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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 상지 Jul 18. 2024

60살, 나 홀로 미국 어학연수기 ep. 02

한국에서 왔어요



       

남편은 떠났고 나는 홀로 남았다. 중요한 뭔가를 잊어버린 듯 허전하고 불안했다. 창밖을 내다봤다가 거실을 돌아다녔다 하며 안절부절못했다.

남편은 나를 걱정하며 떠났지만 나는 오히려 남편이 더 걱정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시댁도 좀  걱정되었다. 남편이 허락해준 일이니 알아서 잘 변론해 주겠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노트를 하나 꺼내 ‘미국에서 혼자 살아남기’ 계획을 세웠다.


건강: 여기서 아프면 모든 게 끝난다. 건강을 챙기자.

시간: 아까운 시간에 항상 깨어 열심히 살자.

후회는 없다: 돌아가서 후회하지 않도록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다 해보자.

친구: 많은 친구를 사귀고 좋은 인상을 남기자.

가족: 소중한 가족을 늘 생각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 때마다 바로 표현하자.   

   

2021년 늦가을 11월의 어느 날, 인터넷으로 몇 번이나 찾아봤던 Northampton Community College에 네비게이션을 찍고 갔다.

집에서 15분 정도의 거리였다.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했다. 넓은 캠퍼스 주차장 한쪽에 차를 세웠다. 학교 입구에서 건물 안내도를 살펴보았지만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바쁘게 걸어가는 학생에게 물었다.

 

“실례합니다. ESL 건물을 찾고 있는데 혹시 아시나요?”   

  

건물 안에 들어서자 차가운 바깥 날씨와는 달리 따뜻했고 반 팔 입은 학생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문 앞에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쭈뼛거리다 심호흡을 하고 들어갔다.


ESL 오피스에는 몇 명의 학생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고, 몇 명의 학생들은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몰라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잘생긴 젊은 남자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영어 공부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는 먼저 자기 이름은 Mr. Justin이고 ESL의 어시스턴트라고 소개했다.

나도 한국에서 온 ‘Rumi’라고 했다. 그는 예쁜 이름이라며 스펠링을 확인하고 다시 발음했다. 그는 학교 소개 안내장을 주며 NCC 대학교의 ESL 프로그램에 대해 천천히 그리고 또렷한 발음으로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 집에 돌아와 다시 단어를 찾아가며 읽고 해석했다.   

  

Mr. 저스틴은 레벨테스트를 받아 보겠냐 물었고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문제를 풀기 시작하려는데 가슴이 떨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마우스를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내 눈으로도 보였다.      


‘도대체 학교를 졸업하고 몇십 년 만에 보는 시험이란 말인가?’


처음엔 내가 다 아는 쉬운 문장이 나왔다.

‘오홀~~ 이거 별거 아닌데 괜히 걱정했네’

그런데 갈수록 난이도는 올라갔고 나중에는 단어를 알아도 해석이 불가능한 문제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컴퓨터가 자동으로 꺼졌다.


잠시 후, Mr. 저스틴은 테스트 결과지를 가지고 내 앞에 앉았다.

“루미는 중급반이 나왔네요. 중급반의 낮은 단계를 듣고 싶나요? 높은 단계를 듣고 싶나요? 원하는 것을 선택하시면 됩니다.”     


다음 날 Mr. 저스틴은 어드미션센타에 가서 등록을 하라고 알려주었다. 궁금한 것이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인터내셔널 오피스에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또 언제든지 자기를 찾아와 물어봐도 좋다고 했다.


등록을 하고 학생증을 발급받았다. 학생증 속의 내 얼굴은 상기되어 설렘과 떨림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히잡을 쓰고 지나가던 여학생이 나에게 다가와 묻는다.

“나는 모로코에서 왔는데 당신은 어느 나라에서 왔나요?”


훅 들어오는 질문에 조금 당황했지만 자신있게 말했다.

“나는 한국에서 왔고 이름은 루미예요.”

그녀가 갑자기 깡충깡충 뛰며 좋아한다. 마치 친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며 한국말로 말한다.


“안녕하세요? 나는 하잘이에요.

 I’m from Morocco. I like Korea. Do you know BTS? I’m Army. I’ll save money and go to Korea.”

하잘이 흥분해서 큰 소리로 말하자 지나가던 애들이 내 주위로 다가와 나를 에워싸며 자기 이름을 말하고 악수를 청한다. 내가 마치 연예인이 된 것 같다.

    

머뭇거리던 학교가 갑자기 좋아졌다. 여기는 완전 내 스타일이다. 다음 주부터 시작될 수업시간이 몹시 궁금하다. 빨리 수업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노샘프턴 커뮤니티 컬리지

대도시인 뉴욕에서 1시간 30분, 필라델피아에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아담한 도시

베슬리헴에 있다. 기숙사를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Northampton Community College   https://www.northampton.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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