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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의 수준, 어떻게 정할까?

욕망의 조절, 결혼의 핵심

by 양승광

Q. 31살 미혼 여성입니다. 8년 사귄 남자친구가 최근 일본에서 오랜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저 또한 오스트레일리아 유학을 끝내고 올 초 한국에서 영어강사를 하며 취업 준비 중입니다. 그런데 제 아버지 건강이 나빠지면서 부모님이 결혼을 서두르자 하세요. 몇 년 뒤로 계획했던 결혼 얘기를 남자친구에게 꺼내니 부담스러워하네요.


남자친구는 생활력이 좋다 못해 지나칠 정도로 ‘스스로 알아서 해야지’란 마인드입니다. 결혼 자금을 비롯해 모든 걸 본인과 제가 무조건 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남자친구가 취업이라도 했다면 모르겠는데 사업을 막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남자친구의 부모님은 제게 일찍이 “결혼에 관한 문제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남자친구는 한 푼도 손 내밀 것 같지 않아 한숨만 나옵니다.


“혼인신고만 하자, 결혼식과 같은 허례의식이 중요하냐.” 올 초부터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얘기해온 그의 저의를 진심으로 확인하고 싶어요.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마음다짐의 의례·의식이기도 한 결혼식을 뛰어넘는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요. 집의 크기나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한 패물의 무게가 두 사람의 미래 행복의 척도가 된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지만, 뭔가 답답합니다. 남자친구의 곧은 성품 탓에 강하게 밀어붙이지도 설득하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samantha-gades-711044-unsplash.jpg Photo by Samantha Gades on Unsplash

C. “나는 남들 하는 정도의 결혼식은 치르고 싶다. 그런데 남자친구는 결혼식을 생략하자고 한다. 설득은 하고 싶은데 명분이 약하다. ‘남들 다 하는데’라는 말은 남자친구에게 허례허식이라는 이유로 깨질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 설득해야할까? 답답하다.”


설득은 하고싶은데 명분이 약하신거죠? 그런데 님이 제 앞에 계셨다면, 저는 아마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을 듯 합니다. 결혼식을 왜 하고싶어 하시죠? 님이 말씀하신대로 “결혼식이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마음다짐의 의례․의식”이라면, 성당에서 조용히 신부님 앞에서 서약하는 것으로도 족하신가요?


제가 이 질문을 드리는 것은, 님이 가진 생각이 잘못되었다거나 속물적이라 판단해서가 아닙니다. 얼마나 자기 욕망에 솔직하신지, 혹은 자기 욕망을 스스로가 속되다 여기고 있어 스스로조차도 인정하지 못하고 계신건 아닌지 묻고 싶어서입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지만 특히 결혼에 있어서는, 나와 상대방의 욕망의 조절이 그 관계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 조절은 당사자 상호가 가진 욕망의 인식부터 출발하지요. 나의 욕망은 있는데, 그 욕망을 밝히지 않을 때 우리는 상대방의 욕망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설득할 명분이 약해 상대방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어지거나, 상대방의 욕망을 일반적이지 않다거나 기본적인 사항에 반한다하여 배척하게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이건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행해진 결정은 욕망의 조절이 아닌 택일이 되어버리며, 이러한 결정들의 누적은 관계의 파탄으로 이어집니다.


이에 반해 서로간의 욕망을 밝힌 상태에서의 조절은 양측 모두에게 만족을 가져오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상대방 역시 나를 위해 그가 원하는 것 일부를 포기해주었다는 것을 알게되기 때문에, 그 조절 과정에서 서로간의 친밀함 및 상호존중이 채워지는 것이지요. 결국 내가 가진 특정 욕망의 미실현 부분을 조절과정에서 얻어진 상호존중이라는 보너스가 채워주어 만족에 이르게 되는 것이지요.

Photo by Hello I'm Nik on Unsplash

결국 님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남들 다 하는 정도의 결혼식과 신혼생활이라면, 그 구체적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명확해져야 합니다. 그 구체화 된 설정의 근본욕구가 ‘남들과 비교당하기 싫어’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이것이 속물적일지도 몰라도 자신의 욕구거든요. 그렇기에 비난받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결혼을 앞둔 사이라면, 서로의 욕구에 대해 더 자세한 이해와 공감을 필요로 합니다. 만일 남자친구가 이러한 욕구에 비난을 가한다면 결혼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욕망 차원의 조절은 설득과 달리 대안들을 많이 만들어냅니다. 님이 바라고있었던 결혼식의 수준을 달리하게 될 수도 있고, 또 자립의지 강한 남친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립의지 강한 남친은 고민 끝에 본인의 욕망과 님의 욕망을 모두다 충족시키기 위해 부모님께 결혼자금을 빌릴 수도(받는 게 아닌!) 있습니다. 이처럼 욕망 차원의 조절은 대립적인 양 당사자를 같은 편으로 만들게 됩니다.


이제 답변입니다. 어떻게 해야되냐고 물으셨지요. 결혼식 및 혼인생활 시작에 대한 님의 욕망들을 종이에 구체적으로 써내려 가보세요. 그리고 그 하나하나마다 꼭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왜 원하는 것인지, 혹시 어디까지가 용납이 가능한지도 적어보세요. 이 작업을 할 때 주의할 점, 옳다 그르다는 가치 평가는 배제하시구요. 이는 자신의 욕망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망의 경계선을 보는 작업이지요.


그 다음. 남자친구와 대화를 시작합니다. 이 때 대화의 태도, 나는 여기까지 용납이 가능하니 네가 받아들여라 하는 선전포고가 아닌, 나는 꼭 이게 하고싶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고민의 태도입니다. 이 고민을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는 태도입니다. 그 다음 남자친구의 고민을 들어보세요. 물론 열린 마음이겠지요? 이렇게 양 당사자가 한 편이 되어, 같이 고민을 하며 풀어가는 것. 이게 바로 결혼의 시작일겁니다.


그러면 행복한 결혼준비하시기를 바랄께요. ^^


* 몇 년 전, 한겨레에서 토요섹션으로 <3D 입체 마음테라피>라는 제목으로 지면상담을 꾸린 적이 있습니다. 독자가 하나의 고민을 보내오면, 세 명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답을 하는 컨셉이었습니다. 여차저차한 이유로 저는 그 고민들에 대해 개인적인 답을 블로그에 포스팅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런치를 시작한 기념으로 그 때 쓴 글들을 여기에 옮겨 연재합니다. 참고로 이번 고민이 실린 원기사는 <자립의지 강한 남친, 결혼식 건너뛰고 혼인신고만 하재요.>(누르면 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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