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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상지 Sep 05. 2024

인터내셔널 데이

      오늘은 ‘International Day’(국제교류의 날)이다.

아침 일찍 준비물이 가득 담긴 가방을 끌고 ESL 방으로 갔다. 각자 자기 나라를 홍보할 준비로 바쁘다. 넓은 복도에는 학교 측에서 설치해 준 부스가 쭉 늘어서 있다.  

내 부스 뒤쪽 벽에 태극기와 한글이 쓰인 티셔츠를 붙였다. 태권도복은 접어서 한국 그림책과 같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준비한 밥과 김밥 재료도 옆에 놓았다. 그리고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미국에 올 때 태극기와 한복을 가져왔는데 벌써 몇 번이나 유용하게 사용했는지 모른다. 탁월한 결정이었다.


2주 전 Mr. Justin은 말했다.

“며칠 후 International Day가 있어요. 자기 나라를 홍보하고 싶은 학생은 부스 신청하세요.”

우리나라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ESL에는 한국 사람이 나밖에 없었는데 이번 학기에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한국 남학생 인호가 새로 들어왔다. 고등학교를 여기서 다닌 젊은 학생이기 때문에 영어도 잘할 것이다.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인호야, 한국 부스 하나 신청해서 우리 둘이 같이 할까?”

돌아온 답변은 정중한 사양이었다.

“관심 없습니다. 루미 혼자 하세요.”

‘그래? 뭐 못할 것도 없지. 나 혼자라도 해야지. 나 아니면 우리 한국을 알릴 부스가 없어지는데 그건 절대 안 되지?’     

부스를 신청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한국교회에 미사 갔을 때 ‘국제의 날’ 행사에 대해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했다.

“혹시 한국을 알릴만한 물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손주가 배웠던 ‘태권도복’, 40년 전 이민 올 때 가지고 온 한복 입은 ‘신랑신부 인형’을 구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태극기’와 ‘한글 티셔츠’ 이 정도면 뭐 아쉬운 대로 괜찮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소품만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H마트에 가서 김밥용 김, 단무지, 햄, 게맛살, 당근, 시금치 등 김밥 재료를 사 왔다. 혼자 바쁘게 준비하는데 루시아 언니가 좋은 정보를 주셨다.

“초등학생 손자가 학교에서 한국 홍보하는 시간이 있었나 봐. 그때 며느리가 주한국대사관에 연락해서 많은 정보를 받았대.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던데 루미도 대사관에 신청해 봐.”


나는 NCC ESL에 다니고 있는 학생 루미라고 소개를 했다. 학교에서 International Day를 하는데 한국에 대한 정보와 홍보물이 필요하다고 메일을 보냈다. 정말로 한 뭉치의 홍보물이 도착했다. 한국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학생에게는 독도까지도 홍보할 수 있어서 대 만족이었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나는 한국에서도 가방 속에 한두 권의 그림책을 넣어 가지고 다니며 친구들 모임이나 어린이들이 있으면 읽어주곤 했다. 미국에 올 때도 그림책 다섯 권을 가지고 왔다. 

<구름빵>, <알사탕>,  <삐약이 엄마>, <만년샤쓰>, <꽃 할머니>였다. 그림책과 A4 용지, 매직펜도 한쪽에 놓았다.

Mr. Justine이 내 코너에 왔고 그림책에 관심을 보였다.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을 보며 아주 특이하고 매력적인 그림책이라며 그림책을 공부하고 있는 조카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 했다. 백희나 작가는 이미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이고 2020년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인 아스트리드린드그렌상을 받았다는 소식도 전해주었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내 부스에 왔다. 먼저 구워서 자른 김을 먹어보도록 하고, 그다음 김밥을 시식하도록 했다. 구운 김을 먹고 바다 냄새가 역겹다는 학생도 있었기 때문이다. 맛있다는 학생에게는 바로 그 자리에서 김밥을 싸서 맛보게 했다. 학생들은 내가 김밥 싸는 모습을 보며 마치 마술쇼를 보는 것처럼 신기해했다. 원하는 학생에게는 A4 용지에 한글로 이름을 써주었다. 아주 좋아했고 내 어깨가 으쓱했다. 

부스를 운영하는 틈틈이 다른 나라 부스도 구경하러 다녔다. 젊은 친구들은 노트북을 가져와 켜 놓고, 음악과 자기 나라 영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좋은 생각이었다. 나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입과 손으로 대신 설명해야 했지만 오히려 반응은 더 좋았다.

각 나라 부스마다 학생들은 자기 나라 전통 의상을 입고 서 있었다. 혼자 부스를 운영한 팀은 나밖에 없었다. 아쉬움은 컸지만 혼자라도 해내서 얼마나 다행인가! 한국 부스는 꽤 인기가 많았다.


여학생 2명이 와서 내가 입은 한복이 예쁘다며 엄지 척을 해 주었다. 그들은 다 둘러보고, 김밥을 먹고도 가지 않고 한참을 내 앞에서 서성거렸다. 알고 보니 그들이 망설인 진짜 이유는 한글 티셔츠 때문이었다. 한글이 새겨진 티셔츠를 가리키며 살 수 있냐고 물었다. 팔 생각은 없고 행사가 끝나면 그냥 주겠다고 했다. 그들은 끝나갈 무렵 와서 티셔츠를 공짜로 받아가며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부스 구경이 끝난 뒤 카페테리아 한쪽 넓은 홀에서는 다트 던지기 등의 게임과 장기자랑을 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나라 친구들 옷을 바꿔 입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문화를 즐겼다. 내가 입은 한복이 인기가 제일 많았다. 여학생들이 내 한복을 입고 사진 찍으려고 줄을 섰다. 위 사진에서는 인도네시아 친구가 내 한복을 입고, 푸에르토리코 친구가 태극기를 들고 있다.      

나는 아쉽게도 장기자랑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싶었으나 내가 춤과 노래를 했다가는 BTS의 나라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망칠 것만 같았다. 솔직히 나는 춤과 노래에 꽝이다. 앉아서 구경만 했다. 그래도 흥은 있어서 온몸이 흔들흔들 엉덩이는 들썩들썩했다.

인도팀이 가장 많이 출전해서 인도 1, 인도 2, 인도 3...... 등 인도 학생은 숫자도 많고 적극적이었다. 인도 음악과 전통춤이 끝없이 이어졌다.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은 언어 장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소통하며 한바탕 흥겨운 잔치를 벌였다. 중요한 것은 언어가 아니라 마음이었다. 얼굴, 문화, 언어는 달랐지만 모두가 하나 된 흥겨운 축제였다.





         


                         

* 주미국 대한민국 대사관: 미국에 사는 동안 우리나라를 알릴 정보나 홍보물이 필요하면 대한민국 대사관에 연락하면 된다. 홍보물과 자세한 정보를 무료로 보내준다. 많은 도움을 받았다.

http://usa.mofa.go.kr/korean/am/usa/main//index.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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