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미상지 Aug 08. 2024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학교 가는 길인데 어떤 차가 뒤를 따라오고 있다. 

하이빔을 켰다 껐다 하며 어쩔 줄 모르는 것 같다. 운전자가 손을 밖으로 내밀어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아니 저 사람 왜 저러지? 내가 교통법규를 위반한 것도 아니고 자기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이상하네’

무시하고 그냥 내 길을 갔다. 한참을 달리다 차가 사거리 신호등에 멈췄다. 

따라오던 뒤차도 멈추더니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급하게 내 차로 다가온다. 잔뜩 긴장하며 셀폰을 손에 꼭 쥐고 앉아 룸미러로 그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911을 누를 참이었다. 여기는 번화가이고 차들도 많으니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총기 소지가 가능한 위험한 나라 아닌가? 긴장을 멈출 수 없었다. 드디어 다가온 남자가 내 차 트렁크를 ‘꽝’ 닫아준다. 그리고 한 손을 들고 웃으며 자기 차로 돌아간다.

‘아. 내 차 트렁크가 열려 있었구나.’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운전석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반짝반짝하며 큰 소리로 “땡큐”라고 말해 주었다.      

해 질 무렵이었다. 튀르키예 친구인 막불레에게 초대를 받아 그녀 집을 찾아가고 있었다. 내비게이션에 막불레가 보내준 주소를 입력하고 출발했지만 아무리 동네를 돌아다녀도 찾을 수가 없었다.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그냥 돌아갈까? 지칠 때쯤이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경찰차가 경광등을 켜고 반짝거리며 내 뒤를 바짝 따라왔다. 그것은 내가 걸렸으니 즉각 멈추라는 신호다. 나는 갓길에 바로 차를 세웠다. 경찰에게 걸린 건 처음이어서 엄청 긴장되었다. 

   

‘경찰이 다가와 창문을 열라고 할 때까지 절대 움직이지 마라. 운전대에 손을 올리고 가만히 앉아 있어라.’   

운전면허를 땄을 때 많이 듣던 경고였다. 그 말이 나에게 올 줄은 몰랐다.

경찰 입장에서는 범죄자들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거나 마약에 노출되어 있을 수도 있으니 이상한 행동을 하면 총을 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경찰차를 내 차 뒤에 바짝 붙여 세운 다음 나에게 다가왔다. 경찰이 와서 운전석 창문을 두드렸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잔뜩 긴장하며 창문을 열었다. 운전면허증을 요구했다. 면허증을 주니 가지고 다시 경찰차로 돌아갔다. 아마 내 차를 조회해 보고 있을 것이다.

그가 다시 와서 물었다.  

“당신은 지금 무슨 잘못을 한 지 아십니까?”

아무 잘못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손바닥을 하늘로 올리고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은 밤에 헤드라이트를 켜지 않고 운전했어요.”  

앗, 그때야 생각났다. 오토로 설정해 놓았어야 했는데 깜박 잊었던 것이다. 어쩔 줄 몰라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Oh, I’m so sorry. I forgot. My mistake. I’ll never forget to turn it on next time,”

(아, 정말 미안합니다. 나는 깜빡 잊었어요. 내 실수예요. 다음부터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경찰이 다음 말을 하기 전, 즉 딱지를 끊기 전에 가지고 있던 막불레 집 주소를 건네며  서둘러 내가 먼저 말했다.

“이 마을은 처음이에요. 친구 집에 가려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주소가 안 보여요. 도와주세요.”  

“다음부터는 꼭 헤드라이트를 켜고 다니세요, 위험합니다. 이 주소는 여기가 아닙니다. 따라오세요, 안내해 드리지요.”   

알고 보니 내가 간 곳은 같은 이름의 다른 동네였다. 친구는 새로 입주를 시작한 동네였고 이곳은 오래된 옛날 동네였는데 이름이 같았다. 

나는 ZIP code(우편번호)를 확인했어야 했다. 그러면 그런 실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뒤로 모르는 곳을 찾아갈 때면 항상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치고 우편번호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날 밤,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편안하게 친구 집을 찾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그때 나처럼 길을 헤맨 친구는 또 있었다. 페루에서 온 카림은 나보다 더 늦게 왔으며 그녀도 나처럼 헤매다 왔단다. 막불레는 새로운 주택단지라 종종 그런 일이 발생한다고 했다.     

“루미, 순찰 중이던 경찰은 동네를 배회하던 당신을 수상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헤드라이트도 안 켰잖아요. 그러니까 더 범죄에 연루되었거나, 범죄를 저지르려 한다고 생각할 수 있죠. 아니면 수상한 차를 보고 동네 주민이 먼저 신고했을 수도 있고요.”

그날 밤 나는 아주 운이 좋았다.  


얼마 뒤, 이번에는 길거리에서 자동차가 고장 났다. 아무리 엑셀러레이터를 밟아도 차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자동차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비상라이트를 켜고, 차를 갓길에 세우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갑자기 경찰차가 나타났다. 마치 숨어있다가 나를 보고 나타난 것처럼 빨리 왔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도와 드릴까요?”

“네, 도와주세요. 자동차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천천히 교회까지 가고 싶어요. 고맙습니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도 필요한 순간에는 바람처럼 나타나 도와주는 경찰이 영화 속 슈퍼맨 같았다.       

한국에서 35년을 운전했지만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경찰 에스코트였다.

경찰은 목적지까지 앞장서서 안전하게 안내해 주었고 나는 조심스럽게 뒤를 따라갔다. 드디어 우리는 교회 앞마당에 도착했다. 막 미사를 시작하려던 신부님과 많은 분들이 경찰차와 함께 나타난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모두의 시선과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차에서 내렸다.

그러나 미사가 끝난 후 트리플에이(AAA) Towing car(견인차) 서비스를 불러야 했다.

      

두 번의 경험 후로 경찰차를 좋아하게 되었다.

다섯 살 어린애처럼 어디서든 경찰차만 보이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가고 반가운 미소가 지어졌다.                          






* AAA 트리풀에이 서비스 (American Automobile Association): 약간의 회비를 내면 자동차 여행할 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지도를 무료로 얻을 수 있고, 휘발유가 갑자기 떨어졌을 때 전화를 하면 무료 급유도 받을 수 있다. 차량이 고장 났을 때 견인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자연재해 등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도 도움 받을 수 있는 자동차 보험과 같은 서비스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카페 포시사

이전 18화 팀블러 교수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