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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예쁜 친구, 나는 어떻게 하나요?

내재화된 비교를 벗어던지기

by 양승광

Q. 고3 여학생입니다. 고2 때부터 같은 반인 친구가 있습니다. 저희 둘은 제일 친하고요. 고1 때 같은 반 친구들과 싸워 힘들어하던 제게 이 친구는 정말 큰 힘이 되었지요. 그런데 이 친구, 정말 예쁘게 생겼어요. 너무 예쁘게 생겨서 따돌림까지 당한 경험이 있는 친구예요. 둘이 같이 다니면서 다른 친구들이나 선생님들한테 차별받는다는 느낌을 조금씩 받았지만 별로 티 안 내고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속으로는 상처도 많이 받고 울기도 많이 울었고요. 저는 그래도 낙천적인 편이라 외모가 안 되면 공부라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친구보다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제가 실수해서 나온 점수가 이 친구가 찍어서 맞힌 점수와 비슷하게 나온 적이 많았습니다. 그때부터 정말 서러운 기분이 막 들더군요. 어느 날부터 이 친구에게 좀 막 대하기 시작했어요. 최근 들어서는 정도가 조금 심해졌어요. 저 혼자 열등감 느껴 이렇게 행동하는 게 참 싫어요. 이 친구는 진짜 착하고 좋은 애거든요. 근데 진짜 같이 다니는 게 너무너무 힘들어서 대학만큼은 다른 데로 가고 싶어요. 대학은 고등학교보다 크니까 제가 이제까지 겪었던 일이 배로 늘어날 거 같아서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친하게 지내야 하고 또 그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제 성격을 고칠 방법이나 이런 상황을 해결할 방법 좀 알려주세요.

백설공주.jpg 출처 : https://www.pinterest.co.kr/pin/643522234224717341/?lp=true


C. 그래도 다행이다. 자신의 행동이 부당하다고 인정하는 거. 그리고 그 부당한 행동의 원인을 찾아내는 거.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다. 하지만 아쉽다. 원인을 찾았다면 거기에 천착해야할 터인데, 손을 놓아버리고서는 환경을 바꾸고자 한다. 그런데 어디 열등감이 환경이 달라진다 없어지느냐. 더 큰 곳으로 가면 나보다 예쁘고 공부 잘 하는 사람은 더 많아진다.


사실 사람들에게 열등감은 만연해있다. 태어날 때부터 사람들 속에 어울리는 우리는 같은 또래 집단에서 경쟁하기를 강요받고,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평가를 받게 된다. 이러한 평가는 커가면서 내재화되는데, 그때부터는 누가 하지도 않는 평가를 스스로 해버리고는 낙오의 절망에서 괴로워한다.


내 이야기를 하자. 몇 년 전 나는 대학로에서 살았다. 동네에는 고등학교가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경문고등학교였고 다른 하나는 서울과학고등학교였다. 퇴근길에는 꼭 그 두 학교 옆을 지나왔다. 맨 먼저 거치는 경문고등학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별 생각이 없었다. 아마도 가끔씩은, 고등학생들 공부하느라 참 애쓴다, 이 생각 정도는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서울과학고등학교 옆을 지날 때는 많이 달랐다. 내 자신이 왠지 부끄러워지고 패자가 된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이 싫어 일부러 발걸음을 재촉하기도 했다. 그 곳을 지날 때마다 공부에 대한 열등감이 작동한 것이다. 이런 상태는 꽤 오랫동안 지속됐다.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 그 옆을 편하게 걷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골똘히 생각을 하게되더라. 생각해보니 관점이 바뀐 덕이었다. 그 몇 달 전부터 나는 심리학 책을 읽으며 스스로를 응시했으며, 그 안을 파고들었었다. 쪽팔리게 펑펑 울기도 했으며, 그런 나를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었다. 그 덕이었다. 내가 내 안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내재화된 평가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Breakfast, toast, knife and fork HD photo by Estée Janssens (@esteejanssens) on Unsplash

당신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선생님들과 다른 친구들이 당신과 그 친구의 미모를 비교했던가. 냉정히 돌아보면 당신을 차별한 것이 아니라 그 친구에게 좀 더 호감을 표시한 것 아닌가. 아름다움에 호감을 표시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혹여라도 누군가가 당신과 그 친구의 미모를 비교했다 치자. 그게 뭐.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러한 악의적 평가에 당신이 동조할 필요는 없다. 외부의 자극에 예상되었던 반응을 내보이지 않는 것, 성숙한 인간으로서 자판기와 다른 점이다. 결국 당신과 그 친구의 우정의 걸림돌은 그 친구의 미모나 다른 이들의 태도가 아닌 당신 안에 내재된 타인과의 수평적 비교이다.


이제 결론을 내리자. 결론은 위에서 말했다시피 내재화된 비교를 벗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쉬우면 얼마나 좋을까. 삶은 선택의 연속이며, 선택은 곧 비교를 전제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내재화된 비교를 버리기 위한 중간 단계로서, 비교는 하되 관계에 해를 주지 않는 비교, 자기성장을 촉진하는 비교로 바꾸어보자. 이것을 수직적 비교라고 하는데, 이는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며, 관심을 나 자신에 집중시켜보자.


그리고 또 하나. 예쁜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대학 진학 후 남자 동기나 선배들에게 그 친구 사진을 흘리듯 보여줘라. 밥값으로 고민할 일이 적어질 것이다.


* 몇 년 전, 한겨레에서 토요섹션으로 <3D 입체 마음테라피>라는 제목으로 지면상담을 꾸린 적이 있습니다. 독자가 하나의 고민을 보내오면, 세 명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답을 하는 컨셉이었습니다. 여차저차한 이유로 저는 그 고민들에 대해 개인적인 답을 블로그에 포스팅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런치를 시작한 기념으로 그 때 쓴 글들을 여기에 옮겨 연재합니다. 참고로 이번 고민이 실린 원기사는 <동기 주는 힘 될 수도 있잖아>(누르면 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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