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널아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자동차를 타기 위해 오른쪽 앞문을 열었다. 운전석이 있다. 아이코, 다시 왼쪽 앞문으로 돌아간다.
“왜 오늘은 당신이 운전하려고?”
남편이 뒤에서 웃으며 말한다.
태국은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다. 한마디로 모든 게 반대다. 남편이 출발하면서 좌회전 신호를 넣기 위해 왼손으로 조작하자 와이퍼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좌회전과 우회전은 오른손으로 신호를 넣어야 한다. 왼손은 오로지 와이퍼만 있다.
“아빠, 왜 와이퍼를 켜? 비 안 와.”
“아이코”
남편이 멋쩍게 웃으며 내 눈치를 살핀다.
딸과 사위가 8박 9일 일정으로 방콕에 왔다. 연말을 후아힌에서 보내고 싶다며 이미 한국에서 호텔까지 예약하고 왔단다. 후아힌은 옛날부터 왕족들의 휴양지로 조용한 해안 도시다. 우리는 지금 후아힌으로 간다. 방콕에서 차로 세 시간 남쪽에 있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차 안의 내비게이션에서 알 수 없는 말이 나온다.
‘로앙드 라두나~~’ 내가 옆에서 통역을 한다.
“천천히 운전하세요.”
“엄마 진짜야? 엄마가 태국말 알아?”
딸이 놀란 눈으로 묻는다.
알긴 뭘 알겠는가. 그냥 내 생각을 말하는 거지.
남편이 말한다.
“운전 참 잘하시네요.”
잠시 후, 남편이 앞차를 추월하자 네비의 그녀가 또 말한다.
‘깐따 노부린’
“앞 차와의 간격을 유지하세요.” 내 말에
“차의 흐름을 잘 따라가시네요.” 남편이 바로 받아친다.
“아이고 둘이 서로 왜 그래? 아빠 그거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끄고 갈 수 없어?”
그럴까? 생각해서 휴게소에 들른 남편이 이것저것 조작을 해보지만 내비게이션 소리는 쉽게 꺼지지 않는다. 가는 동안 우리는 알 수 없는 지시어를 계속 들어야 했다.
길가에 포멜로를 가득 쌓아 놓고 파는 가게가 보인다. 포멜로는 자몽과 비슷한 과일이다. 잠깐 차를 멈추고 사 먹기로 한다. 껍질이 두꺼워 까기 어렵다며 아주머니가 까 주신다. 소금, 설탕, 고춧가루가 들어있는 작은 비닐봉지 소스도 준다. 소스를 찍어 먹어보니 포멜로 맛이 조금 더 강하게 느껴지지만 그냥 먹는 게 낫다.
포멜로
후아힌 시내로 들어섰다. 여기저기 시내가 온통 중국식 빨간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백화점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음력 설날맞이 용 공연을 보고 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나니 오랜 시간 혼자 운전한 남편은 쉬겠다고 한다. 딸과 사위는 물놀이장으로 간단다. 물을 좋아하는 딸이 호텔 예약할 때 일부러 물놀이 시설이 좋은 곳으로 정했다고 한다.
이 호텔에 묵으면 물놀이장 이용이 무료이고 따로 들어가려면 비싼 입장료를 내야 한단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따라나섰다. 하지만 물이 너무 차가워 못 들어가겠다. 물놀이장은 날씨가 서늘해 사람들이 많지 않다. 아이들은 줄도 서지 않고 타고 싶은 것을 실컷 탔다. 인공 파도를 타는 서핑도 하고, 높은 곳에 올라가 튜브 슬라이드를 타고 내려왔다.
추워서 같이 물속에 들어가지 못한 나는 딸아이의 신발과 수건을 들고 뒤를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딸과 사위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다 갑자기 다섯 살 딸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처음 유치원에 보냈을 때, 유치원 문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여기 있어야 해. 정아 꼭 보고 있어야 해.”
‘그래 엄마는 지금도 너의 신발을 들고 네가 슬라이드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서 있단다. 언제나 너의 뒤에서 바라보고 있을게. 걱정하지 말고 즐겨라.’
물놀이를 하고 저녁을 먹으러 후아힌 야시장에 갔다. 야시장은 음력 설날을 맞아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딸과 사위는 인터넷으로 검색해온 음식들을 맛보겠단다. 직접 갈아 만든 오렌지 주스와 돼지고기를 꼬치에 구운 무사태, 족발 덮밥인 카오카무, 돼지고기 쌀국수인 꾸어이짭 남사이를 샀다. 남편은 얇은 면 쌀국수 센렉남과 수박주스 땡모반을, 나는 볶음 쌀국수 팟타이와 코코넛을 사 먹었다.
길거리를 달리는 자동차 번호판에 꽃을 단 차들이 많이 보인다.
“오늘 꽃을 단 차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요? 신혼여행을 모두 후아힌으로 왔나?”
“새 차를 사서 기념으로 달아놓은 거 아닐까?” 남편이 말한다.
“아니에요. 조금 낡은 차도 달고 있었어요.” 사위가 말한다.
“그건 중고차를 새로 산 거겠지. 엄마는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 ”
나는 주차 관리인에게 물어보았다. 그분이 웃으며 말한다.
“아, 설날이잖아요, 자동차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주는 선물이에요.”
아니? 자동차에게 새해 꽃 선물을 한다고? 놀라고 있는 나에게 사위가 말한다.
“어머니, 여기 오토바이에도 꽃이 걸렸어요”
나랑 늘 함께하는 자동차와 오토바이에게 새해 선물을 하다니. 얼마나 멋진 생각인가?
저녁을 먹고 돌아오니 침대 위에 빨간 봉지와 빨간 봉투가 놓여있다. 봉지에는 귤 두 개가 들어 있고, 봉투에는 2밧짜리 동전이 들어있다. 홍빠오라는 새해 복돈을 호텔 측에서 놓고 간 것이다. 빨간 봉투는 행운과 복을 상징하며 돈은 새해의 번영을 기원한다는 의미이다. 돈은 짝수를 넣어야 한단다. 생각지도 않은 복돈을 받은 우리는 올 한 해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다음날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타이만 바닷가 해변으로 갔다. 타이만의 건너편은 유흥과 환락의 도시 파타야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카이트 보드(물 위에 대형 연을 띄운 뒤에 그 연줄을 잡고 널빤지를 타는 놀이)를 즐기는 서양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사위가 말을 타자고 한다. 후아힌 해변에서 말을 타보고 싶었단다. 맨발로 해변을 걷고, 영화처럼 바닷바람을 맞으며 말을 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방콕 시내의 교통체증에 길이 막혔다. 신호를 기다리는데 꽃을 파는 소녀가 보인다. 남편이 꽃다발을 샀다. 얼마냐고 물으니 50밧이란다. 100밧을 주었다. 복돈을 받았으니 우리도 복을 나눠주어야 한다. 물론 우리 차에게도 새해 꽃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카디널, 이 꽃을 너에게 줄게. 새해 복 많이 받아라."
토요타 야리스 <카디널>
* ‘카디널’은 내가 미국에 혼자 살 때 나에게 자주 찾아와 노래를 불러주던 빨강 새 이름이다. 방콕에서 일 년 동안 랜트한 자동차는 도요타의 작은 차 빨간색 야리스다. 나는 차 이름을 ‘카디널’이라고 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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