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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의 분노에 대처하는 방법

공감이란 존재에 대한 수용

by 양승광

Q. 39살 프리랜서입니다. 우연찮게 사이버 공간에서 만난 32살의 예쁘고 순수한 여인과 사랑을 시작했습니다. 제 인생 첫 여인입니다. 전 그 사람으로 행복한데 그 사람은 저 때문에 힘겹나 봅니다. 제가 지난날 내부고발로 조직에서 찍혀 고초를 당했던 아픔이 그 사람에게 고스란히 전이되나 봅니다. 그 사람은 앞으로 닥쳐올 미래를 굉장히 불안해합니다. 나쁜 시나리오를 떠올리며 그 속에 자신을 투입시켜 힘들어합니다. 뭐라 해줄 말이 없습니다. 또 그 사람은 유년 시절, 부모님에게 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래서인지 늘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아야 마음이 안정되나 봅니다. 혹 사소한 한마디 말로 배려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거절당했다고 여길 땐 무섭게 화를 냅니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그 사람이 화낼 땐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이 들으면 불쾌하겠지만, 좀더 넓게 보면 그 사람의 유년 시절 상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 역시 부모님, 특히 어머니한테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또 그 사람보다 더 큰 상처를 받았음에도, 오히려 더 밝고 명랑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사람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가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까요?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gabriel-matula-300398-unsplash.jpg Photo by Gabriel Matula on Unsplash

C.두 가지 감정이 느껴집니다. 애처롭다. 그리고 억울하다. 애처로움이 님께서 힘들어하는 여인에게 어떻게든 도움을 줬으면 하는 사랑에서 비롯됐다면, 억울함은 방어적 감정에서 비롯됩니다. 그 억울함을 풀어본다면 다음과 같이 보입니다.


‘난 이 사람에게 그렇게 크게 잘못한 것이 없는데 이 사람은 내게 커다란 화를 낸다. 물론 그 사람에게 유년시절의 상처가 있다는 것은 안다. 그런데 어렸을 때 그 정도 상처 안 받은 사람 없지 않은가. 나 역시 마찬가지고. 그런데 내 말실수 하나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나? 이 사람이 화내는 것은 내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이 사람이 유별나서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억울하단 말이다.’


아닌가요?


이제 질문으로 들어갑니다. 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어떻게 다가가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난감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이 상태에서 그 어려움이 지극히 당연하다 봅니다. 왜냐구요? 사적인 관계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내가 그 ‘이야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 사람 편이 되어준다는 것을 뜻합니다. 대화를 통해 어떤 두 사람이 친밀해지는 것은, 상대방이 내 의견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졌다는 느낌, 즉 ‘존재의 수용’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반대로 말한다면, 내가 대화를 통해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려한다면,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동의를 넘어선, 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수용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존재에 대한 수용’은 곧 상대방에 대한 ‘공감’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공감’이라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공감이라는 것은 상대방이란 존재가 내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인데, 이것은 곧 상대방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고 하여도 그로 인해 내 존재가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는 안정감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이러한 안정감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공감은 불가능합니다. 이는 곧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상황입니다.


다시 내용으로 돌아갑니다. 님에겐 지금 자신이 나쁜 사람으로 몰릴지 모른다는 걱정, 그리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방어기제가 작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태이니 사랑하는 여인의 분노에 공감이 힘들고, 그러다보니 그 여인인 유독 유별난 것만 같고, 어떻게 대화를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 상황이 님의 잘못이라는 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이며, 연애는 자신의 밑바닥을 보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싶어서입니다. 그래서 연애를 통해 자신을 성숙시키는 사람들, 무지하게 많습니다.


이제 고민에 대한 답을 드릴 차례입니다. 연인과 이야기하실 때 님에게 내재되어있는 방어기제를 살짝 내려놓으시고, 상대방의 감정을 받아들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물론 방어기제라는 것은 오랜 시간 전에 형성되어 있어 단시간에 해소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방어기제는 이의 인식이 어렵지, 인식하고난 후에는 의식적으로 작동을 멈출 수 있게 됩니다. 뜬 구름 잡는 이야기 같다 하실까봐, 아래에 행동지침 드립니다.

rawpixel-1315163-unsplash.jpg Photo by rawpixel on Unsplash

연인의 분노가 있을 때, 상대방의 표현이 어떠하던 간에,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이시는 걸 멈추시고(이 부분이 쉽지 않습니다만. 그러니까 의식적으로!), 연인에게 부드럽게 말씀해주세요. “화가 났구나” 연인께서는 아마도 방금 전 했던 말을 반복하며 다시 화내실지 모릅니다(아마도 확실). 그러면 님께서는 연인이 했던 말들 중 중요한 사실 관련 부분을 2~3마디로 간추려 이야기해주며 다시금 부드럽게 말씀해주세요. “(중요한 사실 관련 부분 언급)~ 해서 화가 많이 나는거지?” 이렇게 대화가 몇 번 오고간다면 상대방의 분노는 누그러지게 됩니다.


본 대화는 내가 상대방의 감정을 받아들인다는 것이고, 이의 반복은 상대방에게 자신이 수용되었음을 재차 확인시켜주는 것입니다. 이걸 언제까지 반복하냐구요? 상대방의 분노가 수그러들 때까지, 즉 자신의 상대방에 대한 공감이 상대방에게서 받아들여질 때까지입니다. 그러면 분노의 원인이 되었던 자신의 행동 또는 상대방이 오해했던 사실에 대한 해명은 언제 하느냐고요? 맨 나중에 합니다. 상대방이 충분히 공감을 받은 후 말이죠.


오늘 답변은 이상입니다. 그럼 행복한 나날 보내시기를....



* 몇 년 전, 한겨레에서 토요섹션으로 <3D 입체 마음테라피>라는 제목으로 지면상담을 꾸린 적이 있습니다. 독자가 하나의 고민을 보내오면, 세 명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답을 하는 컨셉이었습니다. 여차저차한 이유로 저는 그 고민들에 대해 개인적인 답을 블로그에 포스팅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런치를 시작한 기념으로 그 때 쓴 글들을 여기에 옮겨 연재합니다. 참고로 이번 고민이 실린 원기사는 <불안·초조해하는 연인, 어떻게 달래야 할지>(누르면 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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