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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불화, 나는 어떻게 하나?

나와 부모님의 경계를 먼저 세워야

by 양승광

Q. 저희 집은 정기적으로 큰소리가 납니다. 부모님이 두 분 다 고집 센 동갑이기도 하지만, 아빠는 거짓말을 자주 하고, 엄마는 남편에 대한 신뢰 없이 살아오다 보니 사소한 일로도 말다툼이 잦습니다. 저희 자식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걸 보고 자랐습니다. 부모님의 싸움 중에 언니가 얻어맞은 적도 있고 저희들 눈앞에서 두 분이 뒹굴며 싸운 적도 있습니다. 아빠는 밥상 뒤집어엎고 숟가락 던지는 다혈질입니다. 제가 직장 다닐 때도 화난 아빠가 밀쳐서 주저앉은 일도 있습니다. 고혈압인 엄마는 아빠와 말다툼하다 자정 넘어 응급실에 간 일도 있습니다. 아빠를 믿지 않는 엄마는 아빠의 전화를 끊어버리는 버릇이 있고 그래서 다툼이 생깁니다. 예전에 아빠는 여자친구들을 몰래 만나다가 엄마한테 들켰고, 의심하는 엄마한테 아빠는 “정신병원에나 가보라”고 폭언을 일삼았습니다. 저조차 알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아빠란 사람이 솔직하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게 너무 괴롭습니다.


아빠는 화가 나면, 특히 곤란한 상황이다 싶으면 파괴적으로 돌변하고 술 마시고 죽겠다고까지 합니다. 무엇보다 잠시 덮어뒀다 또다시 벌어지는 이런 패턴이 지긋지긋합니다. 두 분을 모시고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엄마는 가고 싶어 하지만 아빠는 한사코 거절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Photo by Allen Taylor on Unsplash

C. 사연이 먹먹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름이 ‘가족’이라는 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는 이름이 ‘가족’라는 말과 같습니다. 가족의 문제에 대해 상담자는 뭐라 이야기해야 할까요? 님께서 만일 제 앞에 계시다면, 그저 듣고, 눈을 마주치며, 함께 멍하니 눈물을 흘렸을 것만 같습니다.


사연을 봅니다. 아빠의 입장. 거짓말. 자신의 행동이 수용받지 못하리라는 두려움, 그리하여 가장의 입지가 박탈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함. 여기서 폭력도 행사되겠지요. 자살의 위협까지도요. 자신의 위치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발버둥입니다. 외도. 이러한 가정이 재미있을리 없지요.


엄마의 입장. 캐물음. 아빠에 대한 불신. 자신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분노입니다. 계속되다가는 자신이 남편에게 유령으로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불안함. 아빠의 전화를 끊어버리는 버릇으로 나타납니다.


성인인 두 사람이 만나 가족을 이룹니다. 지지고 볶고 싸울 줄을 알면서도 그들은 결혼을 했을겁니다. 왜일까요? 행복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그런데 불행합니다. 이 사람이라면 나의 부족한 모습을 채워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거죠. 상대방이 나를 보듬어주어 나를 완성시켜줄 줄 알았는데, 같이 살다보니 내 약점만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결혼 전에는 안 보이던 자신의 약점들, 원래 자신이 갖고 있던 것들이었는데, 결혼 후에야 보이니 “결혼을 잘 못 해서”라고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립니다.


하지만, 다시 태어나면 저 사람하고는 절대로 결혼 안 해, 라고 말하면서도 이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래도 지금 이렇게라도 사는 게 더 행복할지 모른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혹은 덜 불행하기 위한 판단 때문이겠지요. 그게 경제적 이유이건, 윤리적 이유이건, 결혼을 앞 둔 딸들에게 미안해지지 않기 위해서건 말입니다.


어린 아이의 입장. 억울해야 합니다. 내가 선택한 부모도 아닌데, 시끄럽고 폭력적인 부모 때문에 내가 괴로워야 하니 말이지요. 그런데. 그러한 가정에서의 어린 아이는 억울함을 느끼지 못 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와 내가 분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john-moore-141727-unsplash.jpg Photo by john moore on Unsplash

사연을 읽으며 제일 가슴이 아팠던 것이 있습니다. 긴 글에서 나타난 님의 감정이 “너무 괴롭”다, “지긋지긋”하다 단 두 군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괴로움이나 지긋지긋함을 넘어 도망치고 싶을텐데, 그래서 좀 행복하고 맘 편히 살고 싶을텐데, 님은 여전히 부모님을 끌어안고 계십니다. 왜일까요? 혹시, 자식된 도리? 그렇다면 다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왜 두 분을 모시고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보자고 제안하셨나요? 결국은 님이 좀 더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 아닐까요?


어떻게 해야 할까 물으셨습니다. 이 세상을 둘로 나눈다면,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입니다. 그리고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내가 먼저 행복해지던가, 나를 둘러싼 환경이 먼저 변함으로 나까지 행복해지던가. 여기서 내가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은 전자뿐입니다. 그리고 그 전제 작업. 나와 환경의 경계선을 설정하는 일입니다.


답변으로 들어갑니다. 부모님에게서 물리적이고 정서적인 독립을 하시기를 권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괴롭혀왔던 그 공간에서 한 걸음 떨어져, 님 자신의 감정에만 온전히 천착하셨으면 합니다. 그 동안의 상처들에 대해 온전히 슬퍼하시고, 힘들게 견뎌왔던 자기자신에 대해 충분히 다독거렸으면 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추스르신 후 자신의 경계 바깥, 가장 가까운 바깥에 계신 부모님께 손을 내미는 겁니다. 그들도 함께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쉽지 않은 길.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몇 년 전, 한겨레에서 토요섹션으로 <3D 입체 마음테라피>라는 제목으로 지면상담을 꾸린 적이 있습니다. 독자가 하나의 고민을 보내오면, 세 명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답을 하는 컨셉이었습니다. 여차저차한 이유로 저는 그 고민들에 대해 개인적인 답을 블로그에 포스팅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런치를 시작한 기념으로 그 때 쓴 글들을 여기에 옮겨 연재합니다. 참고로 이번 고민이 실린 원기사는 <아버지를 벼랑으로 몰진 마세요>(누르면 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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