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의 내가 너무 불쌍해요
Q. 두 아이를 키우는 30대 중반 여성입니다. 어릴 적부터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었던 저는 학교생활이나 친구관계 등에 그다지 영리하지도, 빠릿빠릿하지도 못했습니다. 게다가 맏이라는 이유로 어머니가 많이 기대하셨고, 그러다 보니 제 어린 시절은 늘 야단맞고, 상처받고, 자존감이 무너졌던, 그리고 맞이한 사춘기는 너무 외로웠고, 두려웠고, 비관적이었던 시기였습니다. 어머니와의 갈등 속에서 이해받거나,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죠. 제가 엄마가 되고 나니 어머니가 이해되기보다는 오히려 어린 나에게 너무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렸던 내가 너무 가엾고 애처롭다는 생각은 아직도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육아 관련 서적, 부모 관련 다큐멘터리 등을 많이 접할수록, 어머니와 갈등의 원인은 내가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난 정말 잘못 자란 사람이구나, 내 자존감은 짓밟혔었구나라는 피해의식 속에서 헤어날 수가 없어요.
환갑이 넘으셨지만 여전히 저에 대한 태도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어머니를 보면서, 이제는 내 마음속 어머니에게 사과받고 화해하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어린 시절 저를 위로하고 좀더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으며, 더 먼 훗날에 어머니와 편하게 작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녀지간에 따뜻하고 정상적인 대화를 이끌어 갈 자신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C. 진단은 되는데, 해결책이 없는 상태. 답답합니다. 먼저 함께 애도를 표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 편 축하를 드립니다. 온전한 자기 자신, 사랑받아 마땅한 자기 자신을 되찾는 여정을 시작하셨으니 말입니다.
사연을 봅니다. 어떻게 해야하느냐.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요? 어머님과의 화해? 그런데 그것을 이루는 방법은? 혹시 어머니의 님 어린시절에 대한 사과? 그런데 그게 가능은 할까요?
혹자는 이런 상황이 어머니를 원망할 일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머니 역시 그러한 부모님 밑에서 컸으므로, 어머니 당신도 피해자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측면이 어머니를 이해할 수는 있게해도, 어린시절에 대한 자신의 억울함, 어머니에 대한 분노까지 풀어주지는 못합니다. 이해는 이성의 영역인 반면에 억울함과 분노는 감성의 영역입니다. 이성의 영역에 있는 이해가 감성으로까지 확장되는 것. 이것이 곧 공감입니다. 하지만 억울함과 분노가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한 공감은 들어올리 만무합니다.
결국 이 억울함과 분노를 해소하는 것. 이것이 자신을 위로하는 길이고, 어머니를 공감하는 길이며, 그래서 자신이 좀 더 가볍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일 겁니다.
문제는 이 억울함과 분노를 어떻게 풀어주느냐. 몇 주 전 연재에서도 말씀드린 바 있다시피, ‘내면아이 상처 치유’라는 심리학적 방법이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존 브래드 쇼의 [상처입은 내면아이 치유]라는 책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방법을 행하실 때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른이 된 지금의 자신이 어린 자신과 그 당시의 어머니 사이의 중재자가 되어, 어머니로 하여금 어린 자신을 공감케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결국 이 작업을 행할 때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의 자신은 어린 자신 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어머니까지 공감해야하고, 그 당시의 어머니로 하여금 어린 자신을 공감케하는 중재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기억나는 사건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갈 때, 억울함과 분노는 조금씩 수그러들어 어머니에 대한 공감이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또 하나. 어린 어머니에 대한 연민. 이 어린 어머니에 대해 자신의 어머니라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한 아이라 생각하시고 연민을 시작해보세요. 님께서 두 아이를 키우시는 엄마이기에 가능하리라 보여집니다. 자식을 그렇게 힘들게 한 어머니셨다면 그 어린 시절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어쩌면 동병상련이 느껴실테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 분노와 억울함이 조금씩 누그러진다면, 님께서 바라시는 모녀지간의 따뜻한 대화를 시도할 용기도 조금씩 생기지 않을까요?
쉽지 않은 여정, 하지만 꼭 필요한 여정입니다. 그 찬란한 여행길에 멀리서나마 조용한 응원을 보냅니다
* 몇 년 전, 한겨레에서 토요섹션으로 <3D 입체 마음테라피>라는 제목으로 지면상담을 꾸린 적이 있습니다. 독자가 하나의 고민을 보내오면, 세 명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답을 하는 컨셉이었습니다. 여차저차한 이유로 저는 그 고민들에 대해 개인적인 답을 블로그에 포스팅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런치를 시작한 기념으로 그 때 쓴 글들을 여기에 옮겨 연재합니다. 참고로 이번 고민이 실린 원기사는 <‘타산지석’이 치유의 길>(누르면 이동)입니다.