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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상지 Aug 26. 2024

한국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에요

애타게 기다리던 카디널이 왔다. 카디널은 빨간색 옷을 입은 추기경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새 홍관조이다. 카디널이 조심스럽게 오더니 먹이를 먹고, 물을 마시고, 수줍게 노래한다. 혹시 날아가 버릴까 봐 그 모습을 숨어서 몰래 지켜본다. 

     

내 첫 번째 집은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파는 커다란 Farmers Market 뒤편 3층이었다. 언제든지 걸어서 마트에 다닐 수 있어 정말 편리하고 좋았다. 나무로 지어진 낡은 건물에 여덟 가구가 살았다. 처음 이사 왔을 때 한국에서 가져온 전통 문양 ‘책갈피’를 이웃들에게  하나씩 선물했다.      

줄리는 20대 초반으로 가장 어리고 예뻤다. 멕시코에서 왔는데 벌써 아이가 세 명이나 있었다. 

벨벳은 혼자 살며 항상 마리화나를 입에 물고 다녔고 푸에르토리코에서 왔다. 

미셀은 옆 동네 하이스쿨 급식실에서 일했고 과테말라에서 왔다. 

프랭크는 작은 회사에서 경비 일을 하고 있었다. 

파티마는 내 집 바로 밑에 층에 살며 파키스탄에서 왔다. 리하이대학에서 청소 일을 하며 아들과 둘이 살았다. 그녀의 아들은 그녀 최고의 자부심이었고 틈만 나면 거만하게 아들 자랑을 했다.    

“우리 아들은 리하이대학 공대에 다녀요. 내가 직원이기 때문에 전액 무료로 다니고 있죠.”

리하이대학은 미국 동부지역 사립명문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이민 온 가난한 사람들은 넉넉하진 않아도 서로 어울려 잘 지냈다. 

    

새를 좋아해 베란다에 나무로 만든 새집과 물통을 ‘SEARS’에서 사다 걸어두었다. (SEARS는 다국적 유통업체로 중산층을 위한 백화점이다) 다행히 집 베란다 앞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카디널이 보고 싶어 좋아하는 먹이(껍질을 벗기고 잘게 쪼갠 땅콩과 옥수수 등)를 사서 넣어두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하루, 이틀, 사흘 기다렸다. 새집에 먹이를 넣어 두자마자 제일 먼저 스쿼럴이 왔고, 하루가 지나자 참새들이 왔다. 1주일 후쯤 조심스럽게 카디널이 왔다. 그런데 불청객인 스쿼럴과 먹이 지키기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곳 스쿼럴은 회색이었고 다람쥐보다 더 크고 너무 많아 반갑지 않았다. 물과 먹이를 꾸준히 챙겨주자 카디널은 자주 내 집에 와서 먹이를 먹고 노래를 불렀다.


야외 베란다가 있으니 상추도 조금 길러보고 싶었다. One 갤런 짜리 플라스틱 우유병의 우유를 샀다. 마시고 난 뒤 빈 우유병의 윗부분을 칼로 잘라내고 밑 부분은 송곳으로 구멍을 뚫었다. SEARS에 가서 작은 봉지의 흙과 상추 모종을 사다 심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파트 옆에 쓰레기와 풀들이 무성한 자투리땅이 눈에 들어왔다. 

‘저곳에 채소밭을 만들어 볼까?’     

풀을 뽑고, 쓰레기를 치웠다. 힘든지도 모르고 신나게 밭을 일구고, 자동차로 1시간 30분을 달려가 H마트 (한국인이 경영하는 아시아 음식 식재료를 전문으로 파는 체인점. 한아름 마트라고도 부른다)에서 고추, 가지, 오이, 들깻잎, 방울토마토 모종을 사다 심었다. 

3층에서 1층까지 날마다 물을 떠서 나르자 지하에 살던 줄리가 말했다.      

“루미, 여기 뒷마당에 수도꼭지가 있어. 그리고 너는 내 호스를 써도 돼.”

가끔은 줄리가 직접 호스로 물을 주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줄리의 어린 아들이 그 밭에 들어가 나비를 잡기도 했다. 고추와 가지가 열리고, 깻잎이 무성해졌다. 방울토마토는 노란 꽃을 피우고 초록 열매가 맺히더니 빨갛게 익어갔다. 벨벳이 물었다.

“루미, 토마토가 빨갛게 익었어. 내가 따 먹어도 돼?”

“물론이지. 그것은 우리 모두의 것이야. 얼마든지 따 먹어도 돼.”

토마토가 익자 우리는 토마토를 따서 뒷마당 잔디밭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주로 자기 나라의 음식과 날마다 일하는 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가지가 열리자 가지를 따서 또 모였다. 내가 가지 부침개를 만들어 가자 미셀은 과테말라 식이라며 가지 구이를 해와서 나눠 먹었다. 

     

평화롭기만 하던 어느 날 밤, 줄리가 갑자기 악을 쓰고 욕을 하며 남편과 싸우기 시작했다. 남편이 바람이 났다는 것 같았다. 줄리와 남편의 싸움은 매일 밤 계속되었고, 밤마다 줄리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심지어 비 오는 날에도 쥴리는 비를 맞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악 쓰고 욕 하며 울었다.     

결국 우리는 모두 뿔뿔이 떠날 수밖에 없었다. 프랭크가 아파트 사무실에 몇 번이나 항의했지만 대책이 없다는 말만 들었다며 제일 먼저 떠났다. 다음은 미셀과 파티마가 이렇게는 도저히 살 수 없다며 떠났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나도 결국 떠나기로 했다. 나에게는 떠나야 할 또 다른 이유까지 생기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아파트 사무실에서 채소밭을 치우라는 연락이 왔다. 아직 열매를 맺고 있는 가지, 고추, 오이, 토마토, 들깻잎을 모두 뽑아야 했다. 밭을 일구고 모종을 심을 때 설레던 마음은 뒤로하고 식물들과 슬픈 이별을 했다. 

‘얘들아, 그동안 고마웠다. 외로운 내가 너희들 덕분에 행복했는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주인을 잘 못 만나 너무 일찍 헤어지게 되었구나.’ 

    

또 다른 이유는 밑에 층에 살던 파티마가 이사 가고 난 뒤, 새로 이사 온 커플 때문이었다. 그 커플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마리화나를 피워댔다. 우리가 살던 집은 나무로 지어진 낡고 오래된 곳이어서 냄새는 고스란히 위층인 내 집으로 올라왔다. 마리화나의 독특한 냄새는 스컹크 냄새 같기도 하고 화학약품이 들어간 참기름 냄새 같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중간에 이사를 했다. 몇 번을 오가며 자동차로 짐을 조금씩 옮겼다. 많지 않은 짐이었지만 혼자 이사하기엔 힘들었다. 마지막 남은 매트리스와 접이식 책상은 너무 무겁고 커서 혼자 내 차로 옮길 수 없었다. 한인교회에서 만난 최 사장님께 도움을 청했다. 

이사를 도와주러 오신 최사장님이 우리 집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 이런 곳에 집을 얻을 생각을 했어요? 한국 사람은 절대 이런 곳에 살지 않아요. 한 블록만 내려가면 마약 동네라고요.”     

단지 마리화나 냄새 때문에 이사하는 건데 친구들과 잘 지냈던 동네가 이렇게나 위험했다니 당황스러웠다. 

“저기 보세요. 전봇줄에 운동화 두 짝을 끈으로 묶어 높이 걸어 놓은 것 보이죠? 저것이 바로 마약을 판매하는 곳이라는 표시예요.”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서로 음식을 나누고 정을 나눈 좋은 친구들이었는데 마지막이 아쉬웠다. 아무것도 모르고 좋았을 때 좀 더 많이 나누고 잘해줄 걸 그랬나?     

만약 처음 이사할 때 마약을 하는 동네라는 걸 알았다면 이곳으로 이사 올 수 있었을까?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이곳에 살았기 때문에 한국에서라면 만나지 못했을 줄리와 벨벳, 미셀과 프랭크, 파티마 같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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