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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을 못 받으면 초조해져요

배우가 아닌 나 자신의 삶으로

by 양승광

Q. 30대 중반 싱글 여성입니다. 꽤 유명한 대기업을 다니다가 지난해 말 세계 초일류 기업이라고 불리는 회사로 옮겼어요. 모자랄 것 없어 보이지만, 저는 칭찬이나 인정을 못 받으면 불안하고 힘든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 칭찬과 애정을 아끼지 않으셨던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언제나 이불 정리나 청소 같은 작은 일로 크게 혼을 내시며 늘 제게 ‘뭔가 부족한 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 2년을 함께한 담임선생님은 제 일기에 매일 두 쪽씩 답장을 써주며 제게 사랑을 주셨죠. 그 뒤로 늘 선생님 또는 상사로부터 칭찬을 들으려고 일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은 별로 없지만) 혹시라도 이들이 저에게 큰 관심을 주지 않으면 견딜 수 없습니다. 기가 죽고, 입맛이 없고, 제가 평범한 사람 같아 초조해집니다.


회사를 옮긴 뒤 저를 가장 괴롭히는 건 바로 상사입니다. 그는 칭찬에 인색합니다. 그동안 들어온 “넌 달라, 넌 대단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가뭄에 단비처럼 가끔 칭찬도 합니다만 제가 기가 죽는 것은 지금의 상사가 저보다 배로 꼼꼼하고 철저하다는 겁니다. 게다가 최고의 학벌에, 다재다능합니다. 오히려 그 상사 앞에서는 긴장해 실수가 많아집니다. 오늘도 상사가 퇴근을 하면서 습관적으로 질책하는 말투(다른 직원들에게도 그렇게 대합니다)로 말하자 “저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울컥하며 회사를 나서다, 업무 데이터를 묻는 직원에게 답을 해줬더니 “역시 과장님은 최고야!”라는 말이 돌아와 아주 약간 살 것 같았습니다. 그 상사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겠지만, 그는 따뜻하지는 않지만 보통의 상식적인 좋은 상사입니다. 늘 감독의 사랑으로 주연만 하던 배우가, 관심이 없는 감독 밑에서 조연을 하는 듯한 느낌…이라면 정확할까요. 저를 어떻게 하면 좋나요?


Photo by Skycraft Studios on Unsplash


C. 에피소드 하나. 몇 년 전 상담을 받을 때의 일입니다. 상담 선생님께서 질책 섞인 말씀을 하시더군요. “승광씨는 왜 항상 무엇인가를 하려고 해요? 난 지금 승광씨 모습만으로 충분한데.”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현재의 내 모습만으로 충분하다는 말. 그래도 되는 걸까? 정말로?


지금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던 간에, 그리고 그 일을 잘하던 못하던 간에, 나는 충분히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다는 느낌. 곧 내 역할을 떠나 나는 사랑받을만한 존재임을 가슴 속에서부터 흔들림 없이 확신하는 것. 이것이 자존감입니다. 자존감이 충만하다는 것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만드는 내적 에너지가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타인의 평가에 기대어 살지 않게 됩니다. 왜냐면 자신의 존재 계속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는 내부 에너지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굳이 다른 이들의 평가를 끌어다 쓸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그럼 자존감은 언제 형성이 되느냐. 어찌보면 억울하다고도 하겠지만, 자존감의 형성은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시절, 어린 시절에 이루어집니다. 그 어린 시절 몇 년간 양육자로부터 얼마나 충분한 무조건적 사랑을 받았느냐. 이것이 자존감 형성에 있어서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사랑과 칭찬은 구분됩니다. 사랑은 존재에 대한 표현인 반면, 칭찬은 행동에 대한 대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무조건적인 반면, 칭찬은 조건적입니다. 양육자가 아이에 대한 사랑에 인색할 때, 아이는 칭찬받기에 애를 쓰게 됩니다. 곧 아이는 양육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으로써만 자기 존재를 확인받을 수 있다고 인식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이러한 상태는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됩니다. 타인의 인정과 평가에 생존을 내맡긴 삶. 그래서 결국은 님이 말씀하셨다시피, 역할놀이를 하는 배우가 되어버리는거죠. 그리고 그 역할이 주연이든 조연이든, 배우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건 배우 자신이 아닌 시청률이 되어버립니다.

Photo by Georg Wolf on Unsplash

이제 사연으로 들어갑니다.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작은 잘못 하나에도 그 행동만을 지적하시는 게 아니라 ‘뭔가 부족한 애’라며 존재 자체를 부정적으로 규정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님은 그 존재를 스스로에게 확인시키기 위해, 칭찬에, 칭찬을 획득하기 위한 기대행동의 수행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생각됩니다. 이런 어린 시절의 님이 30대 중반인 지금까지 계속되어왔던 거죠.


그런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질문에는 멈칫하게 됩니다. 님은 그저 님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니 타인의 평가에 신경을 줄여라, 라며 답변을 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는 걸 아니까요.


‘내면아이 상처 치유’라는 심리학적 방법이 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의 자존감 결핍은 어렸을 때의 상처로 인해 발생되는 것이니, 상상을 통해 그 시절로 돌아가 어른이 된 자신이 그 시절의 어린 자신을 돌봐주는 것입니다. 그 시절의 어린 자신에게 사랑을 베풀어, 그 어린 아이가 무조건적 사랑과 수용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연에서와 같다면 아버지에게 혼나고 있는 그 시절로 돌아가 어른이 된 자신이 울고있는 어린 자신을 감싸안아주고 놀아주고, 그래서 그 아이에게 웃음을 찾아주는 것입니다. 물론 한 번에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좀 더 행복해지시기를 기도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 몇 년 전, 한겨레에서 토요섹션으로 <3D 입체 마음테라피>라는 제목으로 지면상담을 꾸린 적이 있습니다. 독자가 하나의 고민을 보내오면, 세 명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답을 하는 컨셉이었습니다. 여차저차한 이유로 저는 그 고민들에 대해 개인적인 답을 블로그에 포스팅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런치를 시작한 기념으로 그 때 쓴 글들을 여기에 옮겨 연재합니다. 참고로 이번 고민이 실린 원기사는 <인정욕구의 근원 찾아보면>(누르면 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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