Center

집에서 1시간 정도 달리면 된다. 가는 길에는 Nockamixon State Park을 지나간다. 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진 숲길을 지날 때면 향긋한 숲 냄새가 눈과 코를 행복하게 해 준다. 하지만 언제든지 사슴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느긋하게 주의해서 운전해야 한다.    

이곳에 자원활동을 하러 올 때는 개인 준비물을 모두 챙겨 와야 한다. 첫날은 아무런 준비 없이 와서 센터의 도구를 쓰고 카페에서 음식을 사 먹어야 했다.

오늘은 세 번째 날이다. 펄벅센터에 도착하자 먼저 사무실로 가서 내가 도착한 시간을 적고 사인을 했다. 

티셔츠 왼쪽 가슴에 내 이름표도 달았다. 그리고 그린하우스로 갔다. 그린하우스 앞에는 Mr. 켄이 벌써 나와 손을 흔들며 서 있다. 그는 이미 내가 오늘 작업할 꽃들을 정원 곳곳에 배치해 놓았다. 켄은 조그만 통을 하나 주었다. 통 속에는 콩보다 작고 들깨보다는 큰 하얀 알갱이들이 들어 있다.

“루미, 꽃을 심기 전 이것을 2~3알씩 땅속에 먼저 넣고 꽃을 심어야 합니다. 이것은 ~~ 입니다.”

처음 듣는 단어여서 잘못 알아들었다.

“다시 한번 말해주세요.”

켄이 다시 말해줬지만 또 못 알아들어 스펠링을 알려달라고 했다. 셀폰을 꺼내 찾아보니 fertilizer 거름이었다. 켄에게 몇 번이나 발음을 확인하며 연습을 했고 그는 마침내 웃으며 OK 했다.


꽃삽으로 구멍을 파고 거름을 2~3알씩 넣고 꽃을 심기 시작한다. 이 모종들은 겨울에 켄이 그린하우스에서 씨를 뿌리고 가꾼 모종들이다. 모종이 자라고 봄이 되면 날씨에 따라 차례차례 꽃들을 옮겨 심는다. 꽃들도 키에 따라 큰 키의 꽃들은 뒤쪽에, 작은 꽃들은 앞줄에 심는다. 색깔도 조화를 이루어 어울리게 한다. 나는 채송화 종류의 꽃들을 심고 있다. 켄에게 꽃 이름을 물어보았다.

켄은 Moss rose, 또는 Portulaca라고 한다. ‘채송화’ 같았는데 영어 이름을 그대로 해석하면 ‘이끼 장미’란다. 켄은 Portulaca에 대한 꽃 이름의 유래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포르투라카는 라틴어로 문을 의미하는 포르투라에서 나왔다고 한다. 꽃이 낮에 피고 밤이 되면 닫히는 모습이 문을 열고 닫는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켄은 지금 여기저기서 활동하고 있는 다른 자원활동가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나에게 얘기해 준다.

꽃을 심다 말고 사진도 찍고, 새소리도 듣고, 어떤 새가 어디서 노래하는지 하늘도 올려다 보고, 나무 위도 찾아보며 꽃을 심는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정원 일하기 딱 좋은 날이다.  

    

이곳에 활동을 오게 된 것은 한글학교에서 만난 ‘안나’ 소개였다. 어느 날 안나가 물었다.

“루미, 혹시 작가 Pearl S. Buck 알아요?”

“당연하지. 퓰리처상과 노벨상을 받은 미국 작가잖아. 나는 ‘대지’도 읽었다고.”

내가 자신 있게 말하자 안나는 우리 동네에서 가까운 곳에 '펄벅 인터내셔널 센터'가 있다고 했다. 가까운 곳에 펄벅센터가 있다니 놀라운 정보였다. 당장 가보자 했고 우리는 같이 왔다. 자원활동가를 구한다고 해서 바로 그 자리에서 자원활동을 신청했다. 안나는 아직 어린 딸이 있어서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적은 액수의 입회비를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름표도 주문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활동 중이신 분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오, 루미. 반갑습니다. 한국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네요. 중국, 일본, 대만, 베트남, 필리핀 등...... 모두 다 있는데 한국 분은 아직까지 없었어요. 기념품 숍 카운터에서 일해 볼래요?”

그녀가 나에게 제안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센터에 들어오면서 보니까 꽃들이 예쁘던데 정원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 나를 보고 어떤 한국분은 안타깝게 생각하며 조언해 주었다.

“땡볕에서 흙 만지는 일을 왜 해요? 일을 하려면 돈 받는 일을 해야지요. 미국에서는 일한 만큼 돈을 받아야 해요. 세탁소에 가보세요. 대부분 한국분들이어서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을 거예요.”    

내 목적은 돈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펄벅 센터에서 그녀가 우리에게 실천했던 사랑을 조금이나마 대갚음할 기회가 왔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그녀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직접 흙을 만지며 예쁜 꽃을 심는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펄벅 여사는 1960년대 6.25 전쟁 후의 빈곤한 우리나라를 여덟 번이나 방문했다. 그리고 전쟁고아들 특히 혼혈아들을 돌보기 위해 부천에 소사희망원을 세웠다. 그녀는 한국에 올 때마다 2, 3개월씩 머무르며 아이들을 돌보았다. 그 아이들의 숫자는 약 1,500여 명에 이르렀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 <살아있는 갈대>도 썼다.

부천에 있는 소사희망원이 지금은 펄벅기념관이 되었다.

봄꽃을 심고 가꾸며 시작했던 펄벅센터 정원과의 인연은 크리스마스 리스 만드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별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얼마 뒤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아시는 분이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모시고 펄벅센터를 방문했다고 한다. 그때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안내하시는 분이 말씀하셨단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온 루미가 많은 꽃을 심으며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었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찡하며 내가 했던 정원 일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내가 심었던 Portulaca는 올해도 누군가가 심었겠지? 내가 돌보았던 나무들도 잘 자라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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