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미친 짓. 내가 왜 그랬지?
첫 회사로 들어가 2년 반을 다닌 금융권 회사에서 비금융권 회사 영업직으로 이직했다. 2년 반의 경력과 직급을 버린, '중고 신입'이었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뭐든 열심히 해보겠다'는 표정으로 이제 막 입사한 내게, 선배들이 물었다.
너 여기 왜 왔어?
그때는 정말 이 말이 듣기 싫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나에 대해, 나의 전 직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런 곳에서 여기를 왜 왔냐고 묻는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잘 모르면서 쉽게 내뱉는 말들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2년 반동안 했던 고민들과 이렇게 결정 내리기까지의 모든 고뇌들을 말해야 하는 건가?'
아니.. 그럴 필요는 없겠다.
"아, 영업을 해보고 싶어서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그런데 지금, 1년 반 정도 지난 이제는 처음 선배들의 그 반응이 이해가 된다. 180도 바뀐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며 때로는 재미도 있고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던 와중에, 언젠가부터 나는 인생 선배들의 그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회사는 다 거기서 거기라고, 결국 돈 벌기 위해 다니는 것이니 돈 많이 주는 데가 최고라던 선배들의 이해할 수 없던 말을, 이제는 어느 정도 수긍한다. 나도 이제 어른이 된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고작 2년 어렸던 그때의 내가 무척이나 어린양 같이 느껴진다. 작고 순하고 순진무구한, 여리디 여린 어린양.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그 어린양을 보며 가끔은 말한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생각해 보면 나의 인생 핵심 가치는 “경험”이다. 매일 똑같은 삶을 살며 단조로운 생활을 할 때는 몰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의 사회 경험을 거친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내 삶의 핵심가치는 그것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삶에서 뭔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내린 선택들은 모두 ‘경험’에 가치를 두는 것이었다.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나로 이끌어 준다는 믿음에서 비롯하였다.
사소하지만 어딘 가로 향할 때 새로운 길로 걸어보는 것도, 새로운 식당과 새로운 카페, 새로운 메뉴를 시도해 보는 것도 그렇다. 뭐가 됐든 새로운 '경험'을 가치 있게 여긴다. 이를 깨닫게 된 계기는 최근이다.
여느 때와 같이 일이 많던 어느 금요일, 현장에 나가 시장 상황을 파악하는 외근을 할 수 있는 날이었다. 사무실의 팀원들이 하나 둘 모두 자리를 떠나고, 사무실에 남아 밀린 내근을 하거나, 외근으로 현장에 방문하거나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아무래도 일을 해야겠지..? 외근을 다녀오면 일이 더 밀리니까.'
많은 업무로 내 마음은 이미 사무실 지박령이라도 할 기세였다. 내근을 선택하려고 했다. 그런데 외근도 다녀오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어 필요했다. 끝까지 고민하던 중, 마음이 내게 물었다.
지금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어떤 것이 나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는가?
남는 시간인 주말 동안 내근을 하면 하지, 외근을 하러 현장에 가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명쾌해졌고, 짐을 정리하고 외근을 나갔다. 늘 그랬듯이 사무실에서 앉아 계속해서 내근을 했다면 그저 똑같은 금요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만 할 수 있는 일, 새로운 경험을 택했고, 사무실을 나오며 깨달았다. 내 선택의 기준과 핵심 가치는 "경험"이구나.
이로써 내가 연봉 7천만 원을 포기하고 영업사원이 된 이유가 나에게도 설명이 되었다. 2년 반 동안 그 회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했던 나는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원했고,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새로운 회사와 직무 경험이 나에게는 7천만 원보다 더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잠시 잊고 살았지만, 생각해 보면 2년 전의 어린 나는 그랬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포기한 것들, 높은 연봉, 좋은 워라밸이 그립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결국엔 괴로워하다가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