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미상지 Jul 25. 2024

60살, 나 홀로 미국
어학연수기 ep. 04

첫 수업

   

처음 수업을 시작하는 날이다. 


Vocabulary 수업 시작 20분 전에 강의실에 도착했다. 

아니, 30분 전 이미 주차장에 도착했고 차 안에서 시계를 보며 기다렸다. 


솔직히 말하면 어젯밤에 학교 갈 책가방을 다 싸 놓고도 몇 번이나 더 체크했는지 모른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하지만 다른 수업이 진행 중이어서 강의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같이 수업할 학생들인 듯 한두 명씩 오기 시작하더니 복도가 소란스러워졌다.

아는 친구들끼리 이야기하며 웃고 떠드는 모습도 보였다. 


무슨 말을 하나 귀를 쫑긋 기울여 보지만 무슨 말인지는 전혀 못 알아듣겠다.


드디어 앞 타임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이제 우리 수업시간이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던 나는 조용히 들어가 맨 앞자리 중앙에 앉았다.      

잠시 후, 젊은 여자 교수님이 들어왔다.    

  

“저는 이번 학기 여러분과 Vocabulary 수업을 같이 할 Ms. 에밀리입니다.

We’re all in the same boat now. (우리는 지금 모두 같은 상황에 있어요) 

이번 학기 동안 열심히 해보도록 해요. 

자기소개를 하는데 알고 있는 단어를 최대한 많이 사용해 주세요.”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어떤 학생은 어느 나라에서 온 누구라고만 말했고, 어떤 학생은 왜 영어를 배우려고 하는지, 영어를 배운 다음의 계획까지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 에밀리 교수가 간단한 질문을 했다.      


나는 Class 친구들 이름을 빨리 외우려고 학생들이 자기소개할 때마다 노트에 그 나라와 말한 내용, 인상착의를 적었다.    

  

시리아에서 온 학생은 나이가 많은 아저씨였다. 

시리아에서는 의사였다고 한다. 


“시리아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어서 아주 위험한 상황입니다. 나는 우리나라를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요. 정말 심각합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고, 죽어가고 있어요. 더 이상 살 수 없는 나라가 되어 버렸어요.”

말하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내 차례가 돌아오자 일어서서 뒤를 바라보며 천천히 또렷또렷하게 말했다.     

“BTS가 사는 나라 한국에서 온 루미예요. 10년 동안 영어공부를 했지만 말하는데 자유롭지 못해서 다시 공부해 보려고 합니다. 1년만 공부하고 가족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갈 거예요. K-pop, K-food, K-beauty, K-culture 들어보셨죠? 

기회가 된다면 한국 음식을 맛 보여 줄게요.”  

   

발표를 하자마자 어디선가 한국말이 들렸다.

“루미 언니 사랑해요.”

페루에서 온 ‘라라’다. 

사랑스러운 라라는 이미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간단한 한국말로 나를 놀라게 했었다. 

에밀리 교수가 엄지 척을 하며 자기도 한국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태국에서 온 학생이 말했다.

“나는 요리하는 걸 아주 좋아합니다. 영어를 배워서 태국으로 돌아가 외국 관광객들을 받을 수 있는 근사한 식당을 열고 싶습니다.”     


멕시코에서 온 지나는 이미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일하고 있는데 점점 자동화가 진행되고 있어서 언제 그만두게 될지 모른다며 불안하다고 했다. 


“지금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건강의료보험이 아주 좋습니다. 만약 직장을 잃게 되면 의료보험이 가장 큰 걱정입니다.” 

     

중국에서 온 친구가 말했다.

“우리는 이민을 왔어요. 우리 가족은 모두 ‘Green card’(영주권)를 가지고 있습니다. 빨리 영어를 배워서 일자리를 잡고 싶어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온 친구는 간호보조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간호보조사를 하면서 돈을 모아 더 공부해서 간호사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코스타리카에서 온 퀴산이 말했다. 

"먼저 ESL에서 영어를 공부한 다음 NCC에 등록할 거예요. NCC를 졸업한 후에는 더 좋은 대학에 편입해서 Political science(정치학과)를 공부할 것입니다. 오바마 같은 정치인이 되고 싶어요."


모두 자기만의 꿈과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아프리카,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동유럽, 남유럽, 서아시아, 동남아시아, 동아시아에서 온 16개국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이렇게 다양한 나라 사람들을 한자리에서 만난 건 내 인생 처음이다.  

   

한국인이 나밖에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한국 사람이 옆에 있다면 창피해서 입도 뻥긋 못할 것 같았다.      


모두 말을 잘했다. 교수님 말도 다 알아듣고, 질문도 하고, 웃기도 했다. 나만 빼고 다 영어를 잘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잘하는데 왜 어학코스를 듣는 거지?’ 

     

수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말은 잘하는데 단어를 많이 몰랐고 문법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에밀리 교수가 앞뒤로 빽빽한 4장짜리 Syllabus(강의 계획서)를 나눠주었다. 

이번 학기 동안의 계획이니 꼭 잘 읽어보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구내서점에 들러 교재를 샀다. 서점에서는 중고 교재도 팔았다. 

교수님은 바코드를 이용해 수업도 하고 숙제도 내줄 수 있으니 이왕이면 새 교재를 사라고 했다. 

어린 학생들은 중고 교재를 많이 샀다.  

    

집에 와서 영어사전을 찾으며 자세히 읽어보았다.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렸다. 


거기에는 점수를 평가하는 방법과 몇 개의 과제가 언제쯤 나갈 것인지, 시험 날짜는 언제인지 등이 아주 구체적으로 나와 있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변경될 수도 있다는 말이 밑에 작게 적혀 있었다.  

    

단어 카드를 만들었다. 오늘 내가 새로 알게 된 단어를 카드 앞면에 크게 적고 뒷면에는 영어로 단어의 뜻을 적었다. 항상 가지고 다니며 외울 생각이다. 


그 후로 단어 카드는 학교 갈 때, 산책할 때, 카페테리아에서 일할 때, 운동할 때 등 내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언제 어디서나 나와한 몸이었다.      






                    

* 보통 대학의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이나, ELI(English Language Institute)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토플이나 토익 등 공인인증 점수를 요구하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NCC는 전혀 필요 없고 여기에 와서 레벨테스트를 하고 반 배정만 받으면 바로 수업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60살, 나 홀로 미국 어학연수기 ep. 0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