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집이 좋아요. 계속 살 수 있도록 대책만 세워주세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사무실에 들러 항의하는 중이다. 이 항의는 벌써 다섯 번째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다. 새벽 두 시가 넘었는데 또 마리화나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자다가 깬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벌떡 일어나 집안의 모든 창문을 큰소리로 열었다. 그리고 두 발로 온 집안을 쿵쾅거리며 돌아다녔다. 화가 났다는 걸 아래층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바로 그때 둔탁한 물건으로 천장을 ‘쿵쿵쿵’ 치는 소리가 났다. 빠르게 걸음을 멈춘 나는 온몸이 싸늘해지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밤새 잠들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었다.
내 집 바로 아래층에 살던 파티마가 이사 가고 새로운 커플이 이사를 왔다. 그들은 일도 하지 않고 낮이고 밤이고 하루종일 마리화나를 피워댔다. 냄새는 낡은 마룻바닥을 통해 고스란히 내 집으로 올라왔다.
아파트 사무실에 몇 번을 찾아가 항의했다. 사무실 직원은 물었다.
“아래층 사람들이 마리화나 피우는 걸 직접 봤나요?”
“직접 보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냄새 때문에 살 수가 없어요. 제발 조치를 세워주세요.”
다시 그녀가 말했다.
“그럼 당신이 직접 경찰에 신고하세요.”
이런 무책임한 말을 하다니,
‘아니 내가 어떻게 경찰에 신고할 수 있겠는가? 총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
그런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이면 여덟 가구의 현관문에 A4 사이즈 경고문이 붙었다. 그게 아파트 사무실이 취한 조치였다.
‘실내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펜실베이니아주는 마리화나가 불법이었지만 이미 있으나 마나 한 법이었던 것 같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온 벨벳은 아래층 쥴리네 옆집에 살았다. 그녀의 손에도 마리화나는 늘 붙어 다녔다.
다음 날, 또 아파트 사무실에 갔다.
“이대로는 도저히 살 수 없어요. 이사 가고 싶어요. 내 잘못이 아니니 디파짓(보증금)은 내주는 거죠?”
하지만 그녀도 만만치 않았다. 아파트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못 견디고 떠나는 것이니 못 준다는 것이다. 며칠을 계속 찾아갔고 거의 싸우다시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보증금을 주겠다고 했다.
얼마나 다행인가!
서둘러 여기저기 새로운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마침 친구가 자기 아파트에 서브리스(Sub lease. 물건이나 시설을 임대한 사람이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할 경우, 남은 계약 기간 동안 다른 사람에게 재임대하는 일)가 하나 나왔다며 소개해주었다. 서둘러 이삿짐을 싸고 날랐다. 이삿짐을 모두 옮기고, 살았던 집을 청소했다.
한국 교회에서 만난 분들은 말씀하셨다.
“루미, 이사 갈 때 집 상태에 조금만 흠이 있어도 아주 비싼 벌금을 물려요. 만약 시간이 없으면 청소전문업체를 써서라도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편이 벌금을 무는 것보다 더 나아요.”
그런 일로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바로 월마트에 가서 청소 용품과 약품을 한 보따리 사 왔다. 못을 박았던 자리는 구멍을 메꾸는 용도의 튜브를 짜서 홈을 메웠다.
살면서 한 번도 닦지 않았던 조명등 위까지 싹싹 닦고, 유리창, 화장실, 거울, 부엌 모두 깨끗하게 청소했다. 내가 살았을 때보다 더 반짝반짝 윤이 났다.
아파트 사무실에 키를 반납하러 갔다.
“키 가지고 왔어요. 짐은 다 옮겼고 청소도 끝냈어요. 이제 보증금은 돌려주는 거죠?”
그녀가 말했다.
“보증금은 돌려줄게요. 하지만 당신은 계약 기간보다 두 달 먼저 나가니 두 달분의 렌트비는 내고 나가세요.”
“그게 무슨 말이죠? 전에 그런 말은 없었잖아요. 보증금을 돌려주겠다고 말할 때 그 말도 같이 했어야죠. 그때는 아무 말 없다가 왜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거죠?”
보증금은 처음 살기 시작할 때 한 달분을 미리 내는 돈이다. 마지막 나갈 때 집에 하자가 없으면 당연히 돌려줘야 하는 돈이다.
한 달 분의 보증금은 돌려줄 테니 대신 두 달 분의 렌트비를 내라? 결국은 내가 졌다. 온 정성을 다해 청소했는데 허무하고 황당했다. 그녀는 이런 말을 해놓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나를 빤히 쳐다보며 빨리 키를 달라고 재촉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대책도 없었다. 살지도 않은 두 달 분의 렌트비를 내야만 했다.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
유학생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려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세 시간씩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일했다. 4개월 동안 힘들게 일한 돈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화가 덜 풀린 상태에서 일요일이 되었고 한국 교회에 갔다. 억울한 상황을 부동산(Real estate agent) 일을 하시는 분에게 하소연했다.
“미국에서는 아파트 측의 잘못이 있다 해도 돈을 내주는 일은 거의 없어요. 아파트 측의 큰 잘못이 있을 경우, 같은 회사 내에서 비슷한 조건의 다른 아파트로 옮겨주기는 해요. 그게 최선이에요.”
그제야 생각났다. 그녀는 나에게 아파트를 다른 곳으로 옮겨주겠다는 말을 하긴 한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보증금을 받고 빨리 다른 곳으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에 필요 없다고 했다.
‘아, 그 말이 그런 의미였구나.’
이럴 줄 알았다면 옮겨준다고 한 아파트로 이사할 걸,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 이렇게 된 게 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인 것만 같았다. 나 자신이 미웠다.
두 달 동안 우울했다.
* 사진에 보이는 왼쪽 2층 창문이 제가 살았던 집입니다
사진: www.ren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