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설날은 섣달그믐날 밤부터 시작되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아버지는 온 집안의 불을 환하게 다 켜 놓았다. 그리고 우리를 한자리에 모아 앉혀놓고 단단히 이르셨다.
“오늘 밤에는 절대 잠을 자면 안 돼. 야광귀가 와서 신발을 훔쳐 갈 거야. 신발을 잃어버린 사람은 일 년 내내 운이 안 좋고 일찍 죽을 수도 있어. 또 일찍 잠이 들면 눈썹이 하얗게 세어버린단다. 그러니까 절대로 자면 안 돼 알았지?”
옆에서 우리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할머니가 얼른 일어나 체를 문 앞에 걸었다. 할머니는 체를 걸며 말씀하셨다.
“야광귀는 구멍 세는 걸 좋아한단다. 야광귀가 우리 집에 신발 훔치려 왔다가 체 구멍을 세는 동안 날이 밝아오지. 그러면 신발을 못 훔치고 그냥 간단다.”
할머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 할머니와 아버지의 신발을 선반 위에 올려놓으셨다. 우리도 재빨리 일어나 자기 신발을 숨겨야 했다. 여섯 명의 아이가 자기 신발을 들고 우당탕 돌아다니며 숨기느라 바빴다. 작은 방 책상 밑에, 다락방에 심지어 빈 항아리 속에도 숨겼다.
설날 음식 준비로 바쁘게 부엌에서 일하다 이 모습을 본 어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못마땅해하셨다. 신발을 모두 숨기고 다시 할머니와 아버지 옆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밤이 깊어지자 아버지는 자꾸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밖을 내다보셨다. 잠시 후 골목길에서는 아버지가 기다리던 소리가 들렸다.
“복 사려. 복조리 사려.”
복조리 장사는 복조리를 등에 한 짐 가득 지고 골목을 돌아다녔다. 아버지는 복조리 장사를 불러 복조리를 여러 개 사셨다. 두 개는 바로 마루 벽에 걸었고, 나머지는 다음 날 이웃집에 나눠주셨다. 대나무로 만든 복조리였는데 어머니는 그 복조리 중 하나를 다음 해 새로 복조리를 살 때까지 일 년 동안 쓰셨다.
눈썹이 하얗게 세어버릴까 봐 절대 안 자려고 했는데 서서히 잠이 오기 시작했다. 점점 쏟아지는 잠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도란도란 흥겨운 말들은 사라지고 모두 잠을 쫓느라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치뜨며 꾸벅꾸벅 졸았다. 남동생은 성냥개비를 쪼개 눈꺼풀 위에 꽂아 눈이 감기지 않도록 요령을 부렸지만 허사였다. 왜 아이들을 못 자게 귀찮게 하냐는 어머니의 말소리를 어렴풋이 들으며 우리는 모두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순서대로 제일 먼저 자기 신발을 찾고, 다음엔 거울을 보러 달려갔다. 신발은 무사했으나 잠이 덜 깬 상태에서 하얗게 세어버린 눈썹을 보며 겁이 나고 무서워 하나, 둘 울기 시작했다.
“어떡해? 눈썹이 하얘졌어.”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커지자 이른 새벽부터 부엌에서 차례상 음식을 준비하시던 엄마의 큰소리가 났다.
“당신 정신 차려요. 왜 어린 애들에게 장난쳐서 새해 첫날부터 울려요? 너희들 빨리 세수하고 옷 갈아입어. 차례 지내고 세배해야지”
우리가 잠든 사이 아버지가 우리 눈썹에 하얀 밀가루를 발라 놓은 것이다.
아버지는 우리랑 잘 놀아주고 장난도 많이 하신 친구 같은 분이었다. 아버지와 같이 윷놀이를 하고, 고구마도 구워 먹었다. 아버지는 우리 육 남매를 몹시 자랑스러워하셨다. 그 시절 다른 집에도 자식들이 많았으나 홀로 자란 아버지에게는 자식 많은 게 큰 자랑이었다. 그래서 이런 일도 있었다.
어머니는 겨울이 시작되면 여름에 신었던 신발을 모두 빨아 보자기에 싸서 선반 위에 올려놓으셨다. 그런데 퇴근해 집에 오신 아버지는 선반 위의 신발들을 다시 내려 마루 밑 토방에 일렬로 쭉 진열해 놓으셨다. 토방에는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와 육 남매의 계절 지난 여름 신발과 겨울 신발들이 차례대로 줄 맞춰 진열되었다. 아버지는 그걸 바라보며 무척 흐뭇해하셨고 아버지의 웃음 뒤로 어머니의 잔소리가 들렸다.
“철 지난 신발을 다 빨아 두었는데 왜 꺼내는 거예요? 먼지 다 들어가게.”
어머니와 아버지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중매로 아버지를 만난 어머니가 아버지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외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깨끗하게 정리하고 단출하게 살고 싶었단다. 하지만 외아들이었던 아버지는 가족 많은 집, 특히 아이들이 많아 북적북적하는 집이 몹시 부러웠다고 했다.
아버지의 아버지(내 할아버지)는 6.25 때 돌아가셨다. 할머니에게는 자식들이 몇 명 더 있었는데 모두 병으로 죽고 아버지와 고모 두 분만 살아남았단다. 고모와 아버지는 나이 차가 많아 누나였던 고모는 일찍 결혼해 집을 떠나셨다. 할머니에게는 오로지 아버지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아버지를 불면 날아갈세라 만지면 터질세라 애지중지 키우셨다.
그 덕에 아버지는 군대도 여러 번 다녀왔다. 영장이 나와서 아버지가 군에 입대하게 되자 할머니는 벼를 몇 가마 가져다주고 아버지를 군대 명단에서 빼내셨다. 지금은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게 가능했나 보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는데 다시 영장이 나왔고 결국 아버지는 군대에 가게 되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누구인가! 또 쌀을 몇 가마 가져다주고 아버지를 군대에서 데려오는 데 성공하셨다. 이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며 군대를 캠프처럼 왔다 갔다 하셨고, 결국 군 의무실에 누워있다 의병 제대를 하셨단다. 할머니는 하나 남은 아들의 입대가 곧 아들의 죽음이라고 생각하셨다니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할머니의 찐 아들 사랑이었다.
내가 결혼하기 전,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가 퇴근해 집에 오면 아랫목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는 벌떡 일어나 아버지를 맞이하셨다. 당신이 방금까지 앉아있던 따끈한 아랫목 이부자리를 들치며 아직 양복도 갈아입지 않은 아버지를 이불로 감싸안고 말씀하셨다.
“아이고 내 새끼 내 강아지 얼마나 고생하고 왔능가. 몸이 땡댕 얼어부렀네. 얼릉 여기 누우소.”
할머니와 아버지는 환상적인 궁합이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최악의 궁합이었다.
나는 지금도 매년 섣달그믐날이면 신발을 깨끗이 정리하여 신발장 속에 넣어두는 습관이 있다. 신발을 정리하며 아버지에게 물어본다.
“아버지, 섣달그믐날이 돌아왔네요. 우리 신발 야광귀가 못 훔쳐 가겠죠?”
*토방: 옛날 한옥에서 마루로 올라가기 전에 바닥을 흙으로 높게 쌓아 올린 부분. 마당보다는 높고 대청마루보다는 낮은 요즈음의 신발장 역할을 했다.
*의병 제대: 군 복무 중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해 더는 복무가 어렵다고 판단될 때, 전역 예정일보다 일찍 전역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