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아들을 키우는 애니 교수님은 파닉스를 가르쳤다. 애니 교수가 문장 읽어오기 숙제를 내주면 학생들은 주어진 문장을 읽고 녹음을 해서 교수님께 보낸다. 교수님은 녹음을 듣고 평가해서 다음 수업 때 피드백을 해 준다.
숙제를 제출한 다음 날, 애니 교수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루미,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을 발음해 보세요.”
다섯 살짜리 아들이 내 발음을 듣고 하루종일 떼굴떼굴 구르며 웃었다는 것이다. 엄마가 ‘조지’라고 하면 자다가도 웃었단다.
‘이상하다 어려운 발음도 없고 틀린 데도 없는데 왜 그러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조지 워싱턴”
그녀가 또 빵 터졌다.
“루미, ‘조오ㄹ지’해봐. ‘R’ 발음을 해야지.”
아 그렇구나. ‘L’ 발음과 ‘R’ 발음이 나에게는 많이 힘들었다. ‘work 일하다’와 ‘walk 걷다’를 내가 비슷하게 읽자, 애니는 자기를 따라 하라며 몇 번이고 반복해 주었다.
그날은 하루종일 하얀 곱슬머리의 조지 워싱턴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고 입속에서는 ‘조올지’가 떼굴떼굴 굴러다녔다.
‘The Second World War’ 교수님을 따라 했을 뿐인데 어떤 때는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어떤 때는 ‘NO’를 외치며 아니라고 했다. 도대체 내 발음에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난 똑같이 말했을 뿐이다. 그 발음은 아직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난제로 남아있다.
‘T’ 발음 때문에도 당황했다. ‘리버리’라고 발음해서 ‘리버리’가 뭐지? 들리는 대로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니 ‘중세에 마부나 하인, 관리인들이 착용하던 정장 차림의 제복’이라고 나왔다. 문장을 끝까지 듣고 난 후에야 우리가 잘 아는 단어인 ‘Liberty’ 즉 ‘자유’였다는 걸 알았다.
‘오로페이’(Auto pay)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무슨 말인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오로페이’라는 단어가 따로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스펠링을 보고 나서 알았다. ‘Auto pay’(자동이체)였다.
결국 나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내 발음은 영국식 발음이야. 난 영국 발음이 좋아.’
우리 클래스에 시리아에서 온 ‘잭’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가 수업시간에 안 보여서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오늘 잭 봤어? 왜 잭이 안 보이지?”
그러자 모두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잭? 잭이 누구야? 우리 클래스에 잭이 있다고?”
“있잖아. 키 크고, 시리아에서 왔고.”
내가 잭의 인상착의를 설명하자 그제야 애들은 동시에 대답했다.
“아~~~ 쟥”
맙소사. 이게 뭐라고. 참새가 짹짹거리는 ‘잭’(Jack)이 아니고 입을 더 옆으로 길게 벌려 ‘쟥’(Zach) 이란다. ‘J’와 ‘Z’ 발음의 혼란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말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고 발음에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길 무렵이었다.
턱수염이 더부룩하게 난 이십 대 초반의 건장한 남학생이 주말 동안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에세이를 발표했다. 그런데 상대방을 자꾸 자기 남편 또는 He라고 말했다.
“우리는 지난 주말 팝 콘서트에 갔다. 그런데 남편이 후카를 하자고 해서 우리는 공연장에서 나와 후카숍에 갔다. 그와 나는 후카를 했다.”
‘후카’가 뭐지? ‘후카’(물담배)도 모르겠지만 당연히 부부라면 남편은 남자니까 He, 아내는 여자니까 She라고 해야 하는데 자꾸만 거꾸로 이상하게 불렀다.
‘아, 아직 영어에 익숙하지 않으니 He와 She를 헛갈려하는구나’
라고 이해했다. 그런데 그는 어리둥절해하는 우리를 보고 말했다.
“I’m LGBTQ. (나는 성소수자입니다). I’m gay. (나는 게이입니다)”
LGBTQ는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고 나서 다음의 약자라는 걸 알게 되었다.
Lesbian레즈비언 (여성동성애자), Gay게이 (남성동성애자), Bisexual (양성애자), Transgender트랜스젠더 (성전환자), Queer (성 소수자 전반) 혹은 (Questioning 성 정체성).
맙소사,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불러온 오해였다. 하마터면 큰 실수할 뻔했다.
어느 정도 들린다고 다 들리는 건 아니었고, 내가 안다고 다 아는 것도 아니었구나.
들리는 대로만 듣고, 내가 아는 만큼만 상상한 것이다.
내가 모두 들리고 다 안다고 그들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을까?
사진 출처: US Embassy in Seoul(주한미대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