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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상지 Sep 16. 2024

그녀는 언제쯤 뉴욕에 갔을까?

   “2주 후에 있을 뉴욕 여행 신청받습니다. 학교에서 자동차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준비물은 각자 쓸 용돈과 점심값만 있으면 됩니다.”  

   

여행동아리를 이끄는 하잘이 광고했다. 친구들과 같이 뉴욕 여행할 좋은 기회다. 학교에서 뉴욕까지는 1시간 30분 거리다. 순식간에 15명 정도의 ESL 학생들이 신청했다. 이 기쁜 소식을 빨리 조시메리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녀는 동아리 활동을 안 해서 아직 이 소식을 모른다. 먼저 하잘에게 물어보았다.

“하잘, 동아리 회원 아니어도 괜찮아?”

“물론이죠. 학교에서 대형 밴을 제공해 준다고 했으니 밴 한 대에 탈 수 있는 인원이면 다 좋아요.”


얼마 전 라이팅 시간에 애슐리 교수님이 물었다. 미국에서 가장 가고 싶은 곳과 그 이유에 대해 써보세요. 

대부분의 학생들은 뉴욕, 워싱턴, LA 등 대도시에 가고 싶어 했고, 나는 자연이 아름다운 메인주에 가고 싶다고 썼다. 애슐리 교수가 물었다.

"뉴욕에 한 번도 안 가본 사람 있어요?"

모두들 고개를 돌리며 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 푸에르토리코에서 온 조시메리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학생들은 모두 조시메리를 쳐다보았다.

애슐리 교수가 다시 물었다.

“미국에 온 지 몇 년 되었죠?”

“8년 되었어요. 뉴욕은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응? 왜? 멀고 먼 서부 LA도 아니고, 여기서 뉴욕은 가까운 거리이고 심지어 버스도 다니는데 왜 안 간 거지?’

못 갈 이유가 없는데 이상했다. 조시메리는 수업도 라이팅과 그래머만 듣는다. 수줍고 조용한 성격으로 큰 소리로 말하거나 큰 소리로 웃는 걸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우스운 얘기를 해도 조용히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항상 바쁜 듯이 빠르게 와서 수업이 끝나면 조용히 사라졌다. 우리끼리 카페테리아에 가서 커피를 마시거나 간식을 사 먹을 때도 한 번도 같이 하지 않았다.      

점심값만 있으면 된다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점심은 나랑 같이 먹어도 된다. 미국에 온 지 8년이나 지났는데 바로 옆에 있는 뉴욕을 못 가봤다는 게 말이 되는가!   

   

다음날 수업 시간에 만난 조시메리에게 말했다.

“조시메리 우리 같이 뉴욕 가자.

여행동아리에서 이번 주말에 뉴욕 갈 거야. 너 뉴욕 가고 싶다고 했지? 정말 좋은 기회야. 꼭 같이 가자.”     

신이 나서 알려주는 내 말에 조시메리가 머뭇머뭇하며 말했다.

“루미, 고마워요. 그런데 나는 갈 수 없어요.”

“응? 왜? 차비도 필요 없어. 점심값만 있으면 된다니까? 점심은 나랑 같이 먹으면 되고, 뭐가 문제야?”

“일을 해야 해요.”     

‘아, 그렇구나’

머리를 크게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할 말이 없었다. 생각 없고 철없는 루미 언니가 되고 말았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온 조시메리는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령이어서 미국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것도 조시메리를 통해 처음 알았다. 다만 선거권만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미국 본토로 들어오면 바로 선거권도 생긴다고 했다. 조시메리는 스스로 일을 해서 영어를 먼저 배운 다음, 간호대학을 가겠다고 했다.  

“저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형편이 안 돼요. 제가 돈을 벌어서 간호조무사가 될 거예요. 그리고 일 하면서 공부를 계속해 간호사가 되는 게 최종 목표예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주말에도 쉬지 않고 식당에서 일하며 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야무진 조시메리는 그렇게 자신만의 꿈을 꾸며 열심히 살고 있었다.  

    

나랑 같이 공부하는 애들이 모두 나처럼 즐겁고 재미있게 학교에 다니는 줄로만 알았다. 항상 밝은 얼굴의 하잘도 그랬다. 영어를 잘하는 하잘은 ESL학생이 아니고 NCC의 정식 학생이었다. 내가 카페테리아에서 일하는 것처럼 하잘은 ESL 학생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며 스스로 돈을 벌며 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도 영어에 서툰 ESL 학생들에게 뉴욕 여행을 추진하며 희망자를 모집하고 있는 것이다.  

    

문득 지난겨울 갑자기 많은 눈이 내린 날이 생각났다. 미국에서는 눈이 많이 오면 학교가 문을 닫거나 등교 시간을 늦추기도 한다. 그날은 그런 알람이 없었다. 카페테리아 커피 코너에서 일하는 성실한 티나가 11시가 되어도 출근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몹시 걱정되었다. 프렌치프라이를 튀기고 있던 마이클에게 물어보았다.

“마이클, 티나가 왜 아직 안 오는 거야? 눈 때문에 교통사고가 난 건 아닐까?”

“루미, 눈이 많이 오면 티나는 출근하기 힘들어요. 온다고 해도 늦어요. 그녀의 차가 말썽을 부리거든요.”

마이클에 따르면 티나의 낡은 중고차는 눈이 오거나 몹시 추운 날이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카페테리아에서 나랑 같이 쿠키 코너를 담당했던 직원 모니카는 자동차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매일 아침 동이 틀 무렵 집을 나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출근한다는 것이다. 모니카는 출근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오거나 늦을 때도 있었다. 미국에서 자동차는 신발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자동차도 없이 일하러 다니는 것이 얼마나 불편했을까? 나는 모니카가 게을러서 늦은 줄로만 알았다. 마이클의 말을 듣고 나니 내가 오해한 모니카에게 몹시 미안했다. 마이클도 카페테리아가 쉬는 주말에는 또 다른 일을 한다고 했다.


조시메리, 하잘, 티나, 모니카, 마이클은 모두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의 손을 빌리지 않고 돈을 벌며 틈틈이 열심히 공부하는 어린 조시메리가 존경스럽다. 모두들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 성실하게 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한다.   

   

한참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나는 가끔 조시메리를 생각한다.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웃기만 하던 그녀의 수줍은 미소가 그립다. 지금쯤 간호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조시메리는 언제쯤 뉴욕에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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